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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향기

장 폴 사르트르-문학이란 무엇인가

by 아프로뒷태 2011. 12. 3.

장 폴 사르트르(1905-1980)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명문 슈바이처 가문 출신의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자전(自傳) 같지 않은 자전 <말>에 잘 기술돼 있는데 그는 또래의 소년들과는 교류하지 않는 고독한 소년이었다.

명문 파리 고등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9년에 교수 자격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 교직에 몸을 담았다. 이 무렵부터 보부아르와 알게 되고 2년간의 계약 동거에 들어갔다. 다른 이성과의 관계를 배제하지 않고 서로의 자유를 최대한 인정하면서 최상의 연인이자 이해자로서 결합한 이들은 일생에 걸쳐 관계를 유지했으며 세인의 주목의 대상이었다.

1932년에 후설의 현상학에 접하고 다음 해에 베를린으로 유학했다. 귀국 후 현상학 소개자로서 철학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7년여에 걸쳐 집필한 소설 <구토>를 1938년에 출간했다. 1943년에는 프랑스 실존주의의 성전이라 할 수 있는 방대한 분량의 철학서 <존재와 무>를 완성했다. 제2차 대전 중 프랑스의 패배와 점령 속에서 한때 포로 생활을 했고 레지스탕스 운동에도 참여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을 주장하는 '앙가주망(참여)'의 사상가로 변모했으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45년 <현대>지를 창간하고 이를 통해 알제리 해방 전선을 지원하였으며, 베트남 '전쟁 범죄 국제 재판'에도 참가하는 등 비공산계의 좌익을 대표해 당대의 모든 정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소설로는 미완성의 장편 연작 <자유에의 길>이 있으나, 작가로서의 인기는 <파리떼>, <갇힌 방>, <더러운 손>, <악마와 선신>, <알토나의 유폐자들> 등 희곡 작품으로 견고해졌다. 철학적 저작으로는 대작 <변증법적 이성 비판>이 있으며, <보들레르>, <성 주네>, <바보 자식> 등의 철학 연구와 전기를 종합한 것과 같은 특이한 작가론도 남겼다. 1980년 4월 파리 시민의 애도 속에 눈을 감았다.

파리 출생. 생후 15개월에 부친 사망("애비 없는 자식"으로 구속을 모르는 자유인이 됨). 신장 157cm의 단신. 사팔뜨기. 슈바이처 가문의 후손으로 책 속에서 성장. 부모 모두 부르주아 출신. 모친 재혼. 고등 사범학교 철학과 출신. 교수 자격 시험에서 1차 낙방 후 수석 합격.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관계. 고교 철학 교사. 1933년에 1년간 독일 유학. 2차대전 후 변신(자아 탐구에서 현실 참여로-기존 사고와 관례에 대해 회의). 실존주의의 교황.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 거부. 7년 동안 소경으로 작품 활동 중단. 75세의 나이에 급성 폐기종으로 사망. 철학자, 수필가, 소설가, 극작가, 기자, 비평가......

사르트르의 문학 (실존주의 문학)

1)2차 대전의 비참함을 경험한 유럽 사람들에게 인간 존재에 대하여 새로운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세계의 어둠에 압도당하고 부단히 위협당하는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자문하게 되었다. 사르트르는 행동의 세계로 뛰어들었다기보다는 우선 행동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보려고 애썼다. 레지스탕스 운동에서 말로나 카뮈처럼 눈부신 역할을 하지 못한 대신, 만인에게 진정한 삶의 길을 마련해 주고자 한 것이다.

실존주의란 원래 철학적 용어로서 키에르케고르, 후설,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 철학자들이 발전시켰고, 문학적으로는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다. 특정한 문학적 주의라든가 철학적 사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삶의 태도를 나타낸다. 사르트르는 움직일 수 없는 진리나 천부의 인간성은 믿지 않는다. 진리나 인간성은 인간이 각자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색과 행동에 의하여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자기를 형성하고 역사를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를 파악하고 상황을 포착해야 하며, 근원적인 문제로서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를 고찰해야 한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은 존재 이유도 종극 목적도 없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태어난다.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절대적인 자유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여러가지 조건과 상황 속에서 모든 행동을 자기 의사에 의하여 결정해나가야 한다.

사르트르에게 있어서 영웅은 모든 관례주의에서 벗어나 자기를 진정으로 표현하는 행위를 자발적으로 선택한다. 그의 모든 작품의 테마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인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획득하는가이다. 상황 속에 던져진 인간의 참다운 자유란 역사의 흐름에 구체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획득된다. 사르트르는 자기의 철학 사상을 잘 이해시키기 위해 문학적인 방법을 빌고 있는 철학자다.

