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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향기

철수 사용 설명서, 이 친구 담백하고 뒷맛 있네.

by 아프로뒷태 2011. 8. 14.

 

 

 

 

 

『철수 사용 설명서』를 읽기 전에, 『철수 사용 설명서를 읽기 위한 사용 설명서』를 권장합니다.

 

2000년대 후반들어, 경제 불황으로 인한 청년 실업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고, 지금은 한국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청년 실업이라는 사회문제를 두고 청년들이 분노하는 세상이 되었다.

 

사회에 나와서 갈 곳을 잃은 청년들은 심각한 패배주의에 빠져 사회활동을 접고 개인만의 공간에서 개인의 취향에 빠져 산다. 때론 오타쿠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사랑도 못해보고 패배하는 삼돌이가 되기도 한다. 요즘 세대들의 말로 표현하자면, 사회 루저가 된다.

 

사람들은 사회 루저인 철수를 이제는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한다. 네가 있던 말던, 질리거나 고장나거면 바꾸면 그만이다. 그것도 아니면 돈만 있으면 사고 버릴 수 있는 물건쯤으로 취급해버린다.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라고 생각하겠지만, 뭐 『철수 사용 설명서』과 같이 사람을 사물화 하여 사회문제를 부각시키고 세태를 비판한 소설이 어디 이 책 뿐이던가. 그리 놀랍지도 않는 소설이다. 

 

하지만 철수를 자본주의 생산물의 제품 설명서로 대체한 점은 유익하다. 책을 읽는 내내, 실업 청년의 고통을 질척거리지 않게 묘사한 것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론 그것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무관심과 잔인한 시선으로 이 책을 바라본다면 철수를 건조하게 드러낸 것이 장점이겠지만, 철수를 지나치게 건조하게 드러낸 것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청년 실업에 또는 예비 청년 실업에 놓인 젊은 세대들을 무심하게 바라볼게 할까 걱정되게 만든다.

 

『철수 사용 설명서』를 거뜬히 한 자리에서 읽었다. 책을 덮는 순간, 그런 생각이 번뜩였다.

 

이 친구 담백하고 뒷맛 있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철수의 수난과 실패는 연애와 가족관계' 를 통해 한 작가의 '성장소설' 이나 '세태소설'  또는 ' 자전소설' 과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철수가 '소극적이며 우유부단한 성격에다 긴장하면 온몸이 뜨거워지는 증상을 보이는 ' 쑥맥이며 '사랑하는 ‘그녀’와 결정적인 단계에 접어들 때마다' 섹스를 할 때마다 온 몸에 열이 나는 바람에 '실수와 패착을 거듭' 하는 데에서 다소 현실적이기보다 영화나 만화적인 철수의 캐릭터를 만났을 것이다.

 

'부모 및 친척들과의 관계 역시 원만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철수가 보기에 문제는 회사와 그녀들과 가족들 모두 철수 자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전석순 작가가 그랬듯 누군가는 철수를 사용할 것이다. 오직 '단 한 사람만' 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나?

 

 

 


▶[35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작가

<철수 사용 설명서>에서 스물아홉 살 철수는 불량 청춘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자기 자신의 사용 설명서를 써내려 간다. 인간을 제품에 비유하는 발칙한 상상력! 그것이야말로 첫 장편 소설을 발표한 20대 작가에게 기대하는 바다.

-사람을 제품에 비유하고, 전체적으로 ‘사용 설명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취업도 못하고 연애도 못하고 가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철수는 불량품 취급을 받는다.

흔히 “취업을 잘하려면 ‘스펙’(Specification(설명서)의 줄임말)이 좋아야 한다”고 하잖나. 그 시선을 극단적으로 가져감으로써 비인간성을 확실히 드러내고 싶었다. 또 사용 설명서를 쓰려면 그 제품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20대의 삶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그들을 위로하는 방법이다. 비인간적인 시선과 위로의 시선을 함께 보여줘야만 비로소 20대의 고민을 진실하게 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볍다. 사람을 제품 취급하는 사회 풍경을 더 심각하고 무겁게 그릴 수도 있었을 텐데.

가볍게 그리면 그릴수록 사람을 제품 취급하는 시선의 섬뜩함이 더 도드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철수의 이야기를 건조하고 냉소적으로 풀다가 몇몇 대목에서 철수가 느끼는 열패감을 물씬 드러낸다.

