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향기

분노하는 청춘들에게.

by 아프로뒷태 2011. 8. 12.

 

 

 

 

 

 

 

노동, 청춘을 '자살'로 내모는 괴물!

아마미야 가린의 <프레카리아트>

기사입력 2011-08-12 오후 6:06:19

 

 

# 사례 1. 만화방에서 자는 육체노동자는 아침에 만화방을 나가 밤에 귀가한다. 샤워는 근처 사우나에서 해결하며 짐은 배낭 하나. 바지나 양말은 100엔 숍에서 사서 해질 때까지 쓰는데 이게 세탁비보다 싸게 먹힌다. 식사 역시 100엔 숍 컵라면으로 해결하며 짐을 줄이는 것이 생활 요령이다. 설령 더 싼 방이 있더라도 보증금, 사례금의 부동산 수수료를 낼 수 없어서 만화방에서 살고 있다.

 


# 사례 2. 프리터로 있다가 25세에 전기 회사 계약 사원으로 취직. 잔업 수당 없이 8시 20분부터 10시 30분까지 일했다. 연말 퇴근 시각은 새벽 3시. 연봉제로 계약하는 층별 책임자로 승진했으나 정해진 근무 시간이 없고 노동조합에 가입 할 수 없다는 조건이 달렸다. 9시 폐점 이후에도 최소한 12시 30분까지 일을 하지만, 회사는 오후 10시 30분에 전원 퇴근한 것으로 처리한다.

 


# 사례 3. 대학 4학년 때 미국 유학 자금을 마련하고자 니콘 반도체 공장 클린룸 파견 하청으로 일하다 사망했다. 밤낮 교대 근무, 해외 출장, 15시간을 넘는 휴일 출근, 잔업, 동료의 정리 해고를 거치면서 서서히 미각을 잃고 체중이 줄고 두통을 호소하다가 간단한 수식도 떠올리지 못하는 건강 상태에 이르자 기숙사 핫플레이트 전기 코드로 목을 맨다. 방 안의 화이트보드에는 "헛되이 시간을 보냈다"고 쓰여 있었다.

 


# 사례 4. 대기업 기계 건설부에서 14년 동안 공업용 로봇 개발을 해왔고 업무 평가는 항상 S(스페셜)를 받았다. 입사 후 많은 특허를 취득했으나 고졸이라 승진이 늦었다. 신규 사업이었던 레이저 개발로 배속되고 '재량 노동제'로 인해 잔업 수당도 나오지 않았다. 월 평균 추정 노동 시간은 293시간이었으며 상사는 수치심을 느끼는 발언이나 행동을 회사 밖에서도 일삼았다. 프로젝트가 실패하자 회사의 질책을 받았고 어느 아침 자택에서 몸을 던져 즉사했다. 출근을 망설였는지 컴퓨터는 켜져 있었고, 목격자에 따르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로리타' 복장의 수상한 그녀

 


<88만 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지음, 레디앙 펴냄) 책이 나온 다음 해 연초, 나는 새로 시작되는 조직에서 상근 멤버로 일하기로 되어 있었다. 20대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잡탕처럼 한 데 뒤얽혀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주체가 필요하다는, 스스로뿐 아니라 함께 일하기로 한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가 필요했던 때였다.

다양한 외국 사례를 수집하며 사업을 고민했던 초기에, 일본에 다녀온 다른 활동가가 들고 온 만화책 같은 표지의 <生きさせろ(살게 하라)>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했다. 함께 일하던 친구가 번역해준 이 책의 마지막 문단을 나는 오래 곱씹으며 한해를 났다.

아마미야 가린. 10대에는 따돌림을 당했고 가출을 일삼다가 '비주얼 계' 록 밴드를 따라다니며 자신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며 자살을 시도했다. 그런 그녀에게 소속감이라는 위안을 준 것은 일본의 군국주의였고, '유신적 성숙' 이라는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며 군복을 입고 천황을 위해 충성을 바칠 것을 외쳤다. 이 여자, 예나 지금이나 참 튀었다.

 


그녀는 극우 단체의 지원을 받아 간 북한에서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하고 고백하는 장면이 담긴 셀프 다큐멘터리 <새로운 신> 작업을 하며 서서히 변한다. 정치 조직을 떠나 개인으로 사회를 바라보게 되었고 이후 '불안정 노동' 문제에 대해 자신이 겪은 프리터 경험을 바탕으로 취재를 하고 글을 쓰고 '자유와 생존의 메이데이' 등의 데모를 조직하는 활동가로 살고 있다. (당시 블로그에 아마미야 가린에 대해 쓴 글이 어느 책에 인용되었는데, 그녀는 그렇게 <88만 원 세대> 담론의 연장선에서 한국에 알려졌다.)