2)"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보다 앞서는 것이며, 인간은 자기의 뜻에 의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자연히 태어나 그저 존재하는 것이고, 인간이 인간이 되려고 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극히 자유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인간이 그 자유를 구사하여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3)"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 아무런 본질도 미리 갖추지 못하고 이 세상에 홀로 내던져져 있는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은 타인의 지옥 속에서 그리고 구체적 상황 하에서 자신의 존재에 주체적 의미를 줄 행동을 선택해나가야 하며 이러한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존재와 행동을 가로막으려는 세력이나 유혹과 투쟁해나가야 한다는 사상이다. 전쟁이 끝나자 사르트르는 전후 사상의 지도자로 불린다. 실존주의는 모든 기존 가치가 무너진 풍토 밑에서 휴머니즘을 재건할 수 있는 유일한 원리처럼 대접받았다. 그리하여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운명지워져 있는 존재", "인간은 전 인류의 이름 아래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고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등의 표현들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좌익과 그리스도교로부터 이중의 맹렬한 비판 속에서, 실존주의는 어려운 시대를 넘어서기 위한 가장 영웅적이며 진정한 윤리로 여겨졌다.

4)인격의 문제에서 심리적인 혹은 도덕적인 면에만 관심을 둔 종래의 작가들(초현실주의자들은 제외)과는 달리, 사르트르는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취급했다.

<구토> :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매우 보잘것없는 줄거리 위에 던져져 있는 일련의 철학적 명상이고, 신랄한 고찰이며, 풍자적인 장면들이다.

<벽> : "벽", "어느 지도자의 어린 시절". "에로스트라트", "방", "친밀함" 등 5편의 중편 소설집이다. '인간은 항상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하는 자유롭고 주체적인 존재임을 역설했다. 인간은 일정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 속에 처해 있으며, 그의 자기 창조의 노력은 자유를 향한 상황의 변혁 즉 사회 혁명과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문학은, 적어도 산문 문학은 이러한 자기 창조, 자유, 혁명의 삼위일체를 위해서 바쳐져야 하며 적극적 참여를 통해서만 그 존재 의의를 획득하는 것이다'.

5)행동의 문제 : <자유의 길> : 자유라는 것은 내부의 생명을 모조리 솟아올려 순간의 자극에 자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검토한 뒤에 정신이 결정한 것을 실행하는 의지적인 행위는 실패한 행위다.

소설 기법 :조이스 식의 내적 독백, 영화의 대경(大景)과 명암, 수천 리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서로 전혀 관계 없는 행동들을 단 하나의 문장 속에 섞어놓는 동시적 묘사 등. 작가가 비상한 관찰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확하고 면밀한 묘사로 가득차 있는 이야기의 밖에 머물려 애쓴다. 그의 학설인 "현상학적 실존주의"는 현상의 기록을 출발점으로 삼아 재능의 방향으로 밀고 가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의식은 사물에 부여하는 명칭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작중 인물 : 행동이 우유부단하고 지속성이 없다. 새로운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새로운 선택을 강요하는데, 거기서 무엇이 나올 것인가는 예측할 수 없다. 이야기의 신빙성이 희박해지고 인생 자체보다도 오히려 인생의 매우 지적인 모조품을 대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 생기는 것은 정열의 약동과 지속성이 결여된, 완전히 점묘적이고 단속적인 심리 묘사를 항상 마치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존재에 대한 비뚤어진 개념, 인간 가치에 대한 완고한 경시가 있다. 사르트르의 흥미를 끄는 유일한 인간은 타락한 학생, 탈선한 계집애, 알콜 중독자, 코카인 중독자 등 저열한 사람들이다.

물질 : 사르트르는 물질의 가장 추악하고 불쾌한 면에 매혹되어 있는 것 같다. 사르트르의 세계는 무기력과 메스꺼움, 구역의 세계다.

문체 : 매우 직접적이고, 문어체이기보다는 구어체인데, 내적 독백에 있어서 통속적이고 곁말 투성이이며, 객관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회화적이고 생략적이고 경쾌하다. 하지만 언제나 견고하고 당당한 문체이고 스냅 사진처럼 선명한 의외의 영상들로 가득차 있다.

6)희곡 : 사르트르는 능란한 기교, 등장 인물의 지극히 개성적인 생활, 문제의 강력한 이해력 등 희곡에 훌륭한 자질을 보였다. 그는 현대의 정치적, 도덕적 대문제에 대들고 있다. 즉, 민족주의와 청교도적 위선을 강력한 소묘화로 고발하고 있다. <무덤 없는 사자(死者)>에서는 육체적인 고통 앞에서 인간은 도덕적, 심리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그려져 있다. <더러운 손>은 정치극이 아니라 심리극이다. 공산당 정치국의 변화를 강조하기보다도, 행동에 참여하면서도 마음의 주저로 제지되는 한 지식인의 내면적인 고뇌를 연구해야 한다.