단편 소설을 쓸 때는 인물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철수 사용 설명서>(민음사)는 사용 설명서라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진짜 ‘사용 설명서’처럼 건조한 문체로 철수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되, 독자가 철수에게 조금씩 공감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전석순 작가도 올해 스물아홉 살이다. 철수는 작가의 모습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나?

철수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내 모습에서 평범한 부분만 골라 반영했다. 하지만 난 철수처럼 취업을 준비해 본 적도 없고, 누나도 없다. 나와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자료 조사를 많이 했다. 내 얘기를 그대로 쓰면 편하긴 한데, 그에 너무 기대다 보면 필요 없는 부분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철수 사용 설명서>를 완성하고 보니, 내 모습은 한 40퍼센트 정도 드러난 것 같다.(웃음)

-요즘 수많은 젊은 작가들이 20대의 비루한 삶을 그린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게 관건이다.

첫 장편 소설에서 남들이 다 했던 얘기를 반복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습작을 쓸 생각으로 이 소설을 구상했다. 그러다 ‘사용 설명서’라는 형식을 가져오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소설 내내 누군가 자신을 제대로 사용해 주기만 기다리던 철수는 드디어 마지막에 자신의 사용 설명서를 읽을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다. 계속 남들의 평가를 받는 데 길들여지다 보니 자신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잊어버린 거다. 그걸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철수 사용 설명서>를 읽으면서 <재밌는 TV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tvN)이 떠올랐다.

하하. 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2) <걸프렌즈>(2009) 등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 영화화된 경우가 많은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사용 설명서’ 형식을 취하느라 일부러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를 약화시켰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영화화된다면 쓸쓸한 코미디가 되지 않을까?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코미디.(웃음) 봉태규가 철수를 연기하면 그 느낌을 잘 살릴 것 같다.(웃음)

 

 

 

세계일보

살인적 등록금에 '허덕'… 토익시험에 내몰리고… 졸업하면 실업자 전락, 20代의 슬픈 자화상

 

 

 

‘29세 남자, 키 173㎝, 몸무게 65㎏, 발 사이즈 270㎜, (지방) 국립대 졸업.’

크게 내세울 것 없는 이 같은 ‘제품 규격사양’으로, 평균은 된다고 자부하며 살아가는 취업준비생 철수. 하지만 현실 문턱은 높기만 하다. 취업 모드에서는 선택받지 못하고, 연애 모드에선 잇따라 반품처리된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고장은 났지만 버릴 수도 없는, 어디에 써야 할지 막막한 물건”(19쪽)이요, 어머니에겐 “어느 날 갑자기 용도도 정해지지 않은 채 툭 던져진 물건”(45쪽)이 된다.

올해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철수 사용 설명서’(민음사)에서 탄생된 캐릭터 철수 얘기다. 살인적인 등록금에 시달리고, 토익에 내몰리며,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가 되는 대한민국 20대의 슬픈 자화상 같은. 2008년 등단한 신예 전석순(28)씨는 매력적인 캐릭터 철수와 함께 제품 사용 설명서 양식을 차용한 형상화, 보편적인 메시지 등을 앞세워 만장 일치로 ‘오늘의 작가상’을 차지했다.

앙증맞은 만화 캐릭터를 표지에 넣은 ‘철수 사용 설명서’는 정상적인 인물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현대의 모순과 비극을 비판하는 세태소설이고, 취업과 연애 등에서 좌절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성장소설이다. 또 평범한 스물아홉 백수 철수의 좌절과 실패를 통해 우리 사회 청춘을 위무하는 ‘루저소설’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제품 사용설명서 양식을 따라 전개된다. 철수의 제품 규격 및 사양부터 사용하기, 설치 방법, 전원공급, 청소방법, 주의사항, 제품 Q&A, 제품 보증서 등 사용 설명서 양식 속에서 들숨과 날숨을 반복한다. 평범한 취업준비생 철수는 취업, 학습, 연애 모드 등 여러 기능을 갖고 있지만 실제 사용과정에선 하자투성이로 간주된다. 때론 고장이 나 불량품으로 취급된다.