정치 : 사르트르는 <현대>지의 창설자이자 주필이었다. 앙가주망의 문학, 즉 정치적인 입장을 뚜렷이 취하는 문학의 지지자였다. 그는 딜레탕티즘에 의해서 지쳐빠진 문학은 전투적이 됨으로써 힘을 되찾으라고 말한다(<상황>, <문학이란 무엇인가?>). 모든 탈출을 비난하고, 현실에서 우리를 떼어내려 하는 모든 것을 불성실한 행위로 고발한다. 이해 관계를 떠난 지적 향략은 죄 많은 도피다.

문학 비평 : 사르트르는 분석과 분해에 능숙한 철학자다. 어떤 작품의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연구하고 어떤 작품의 기교를 교묘하게 분해했다. 그러나 심미적인 감동에 관하여는 방관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 :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이며, 왜 쓰는가,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1947년에 있어 작가의 상황을 규정하고, 현대의 문학자는 근로자 계급의 해방을 꾀하여야 한다고 함.

사르트르의 사상 전개 과정

1)제1기

<구토> : 주인공 로캉탱을 통해서 모든 의미가 박탈된 존재의 양태를 그려나간다. 하지만 이 존재 의미의 상실은 단순히 감정적인 혹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 단편적인 현재의 순간을 살아가는, 이 정당화될 수 없는 삶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무너진다. 자아와 타인과 사물을 맺어온 관계가 토막토막 끊어지고 그것들은 추하게 그 원초적인 양상을 드러내보일 뿐이다. 이렇게 의미의 사슬에서 풀려나와 공연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의 양상을 사르트르는 잉여물이라고 부르는데, <구토>의 많은 부분은 잉여물로서의 본질적인 양상을 모르고 마치 자기의 존재가 이 세계에서 필요하고 의미가 있는 양 행동하는 각성 이전의 인간들에 대한 풍자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면 구원은? 로캉탱은 음악의 순수성에 빠져들어 사물 그 자체로 환원된 순수한 예술 작품의 창조를 꿈꾼다.

<벽> : 자아와 타인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자아는 정당화될 수 없는 존재성을 지닌 동시에 타인이 있는 세상에서 산다는 두 가지 조건을 지니고 있는데, 타인의 세계에 필연적으로 끼여들어 있는 자아는 과연 어떻게 스스로를 정당화시켜 나가기를 시도하느냐는 문제를 두고 몇 가지 경우를 연구하고 있다. 여기서 사르트르의 대타관은 존재론적으로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1)나는 타인이 있는 세계에 산다. 2)나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타인의 존재를 요청한다. 3)나와 타인의 관계는 적대적이다. 이로써 타인을 사로잡거나 일부러 타인에게 사로잡힘으로써 자기의 존재에 정당성과 의미를 부여하려는 "태도의 희극"이 연출되는데, "타인의 지옥" 속에서의 이러한 자기 기만이 성관계나 죽음의 순간에도 지속되고, 광기, 새디즘, 매저키즘의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는 것을 사르트르는 보여준다.

<파리떼> : 그러면 아무 뜻 없이 타인의 지옥 속에 내던져진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사르트르는 내던져진 인간의 존재론적 자유의 개념을 역사의 마당에서 인간이 획득해야 할 가치로서의 자유로 전환시킨다. 이때부터 인간은 아무런 속박도 구원도 없이 자유롭다는 인식을 자기의 전 책임 하에 받아들이며 이 근원적 자유의 인식을 가로막는 일체의 허위적 개념 및 자기 기만을 거부하는 것이 윤리적 명제로서 강조되기 시작한다.

2)제2기

실존 윤리를 천명하거나 그중 한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학을 이용한 시기다. <자유의 길> : 자유와 주체적 선택을 결부시키지 못한 지식인의 비극을 그림으로써 일정한 역사적 상황 하에서의 결단을 역설적으로 촉구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 문학은 자유의 실현을 위한 투쟁이다. 참여 문학의 이론을 제공했다. <악마와 선신> : 절대적 의미에 있어서의 선악이란 있을 수 없고 모든 행위의 도덕적 의미는 상황과의 관련 하에서 결정된다. <성 주네> : 천대받은 작가가 어떻게 자기의 처지를 넘어서면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신을 정립해 나가느냐를 보여준다.

3)정치 참여

인간이 진실한 자기 실현의 기초가 될 자유의 획득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큰 장애는 경제적, 사회적, 사상적으로 지배 계급을 형성하면서 대중을 억압하고 있는 부르주아지다. 사르트르는 창작과 비평의 주제를 부르주아지에 대한 고발로 편향, 정치 논설과 실제적 행동을 통하여 직접적인 투쟁을 시도했다. 부르주아로서의 죄책감의 소산이라고 보기도 하나(<말>), 유럽 지식인의 괴로운 양심의 표현이라고 풀이해야 한다. 사르트르는 정치 조직인 '민주 혁명 연합'을 설립했다. 각자가 그 정치적 입장을 바꾸지 않더라도 근본적으로는 민주적 혁명의 실현이라는 한 점에서 단결하면 되는 것이며, 공산당에 가맹하지 않은 여러 사회주의의 세력을 모조리 집결하여 미소 양대 진영으로부터 독립된 유럽을 구축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사르트르는 반미적이 되고 다른 간부들은 반공적이 되어, 사르트르는 조직을 탈퇴하였다.

<더러운 손> : 사르트르는 이 작품에서, 혁명을 지향하지만 현실적 정책을 채용하고 있는 노동당의 당수와 그를 암살하려는 급진파 당원, 그리고 당수의 암살을 결국 실천하는 프티 부르주아와 인텔리 등 세 사람의 생활 양식을 통하여 공산주의를 통렬히 비판했다. 중화 인민 공화국이 성립되고,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미국의 메카시즘이 선풍을 일으키고, 소련에 강제 수용소의 존재가 밝혀지자, 사르트르는 수용소를 비난했으나, 동시에 유럽 자본주의 국가에는 수용소 대신 실업과 식민지주의가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비인에서 개최된 평화 옹호 대회에 참석하여 자신이 공산주의의 동반자라고 선언했다.

<변증법적 이성 비판> : 부르주아 계급의 분석적 정신의 오류를 지적하고 전체적인 인간학에 철학적 기초를 부여하며 스탈린주의의 관료성과 독점성에 의해서 정체되고 불모화된 마르크스주의에 실존주의적 방법을 적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도차이나 전쟁 : 디엔비엔푸 함락으로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에서 철수했다. 사르트르는 알제리 전쟁에서, "알제리에 있어서의 불복종의 권리에 관한 선언("121인 선언")"의 발기인이 되어 격렬한 반식민지 투쟁을 벌였다. 1968년에는 학생들을 주체로 한 5월 혁명을 지원했다. 소련의 체코 침공에, 소련 작가 동맹과 절교를 했다.

4)사르트르와 공산주의

인간의 근원적인 자유에 대한 인식 하에서 주체적 생성의 가능성을 보장하려는 사르트르의 개인주의와, 유물론에 입각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상으로 삼는 공산주의는 그 철학적 기초에 있어서나 혁명의 목적에 있어서나 타협의 여지가 없는 양극을 이루었다. 1)유물론이라는 공산당의 철학은 인간의 근원적 자유의 인식에서 출발하는 그의 철학과 부합하지 않는다. 2)부르주아지 출신이라는 그의 신분이 공산당의 적이다. 부르주아 지식인은 전적인 비판의 자유를 갖고자 하는데 공산당은 이 자유가 부르주아지 그 자체에 대해서 행사되는 것만을 인정할 뿐이다. 사르트르가 설립한 정당 "민주 혁명 연합"은 좌절을 겪는다. 사르트르는 <유물론과 혁명>에서는 통렬하게 유물론을 공격하고, 헝가리 사태에 대해서는 의연하게 반소적인 태도를 표명하며, <변증법적 이성 비판>에서는 마르크시즘과 실존주의를 융합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모택동을 예찬했다. 근자에는 사회 혁명 수단으로서 문학 활동은 효용이 없다고 선언했다.

사르트르 비판

1)그에게는 죽음에 대한 집념이 없다. 그가 말하는 미래란 죽음 직전까지의 현세에 있어서 생성의 시간이며 결코 죽음과 죽음을 넘어서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사상이다.

2)그는 인간을 미래로의 투사로만 파악하므로 과거의 짙고 무거운 그림자를 지녀야 하는 고민을 모른다. 과거를 지니지 않는 인간, 과거와 미래 사이에 찢기지 않는 인간이란 필연성 없는 가공의 인물이며 사르트르의 사상적 괴뢰다.

3)독재와 착취와 계급을 부정하는 부단한 혁명이 단독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 사회 혁명은 반드시 일정한 정치 세력과 관계 하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사르트르가 지향하는 문학 역시 어느 정당과 결부되어야만 실효를 거둘 수 있다.