 

“세탁 기능을 배우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헹굼이나 탈수 기능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세탁기 같았다. 철수는 ‘세탁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항균 기능에 삶음 기능까지 갖춘 세탁기들이 바글바글했다.”(23쪽)

이에 철수는 기준과 표준에 따라 평가되는 경쟁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하고, 불량품이 될 위기에 처한 자신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사용 설명서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온 힘을 기울여 자신에 맞는 사용설명서를 만들지만, 사용 설명서가 완성될 즈음 완벽한 제품은 애초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

“언제 어디서나 완벽한 제품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건 철수도, 철수를 사용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용설명서는 불량품이 아닌 정상 제품이 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껏 애매모호한 기준을 붙잡고 달려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설명서는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 계속 고쳐 나갈 뿐이다.”(215∼217쪽)

소설의 메시지는 캐릭터와 형식의 참신함과 달리 오히려 보편적이다. 철수를 통해 인간을 사물화하고 상품화하는 시대에 문제를 제기하고, 사람이 문명과 기술에 의해 소외받는 현실에 대해 비판한다. 가볍게 따라가다가 막판 근원에 다다른 것을 알게 될지도. 결국 철수는 이리 치이고 저리 받히며 ‘루저’가 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청춘의 한 상징이 된다.

다만 일부 독자는 작가가 사용 설명서 양식을 충실히 따르다보니 상대적으로 사건이나 사고, 행동 등으로 나아가지 못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매력적인 인물(철수)과 탁월한 배경(사용 설명서)에 균형을 맞추는 사건적 요소까지 소망한다면, 과욕일까. 그럼에도 소설은 작금의 대한민국 청춘을 위무하기에는 모자라지 않는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한겨레 신문

20대 청년백수가 불량제품? ‘사용 설명서’ 제대로 읽어봐

무능력한 사람은 망가진 선풍기, 인턴십은 ‘체험 사용기간’ 표현, ‘물화 이데올로기’ 반어적 야유

 

 

 

» 전석순(28)

» 〈철수 사용 설명서〉

지난 1일 저녁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작가 박범신의 소설 <내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출판기념회 겸 정년퇴임 기념식은 의미 있고 따뜻한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서 눈길을 끈 것 중 하나는 박범신이 손수 서명한 책을 두 제자에게 증정하는 차례였다. 그 두 제자는 김현영과 전석순. 그가 1991년 명지대 문창과 교수로 부임한 뒤 문단에 내보낸 50여 명의 ‘작가 제자’ 중 첫 번째와 마지막에 해당하는 이들이다. 새로 나온 <철수 사용 설명서>는 바로 그 전석순(28·사진)의 소설로, 올해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이다.

 

제목부터가 파격을 넘어 도발적이기까지 한 이 소설은 스물아홉 살 청년 철수의 삶을 가전제품 사용설명서 형식에 담아 전한다. 대한민국의 평균적 청년 철수가 취업과 연애, 가족관계 등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루저’(패배자)로 내몰리지만, 그런 딱지가 과연 온당한 것인지를 작가는 따져 묻는다.

 

“주변에서는 체험 사용 기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철수를 대할 때마다 빨래를 하지 못하는 세탁기나 바람이 나오지 않는 선풍기 보듯 했다. 철수는 아버지에게 고장은 났지만 버릴 수도 없는, 어디에 써야 할지 막막한 물건이었다.”

 

인간을 물건 취급하는 물화(物化)의 논리는 제목과 형식에서뿐만 아니라 문장의 비유 차원에서도 철저히 관철된다. 기업의 인턴십을 ‘체험 사용 기간’으로 표현한다든가 무능력한 사람을 망가진 세탁기나 선풍기에 견주는 데에서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물화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어적 야유가 도드라진다. “철수는 늘 충전 중이었다”거나 “철수보다 기능이 떨어지는 제품은 없는 듯했다”와 같은 문장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 가까이 취직을 하지 못하는 철수는 이 시대 대한민국 청년의 표준에 해당한다. 그가 보기에 회사가 요구하는 ‘스펙’은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것이었는데도 언제부턴가 그 기준에 맞춰 입사하는 이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고, 어느새 그게 표준으로 자리잡는다.(그러나 “그게 진짜 표준이기는 한 걸까.”) 그러다 보니 그에 미치지 못하는 스펙의 소유자인 철수는 자연스레 루저로 분류되기에 이른다. 평범과 표준을 열등과 미달로 간주하는 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철수의 수난과 실패는 연애와 가족관계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소극적이며 우유부단한 성격에다 긴장하면 온몸이 뜨거워지는 증상을 보이는 그는 사랑하는 ‘그녀’와 결정적인 단계에 접어들 때마다 실수와 패착을 거듭한다. 그녀들은 때론 상반되는 이유를 들며 철수를 떠나간다.