5.카뮈와 사르트르

당시 프랑스에서는 개인적 사상과 사회적 현실과의 연관성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게 되어, 레지스탕스 활동이 그들에게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다. 그들의 사상은 다음의 3단계를 거쳤다. 1)공동체 의식이 싹트기 전의 인간 성찰. 2)양자의 병존. 3)이 양자의 연결 시도. 사르트르가 <구토>로부터 오늘날의 고독하고 열광적인 좌익 운동에 이르는 궤적을 따르는 동안, 카뮈는 <표리>로부터 <페스트>를 거쳐 <전락>으로의 과정을 나타낸다. 대전 후에 그들이 커다란 매력을 끼친 이유는 기독교의 인간관이나 전통적 휴머니즘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듯이 보이는 대전 전부터 그들 특유의 개인관이 가치의 황무지에서 새삼 문제가 되고, 또한 바로 이런 황무지에 대한 철저한 인식 위에 새로운 공동체 윤리를 세우려는 그들의 자세가 영웅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참여 문학, 철학적 문학, 새로운 휴머니즘 또는 실존적 문학 등의 호칭 하에, 사르트르와 카뮈는 쌍생아처럼 취급되었다. 그러나 1952년 카뮈의 <반항인>을 계기로 두 사람은 정면 충돌하게 된다. 비폭력과 윤리를 내세우는 카뮈에 반해, 사르트르는 피억압 계급의 해방을 초미의 과제라고 생각했다.

부조리란 무엇인가. 사르트르는 외계의 사물은 물론 인간의 존재가 그 자체로서는 뜻이 없다(존재론적 부조리)고 본 반면에, 카뮈는 부조리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설명될 수 없는 관계일 뿐, 주체 그 자체의 존재는 결코 아니라고 보았다. 카뮈는 이성적으로는 성립될 수 없는 주객의 관계를 정열적인 실감을 통해서 회복하려 한 것이다. 카뮈도 사르트르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등지지 말아야 하는 작가의 책임을 강조하고, 그럼으로써 자아의 차원이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사회적인 것으로 옮아간다. 그러나 현실과 대처하는 사상적 근거는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1)참여의 문제 : 카뮈는 사르트르처럼 사회 현실에 대한 적극적, 자의적 참여가 작가의 본질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을 위협하는 현실에 대하여 등을 돌리지 않고 의연히 대처하려는 그의 입장은 징집을 당한 장병이나 노예선에 실린 수인과 같은 강제적인 것이며, 결국 작가 개인의 집념은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의 초기작에 나타난 행복과 비참, 삶과 죽음, 설명을 요구하는 이성과 설명될 수 없는 현실 사이의 갈등이 이제는 자유와 독재, 정의와 부정, 창조와 허무 사이의 갈등으로 옮아가고, 전자를 지키기 위해서 후자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투쟁을 불가피한 당면 과제로서 받아들이려는 가장 두드러진 표현이 소설 <페스트>, 이론 <반항인>으로 나타났다.

2)인간관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역사관 : 카뮈에게 인간이란 결코 부조리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그 자체의 독특한 위엄과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작가의 사명은 그의 속에 깃든 위대성을 지켜나가는 데 있다. 그런데 역사는 이런 인간성을 짓밟는 요소에 대한 투쟁인데, 현대사에 등장한 혁명 이론은 있을 수 없는 절대적 진리의 이름 아래 인간 자체를 부정하는 테로리즘을 내세운다. 따라서 작가는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의 편에 설 수 없고 역사의 흐름을 저지함으로써 인간을 지켜나가야 한다. 이것은 혁명 과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해나가기를 주장하는 사르트르의 견해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사르트르가 한국 독자에게 끼친 영향

사르트르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해방 공간인 1948년 <신천지> 등의 문학지에 그의 단편 <벽>이 번역되고 실존주의 특집 등이 게재되면서부터다. 그러나 그가 실존주의 문학의 총아로 인식되면서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를 얻게 된 것은 6.25 이후부터 동족상쟁으로 인한 철저한 파괴 상황 속에서 한국의 문학 청년들은 인간은 "자신이 하는 바에 의해 규정된다"는 실존주의의 어찌보면 영웅주의적이기조차 한 상황 윤리에서 구원을 보았다.

"말하는 것이야말로 행동하는 것"이라는 그의 문학관도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폭발적 동의를 얻었다. 문학 평론가인 김윤식 교수는 "사르트르와 우리 세대"라는 글에서 "사르트르는 우리 세대에게 선택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열을 제시해주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따라서 50년대 한국 문단에서 사르트르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장용학은 실존주의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요한시집>을 발표해 인기 작가로 부상했고, 젊은 평론가 이어령은 마치 사르트르의 산문을 방불케하는 수사로 가득찬 평론을 발표해 문명을 떨쳤다. 그러나 60-70년대 사르트르가 보여준 전투적인 정치적 궤적들은 냉전 사고에 젖어 있던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67년 <창작과 비평>에 실린 그의 <현대>지 창간사 등이 "정치화된" 사르트르의 면모를 소개하는 몇 안되는 문헌이었다.

80년대 사회 변혁에 대한 실천적 관심이 커지면서, 대학가에서는 그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 필독서로 대접받는다. 66년 사르트르의 일본 방문 때의 강연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전문 분야에 몸담고 있는 기능적 지식인들은 보편적 진리를 위해 지배 계급에의 봉사를 거부할 때 참된 지식인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지식인관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Paris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Sartre는 Ecole Normale Superieure를 졸업하고 1929년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Le Havre, Paris의 lycee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독일철학, 그 중에서도 특히 하이데거의 영향 속에서 싹튼 <실존주의>라는 새로운 사조를 일으켜 전후 불모의 정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철학·소설·연극·비평 등 다방면에 걸쳐서 철저한 니힐리즘과 격렬하고 전투적인 무신론, 사회주의, 최대한의 자유를 주장하는 모랄 등 그의 전 생애를 통해 다양한 문학·철학·사상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의 첫 작품인 「La Nausee」(1938)를 출발로 하여, 존재의 불안정성과 무근거성 앞에 직면한 인간에 대한 실존적 정신분석의 날카로운 측면들을 보여 주는 단편집 「Le Mur」(1939) 등을 통하여 Sartre는 역사의 발전에 낙관적인 전통적 휴머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보여 주고, 아울러 자아와 사물의 무상적 존재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시도했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양태에 대한 분석에 머물던 그의 정신세계는 2차 대전을 계기로 일대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어 역사의 현장 속에서 획득해야 할 인간의 존재론적인 자유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러한 자유의 인식을 가로막는 일체의 허위적 개념이나 자기 기만의 거부를 요구한다. 그때 개인의 절대적 자유는 타인의 존재와 상황과 팔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며, 그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적·사회적 세력과의 투쟁이 불가피해진다. 이러한 모랄을 선언한 것이 바로 「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1946)이다.

이후, 그에게 있어 문학은 이러한 윤리를 천명하는 수단이 되어 「Les Chemins de la liberte」(1945∼49)에서는 자유와 주체적 선택을 결부시키지 못한 한 지식인이 공동체에 눈 뜨고 진정한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는 과정을 통해 일정한 역사적 상황하에서 결단의 문제를 다룬다. 또한 「Qu'est-ce que la litterature」(1948)에서는 문학이 자유의 실현을 위한 투쟁임을 강조하면서 이른바 참여문학의 이론을 주장하였다. 이 시기의 그의 문학활동은 정치적 관심과 중첩되어 「Les Mouches」(1943), 「La Putain respectuese」(1946), 「Les Mains sales」(1948), 「Les Diables et le Bon Dieu」(1951) 등의 희곡 작품을 통해서 대중을 억압하는 부르주아지를 고발하고 그 피압박 계급의 해방을 주장하는 한편 정치연설 등을 통한 참여와 투쟁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4년 자서전적인 작품 「Les Mots」를 발표하고 난 후, Sartre는 사회적·정치적 혁명의 수단으로서의 문학활동은 소용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참여이론은 문학의 자율성을 문제 삼고 문학의 본질에 나름대로 접근해 갔다는 의의를 지닌다고 볼 수 있으며, 인간의 근원적 모습과 존재의 문제에 대해 집요한 성찰을 보여 준 그의 다양한 문학활동은 중요한 문학적 성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1938년에 발표한 「La Nausee」는 주인공 Roquentin의 일기 형식을 취하고 있는 심리소설에 가까운 작품이다. Roquentin은 한 인물에 대한 전기를 쓰려고 하지만 모든 존재와 사물들이 순간 순간 그에게 일으키는 일종의 <구토>때문에 일을 하지 못한다. 그 구토는 존재를 정당화시킬 수 없는, 존재 의미의 상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아와 타인과 사물을 맺어 온 관계는 논리적인 필요성을 모두 잃어버리고 전혀 근거없는 것들이 되어 버리며, 그때의 존재태란 <잉여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러한 존재의 허구성에 모든 것을 체념하고 떠나려는 Roquentin에게 들려 온 음악의 선율이 예술적인 창조를 통해 생존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구원의 실마리를 찾게 하는 것으로 작품은 마감된다. 이 작품은 존재의 양태와 존재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뛰어난 실존적 심리분석에 의해 표출된 소설이라 평가된다.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1905년 6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해군장교인 쟝-밥티스트 사르트르(Jean-Baptiste Sartre)였으며, 어머니는 샤를르 슈바이처-알버트 슈바이처의 삼촌이기도 한-의 딸인 안네-마리 슈바이처(Anne-Marie Schweitzer)였다. 그가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사르트르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외갓집으로 가서 1916년 어머니가 재혼할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그는 어린시절 외할아버지로부터 독일어를 배우면서 문필과 학문을 숭상하는 명문 슈바이처 가문의 지적 분위기를 익혔다. 1916년 그는 해양기사인 망시와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라로셀(La Rochelle)로 가 의붓아버지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지만 그곳에서 지낸 4년 동안의 생활은 의붓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1924년, 그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서 4년 동안 주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했다.