 

부모 및 친척들과의 관계 역시 원만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철수가 보기에 문제는 회사와 그녀들과 가족들 모두 철수 자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는 자신의 ‘제품 사양’과 특성, 관리 요령, 주의할 점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사용 설명서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철수가 불량품이 되지 않을 방법은 딱 하나, 사용 설명서를 만드는 것뿐이다.”

 

 

 

 
(토마토 북리뷰)평범한 청춘들을 위한 지침서..'철수 사용 설명서'
[뉴스토마토 송주연기자]

 

'철수 사용 설명서'는 '철수'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이 땅의 모든 평범한 청춘을 대변한 책이다. 
 
'철수'라는 제품을 '준비하기', '사용하기', '관리하기', '주의하기'로 나눠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을 가리켜 혹자는 설명서적 잣대로 인간을 취급하는 현실에 대해 설명서적 형식으로 대응함으로써 그 소외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했다고 평가했다(김미현, 문학평론가).
 
무엇보다 이 책은 냉장고에게 토스트 기능을 요구하는 것, 세탁기에 텔레비전 기능을 주문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본래 사용 목적과 상이한 기능까지 요구하는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땅의 '철수'들이 고장 난 것이 아니라 그대들이 제품의 고유한 특징을 모르고 잘못 사용한 것은 아니냐고.
 
철수는 대놓고 항변한다. "단순히 사용자의 기대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고장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당초 화가의 기능을 위해 태어났어도 국영수 과외를 받아야 하고, 음악가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토익 점수가 없으면 고장난 제품 취급을 받는다.
 
"원하는 기능을 강요할 뿐, 제품이 어떤 기능을 갖추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제품 고유의 특징 같은 것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니까. 모두가 인정하는 표준이 되지 않으면 불안해졌다. 결국 불행을 겪으면서 다들 행복한 표준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고장'으로 판명나지 않기 위해 유치원 시절부터 무한경쟁에 돌입한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4년제 대학에 가도, 어학연수를 다녀와도, 높은 토익 점수를 받아도, 대기업 인턴을 해도 '철수'는 늘 부족한 제품이다.
 
누가 더 빨리 새 기능을 업그레이드 했는가로 제품의 정상 여부를 판단하는 통에 많은 '철수'들은 왜 그래야하는지 제대로 묻지도 못한 채 당연한 듯 끝없이 어깨에 머리에 무언가를 얹히고 또 얹힌다.
 
누가 만들어냈는지 알 수도 없는 표준을 따라가기 위해서.
 
하지만 자신의 향상된 성능을 만족할 수 있는 철수는 거의 없다. 곧바로 신제품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철수의 입을 빌어 말한다. "철수의 잘못인지 사용자의 잘못인지 따질 게 아니라 표준규격을 의심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그게 진짜 표준이기는 한 걸까. 아니면 모든 제품이 그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것 자체를 의심해야만 했을까."
 
철수의 질문이 가슴을 울린다. 
 
뉴스토마토 송주연 기자 sjy2925@etomato.com

 

 

 

 

 

 

 

 

 

 

전석순 사용 설명서

 

『철수 사용 설명서』를 읽는 당신은 전석순을 제대로 사용하고 싶을 것입니다. 전석순은 무엇이고, 우리에게 주는 기쁨은 무엇이며 전석순이 전석순이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을 것입니다. 전석순을 제대로 사용하고 싶다면 『전석순 사용 설명서』를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신춘문예 당선작]단편소설-회전의자


라면 한 박스를 이고 컨테이너 박스로 가는데 글쎄 나무들이 울면서 통째로 떠내려 오더라.


우우거리면서 쓸려 가는데 별안간 네 생각이 나지 뭐니.


너도 거기서 그렇게 울고 있을 것만 같더라.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꽁꽁 묶어놓은 것처럼 엄마의 목소리는 아득했다.


전화할 때마다 엄마는 나름대로 내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만들었다.


내가 사는 곳에 버스사고가 났다는데 혹시 내가 거기에 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해서, 오랜만에 집으로 외삼촌이 놀러 왔는데 한참 동안 내 얘기만 하다가 가셔서, 청소를 하는데 오래전에 내가 잃어버렸다고 속상해하던 머리핀이 나와서.


심지어는 밖에 바람이 부는데 자꾸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아서 전화를 하신 적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어디서 지내고 있는 거예요?


어디긴, 떠내려간 집 위에 임시로 마련해준 곳에서 지내고 있다.