1928년, 그는 교수자격 국가시험(Agregation)에 응시했으나 실패했다. 그 이듬해 그는 시몬느 드 보봐르(Simon de Beauvoir)와 만났다. 이때부터 이 두 사람은 세인(世人)의 주목거리가 된 실험적인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 해에 두 사람은 교수자격 국가시험에 응시하여 사르트르와 보봐르가 각각 1,2등을 차지함으로써 다시 한 번 주위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1929∼31년까지 군복무를 마친 사르트르는 1931년부터 르 아브르(Le Havre)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그곳은 그의 소설 『구토』(Nausee)에 나오는 지명인 부비유(Bouville)의 모델이 된 도시였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는 그의 유학기간이었다. 독일의 베를린 대학과 프라이브르크 대학에서 그는 후설의 현상학을 공부했다. 독일에서 돌아온 그는 파리에 있는 꽁도르세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수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1939년 그는 전쟁에 동원되지만 1940년 싸워보지도 못하고 포로가 되었다. 그 이듬해 풀려나자 그는 메를로-뽕티와 함께 지식인 저항그룹을 결성했다. 이때부터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다.

1945년에는 「Combat」와 「Le Figaro」의 특파원으로 두 번에 걸쳐 미국을 여행하면서 '실존주의와 휴머니즘'을 주제로 한 강연을 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특히 그 해에 그는 '레종 도뇌르'(La Legion d'Honneur) 훈장의 수여를 거부함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또한 1945년은 그가 창간한 잡지 「현대」(Les Temps Modernes)가 처음 출판되는 해이기도 하다. 1948년부터 그는 정치문제를 비롯한 현실문제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각종 탄원서와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1964년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하여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1974년 꽁도르세 고등학교의 교직생활을 끝으로 철학교수로서 대학 강단에는 더 이상 섰던 적이 없다. 수많은 강연과 인터뷰들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을 직접 토로하는 것 이외에는 평생을 저술활동에만 전념했다.

사르트르가 출판한 최초의 저서는 1936년에 자아에 관한 문제를 다룬 『상상력』(L'imagination : Etude critique)이라는 책이었다. 1938년에는 그의 유명한 소설 『구토』가 출판되었으며, 『정서이론의 스케치』(Esqisse d'une theorie des emotions)와 소설집 『벽』(Le Mur)이 그 이듬해 나왔다. 1940년 그는 독창적인 이마쥬론인 『상상력 : 상상력의 현상학적 심리학』(L'imgination : psychologie phenomenologique de l'imagination)을 출판했다.

그가 사병생활 시절 병영에서부터 쓰기 시작한 대표적인 철학저서 『존재와 무』(L'etre et le neant : essai d'une ontologie phenomenologique)는 1943년에 출판됐다. 그 해에는 그의 희곡 『파리떼들』(Les mouches)이 Theatre de la Cite에서 공연되었다.

1945년에는 두 권으로 된 소설 『자유의 길』(Les chemins de la liberte)과 잘 알려진 희곡 『닫힌 문』(Huis clos)이 나왔다. 그의 유명한 강연인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가 행해진 것도 같은 해였다.

1947년 그는 『보들레르 연구』(Baudelaire)를 출판했고, 그의 잡지 「현대」에다 「문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litterature?)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그간의 논문들을 모아 「상황들」(Situations)이라는 논문집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이 논문집은 그 뒤 1948년, 49년, 64년, 65년, 72년, 76년에 걸쳐 10권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전집 가운데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제2권, 1948),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제5권, 1964), 「마르크스주의」(제6권, 1964), 「마르크스주의 2」(제7권, 1965), 「68년을 전후하여」(제8권, 1972), 「정치학과 자서전」(제10권, 1976)등이 실려 있다.

1952년 그느 쟝 쥬네(Jean Genet)의 저서에 대한 입문서인 『성 쥬네 : 희극배우와 순교자』(Saint Genet : Comedien et martyr)를 출판했으며, 1950년 이제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태도 변화는 그로 하여금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결합을 시도케 하여 1960년 그 첫 번째 결실로서 『변증법적 이성비판』(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인 제1권을 그는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1964년에는 그의 노벨상 수상작품인 『말』(Les Mots)이 나왔다. 1971년 그는 플로베르에 관한 방대한 연구서인 『가문의 얼간이』(L'idiot de la famille : Gustave Flaubert de 1821 a 1857)의 출판을 시작하여 그 이듬해까지 세 권으로 완성했다.

 

 

 

소설미디어:구토 (La nausée) (1938)
벽 (Le mur) (1939)
자유에의 길 (Les Chemins de la liberté) (1949)
[편집] 희곡파리떼 (Les Mouches) (1943)
닫힌 방(Huis clos) (1944)
무덤 없는 사자 (Morts sans sépulture) (1946)
존경할 만한 창녀 (La Putain respectueuse) (1946)
더러운 손 (Les Mains sales) (1948)
악마와 신 (Le Diable et le Bon Dieu) (1951)
알토나의 유폐자들 (Les Séquestrés d’Altona) (1959)
[편집] 비평상황 I-X (Situations I-X) (1947~76)
문학이란 무엇인가 (Qu'est-ce que la litterature) (1947)
보들레르 (Baudelaire) (1947)
성자 주네, 배우와 순교자 (Saint Genet, comedien et martyr(1952)
집안의 천치 I-III(L'Idiot de la famille I-III) (1971,1972)
[편집] 철학서상상력 (L'Imagination) (1936)
상상계 (L'Imaginaire) (1940)
존재와 무 (L'Etre et le néant) (1943)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 (1946)
변증법적 이성비판 (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 (1960)

 

 

 

문학이란 무엇인가

 

 

작가란 파괴하고 가설하고, 드러내야 한다. 끊임없이 증명하고 본의를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큰 계획을 말하고 작가의 내면, 개인적 동기를 드러내라. 작가의 주장, 본의, 의도가 드러나야 한다. 비평가는 작가가 드러내지 않았던 것을 파헤쳐서 드러내고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작가 개인의 성향에 적용해서 작품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메시지 비평이다. 사르트르는 그런 메시지 비평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오히려 작가를 무력화시키는 일이라 한다. 까뮈가 알제리 혼혈아 출신임을 알고 <손님>이라는 단편과 연결 지어 작가를 평가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지드의 <좁은 문>에서 순수한 사랑보다 지드의 동성애자임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토마스만 역시 동성애자이기에 그의 작품을 동성애 코드로 해석하는 것도 좋지 못하다.

사르트르는 작가는 개인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평가는 작가에게 메시지 비평을 위해 개인의 이야기를 담는 글을 쓰길 요구하지만 그러지 말라고 한다. 작가는 비평가가 비평하기 쉽게 글을 써선 안 된다.

장 폴 사르트르가 메를린퐁테와 연극 활동을 한다. 그리고 장 쥬네의 자신의 내면의 글쓰기 방식을 선호한다. 산문작가는 패배를 향하여 참여하는 사람이다. 결국은 현ㅅ힐에선 패배하지만 문학적 승리이다. 산문작가 세계의 파괴 건설이 목적이다. 그래서 패배로 가는 인생이다. 이것이 시인이 참여하는 의도이다. 시인의 참여를 의도한다면 그것은 패배를 위한 참여이다.

언어는 존재를 담아낼 수 있다. 존재를 담아낸다는 것은 현실, 정치를 이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에서 이야기가 가능하다. 시는 세상의 존재나 진리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정치가 이 세계가 어떤 존재인가. 진리인가. 연구하는 거라면 가능하다. 진과 선은 문학, 예술이라는 것을 통해 드러날 수 있다. 문학은 진리, 정치, 존재의 문제를 담아낼 수 있다. 시가 진리 생산하고 존립을 수립하는 입장과 무관하게 모든 것을 거부한 사람은 플라톤이다. 플라톤의 모방론은 예술은 진리와 상관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술을 통해 진리를 수립하고 미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사르트르는 <구토>에서 세계의 무관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존재와 무>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인간이란 헛된 정열. 인간은 이유없이 태어나 살다 죽는 것이다 라고 하며 종이칼에 비유한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종이칼., 아이들도 계획을 갖고 있는데 인간은 종이칼만도 못하다.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 인간이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존을 채우기 위해 행동, 참여 해라고 한다. 그래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를 쓴다. 그러나 알튀세르가 사르트르가 라깡의 실존에 대해 제대로 알고 말하라면 일침을 가한다. 그리고 알튀세르는 막시즘과 휴머니즘은 상관없다. 인식론적 단절에 의해 휴머니즘 막시즘과 과학자 막시즘으로 나뉘어야 한다고 한다. 막시즘을 제대로 알아라고 한다. 민중은 사르트르를 좋아했지만 지식인은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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