안이 찜통이라 들어가 있진 못해도 없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니.


집 떠내려가고 이 더운 날씨에도 네 애비는 잘도 들어가 낮잠을 잔단다.


그래도 사람 안 다친 게 다행이지.


누구 다녀간 사람 있어요?


다녀가긴 누가 다녀가니.


자식이라곤 달랑 너 하난데.


여긴 연일 건조할 뿐이었다.


나는 엄마의 눅눅한 목소리를 낯설게 받아들었다.


어느 날은
계란말이를 하는데 맛소금이 없었다.


된장이며
고추장간장까지 챙겨주던 엄마는 굳이 가방 안에 굵은 소금까지 챙겨주었다.


여기서 마트까지 나가려면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했다.


때문에 보통은 주말에 필요한 것을 한꺼번에 사오는 편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굵은 소금을 꺼내 손가락 끝으로 잘게 부수어 계란을 푼
그릇에 넣었다.


그러다가 손끝이 아려서 보니 살짝 피가 돋아 있었다.


그 사이 굵은 소금이 꾸둑꾸둑 말라 있었던 것이다.


연일 건조한 날씨 때문에 굵은 소금에 손까지 베었다.


물기 있는 엄마의 목소리를 병에 담아두고 싶다.


아직은 좀 그래.


아버지도
건강하지? 엄마도.


그래.


너무 걱정 마라.


내가 괜한 소리 했나 보네.


여기 자원봉사자들이 수두룩하니까.


네 애비는 종일 자는 게 일인 사람인데 건강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겠니.


그래도 언제고 한 번 여기 들러라.


장마 지나간 뒤로 너무 변했어.


한창
공사하는데 너 올 때쯤엔 예전 모습이 하나라도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집이라도 못 찾으면 어쩌니.


엄마의 목소리엔 금방이라도
곰팡이가 꽃처럼 피어나고 불규칙한 무늬들이 돋아날 것만 같았다.


며칠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촘촘하게 비가 내리고 강물이 불어났다고 했다.


곧 전기가 끊어지고 수도가 끊어지고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긴 날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안전한 초등학교 체육관으로 피신했다.


아버지는 그때도 구석에 웅크리고 곤하게 주무셨다.


마을에서 급히 떠나온 사람들은 집에서 귀중한 것들을 챙겨 나왔다고 했다.


사람들이 죄다 그걸 하나씩 들고 나왔더라.


하긴 그게 제일 중요하다면 중요하지.


전화를 끊자 물기가 고일 것 같던 바닥이 금세 말랐다.


나는 엄마에게 여기는 너무 건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 계절에 건조한 곳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엄마가 누진 옷들을 말리기 위해 보일러를 틀 때면 나는 가습기를 주기적으로 작동시켰다.


바닥에 물을 쏟아도 걸레를 찾아 빨아서 오면 온데간데없이 물기가 사려졌다.


아무런 무늬도 남기지 않고 증발해버린 것이다.


뭐든 아무런 무늬를 남겨놓지 않고 허공에 붕 뜰 것 같은 나날들.


세탁기 안에 밀어 넣었던 빨래들을 도로 빼냈다.


더 이상 동전은 들어가지 않았다.


투입구 안쪽으로 꾸역꾸역 채워진 동전들이 보였다.


도열해 있는
기계들이 죄다 그랬다.


아무도 동전을 거둬가지 않으니 더 이상 세탁기를 쓸 수 없었다.


빨래방은 며칠 동안 이런 상태로 고여 있었다.


세탁기 안은 세제들이 말라붙어 있었고 섬유 유연제를 판매하는 자판기는 텅 비어 있었다.


바구니 안으로 빨랫감들을 아무렇게나 담았다.


거긴 빨래를 해도 금방 마르겠구나.


여기는 아침에 널은 네 아버지 팬티가 해가 질 때까지도 마르질 않는구나.


마르는가 싶으면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해.


젖은 팬티를 입는 것과 더러운 팬티를 입는 것 중에 뭐가 더 나쁜 거라고 생각하니.


세탁기를 들여놓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엄마는 세탁기가 없는 집에 사는 나를 안쓰러워했다.


잔뜩 따라놓았던 물은 전화하는 사이에 한 모금 정도가 줄어들었다.


엄마는 내 옆을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건조함을 잔뜩 미화하곤 전화를 끊었다.


내가 물기 있는 엄마의 목소리에 대해 부러워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바닥을 밟을 때마다 뿌옇게 솟아오르는 흙먼지들과 퍼석하게 말라버린 짐승의 배설물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눈물은 뺨에 흐르기도 전에 말라버렸다.


엄마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는데도 눈물을 흘리는 거 같다고 했다.


닦아보면 그것은 빗물이라고 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우산 하나씩은 끼고 다닌다.


저 사람은 우산이 없어 어쩌나, 하고 시선을 주다 보면
건물에서 나올 땐 가방에서 여지없이 우산을 꺼내 경쾌하게 펼치곤 한다.


그런 계절이다.


우산을 펼치는 소리만 가볍게 튀어 오르는 계절.


처음엔 예전에 살던 방에 들러 물건을 챙겨 엄마에게 내려가 볼 생각이었다.


전기세와
가스요금을 납부해야 했고 주인집에 수도세를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기차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터미널에 들러 엄마에게로 갔다.


엄마는 없던 길들이 생겨나고 있던 길들이 하룻밤 사이 사라진다고 했다.


멀쩡한 길이 강이 되어 흐르고 집 한 채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아직 시외버스가 다닐 때 가야했다.


엄마에게 다녀오고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비가 내리고 있다.


아직 복구공사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시 비가 내려 안타까움을 더해준다는 앵커의 목소리가
공중을 누렇게 떠다닌다.


이렇게 비가 쏟아질지 누가 알았겠니.


엄마는 목줄을 풀어놓지 않아서, 개집에 물이 들어찰 때까지 꼼짝없이 묶여있던 누렁이 시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모종삽을 들고 산으로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복구공사 중이라 산을 오를 수 없었다.


오랜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아버지는 곧 다시 누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창 더울 때 잡아먹는 건데 말이야.


모로 누운 아버지는 부러 큰 소리를 냈었다.


터미널 매점 여자는 깊숙한 곳에서 우산을 꺼내준다.


가방에는 조악한
꽃무늬 양산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어떤 우산을 드리냐는 물음에 내가 했던 대답은 심드렁했다.


그냥 아무 거나요.


여자는 수북이 쌓인 우산들 중에서 맨 아래에 있는 것을 빼준다.


손의 움직임이 제비뽑기를 할 때처럼 사뭇 진지하다.


아래에서 우산을 빼내자 빽빽하게 쌓인 우산들이 흐트러진다.


그러는 사이 빼낸 자리가 메워진다.


우산 하나를 빼낸 자리는 이제 티도 안 난다.


여자는 장마 동안 우산을 다 팔 수 있을까.


아무런 무늬도 없고 두 번밖에 접혀지지 않아 핸드백에 넣을 수도 없는 우산을 쓰고 예전에 살던 방으로 왔다.


사람들은 조금만 조밀해지면 저마다 우산을 번쩍 들었다.


나도 덩달아 우산을 높이 들었지만 사람들 얼굴에 닿기 일쑤였다.


우체통에 고지서 용지가 반도 넘게 삐져나와 있다.


나는 화장실 안에서 줄기차게 노크소리를 듣고 있을 때 화장지를 풀어내듯, 신경질적으로 고지서 용지를 그러쥔다.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발자국 소리가 과장된다.


멀리 누군가가 내가 걷고 있는 만큼만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나는 걸음을 딱 멈춘다.


현관문 앞에는 젖은 박스가 놓여있다.


밑에는 물이 고여 있다.


물기들이 박스를 타고 올라와 무늬를 만들어놓았다.


이 안에 뭔가 들어갈 수 있을까.


내 허리까지 올라오고 한 아름이 넘는 박스는 눅눅하다.


덕지덕지 붙여놓은 테이프도 쉽게 뜯겨나간다.


주소에는 내 이름이 정확하게 쓰여 있다.


혹시라도 잘못 보내질까 힘을 주어 반듯반듯하게 쓴 글씨체다.


엄마가 보낸 것이었다.


이제 엄마와 아버지의 집에는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떠나온 것이다.


테이프를 뜯어내고 흐물흐물해진 박스 안을 열어본다.


아직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을 하고 회전의자가 돌고 있다.


나는 맹렬하게 돌고 있는 회전의자를 세운다.


등받이까지 물방울이 송골송골 돋아나있다.


나 무 꼭대기에 훌라후프가 걸려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땐 가지들이 동그랗게 휘어져 있나 했었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훌라후프가 걸려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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