▲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아마미야 가린 지음, 김미정 옮김, 미지북스 펴냄). ⓒ미지북스
btn
가린의 책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김미정 옮김, 미지북스 펴냄)의 제목에 들어간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Precario)'과 '노동 계급(Proletariat)'을 합성한 신조어로 2003년 이탈리아 거리에 낙서로 등장한 이래 파견 하청, 계약직, 아르바이트 등의 비정규직 노동 층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한마디로 정규직 외의 모든 노동 형태로, 아마미야 가린은 프레카리아트를 "불안정함을 강요받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로리타 복장을 하고 메가폰을 들고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반 빈곤 운동이 '군국주의를 대체하는 소속감'으로서의 그것인가 검증을 받기 전에, 이미 내가 만난 그녀는 좌파 성향의 주간지 <주간 금요일>과 '반 빈곤 네트워크'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프레카리아트' 문제 해결을 위해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었다.

'파견'에도 품격이, 아니 삶이 있습니까?

일본에선 '프리터'라는 말로 쉽게 규정되는 젊은이 중심의 단기적이고 불안정한 고용 형태가 일반화되어있다.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의 3개월 전문 계약직 파견 직원 같은 낭만은 이런 일본 사회의 극단적 반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어딘가 기차를 타고 간 기숙사에서도 모든 생필품에 대한 비용청구되는, 그래서 공고보다 현격히 적은 월급을 수령해야하는 <조난 프리타>(감독 이와부치 히로키)에 가깝다.

일에 서투르다는 막연한 이미지 때문에 '머리 좋은 오랑우탄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프리터들의 연령대는 높아졌고, 애가 딸린 프리터들이 생겨났다. 쓰고 버려지는 3개월 단기 파견 노동. 계약 연장이 가능한 것처럼 광고하지만 기업이 자르거나 스스로 관두거나, 노동자들은 몇 달 단위로 전국을 유랑하며 일을 해야 한다. 빈곤 계층의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20~30대의 이야기다. 대기업은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기숙사 파견직' 과 같은 시스템도 만들었다.

아마미야 가린 역시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기꺼이 '경기 조정의 밸브'인 프리터로 지낸 30대다. '일억 총 중류' (일본에서 1970~80년대에 나타난 '평등한 국민'이라는 의식. 종신 고용이 보장되어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생각하고 소비하던 현상) 이후 취업 빙하기를 거친 일본의 고용 전선은 한국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는 사람들, 지금은 잘나가는 사람들은 그런 우울을 모를 것"(184쪽) 이라는 인터뷰에서 한국의 20대에게 익숙한 어떤 발화가 떠오른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 정규직이 되는 대신 기꺼이 과로사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등급이 아닌 실제 장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꿈을 위한 자발적 프리터라고 해도 "생존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서 누가 과연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나"(28쪽)라는 가린의 외침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이유다.

과로사로 죽어가는 사람들이나 그저 먹고 살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을 보며 '그것은 개인의 탓' 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살할 정도라면 회사를 그만두면 되지' 하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간과한다. '과로 자살'은 과로에 의한 우울증 등 정신 장애로부터 시작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죽음이 유일한 방법' 이라고 판단하게 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렇게 기업은 사람을 죽인다.

한편 여자들은 감정 노동의 궁지에 몰리다 오로지 쓸 만한 '젊음'을 가지고 화류계에 발을 들이기도 한다. 이 경우 정신적 불안은 필연이다. 또 대부분의 프리터는 절대 빈곤 상태에 놓여있거나 만화방 등을 전전한다. 삶을 계획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을 가린은 '요세바(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이는 곳)화 하는 도시' 라고 부르고 있다.

"죽고 싶네요. 안락사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입니다. 전망도 뭣도 없어요." (어느 잘생기고 젊은 홈리스 인터뷰, 162쪽)

"정권이 바뀌었지만 '재도전' 같은 말을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어느새 '패배'해가고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살아가는 게 이토록 힘든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사회학자 이리에 기미야스, 303쪽)


우리에게도 필요한 외침, '살게 하라!'

일본에서는 홈리스 지원 일을 하는 '모야이', 노동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 조직 POSSE, <가난뱅이의 역습>(김경원 옮김, 이루 펴냄)으로 알려진 마쓰모토 하지메 등 프리터 지원을 위한 소셜 벤처나 활동가들의 움직임이 최근 몇 년 동안 활발했다. 책에는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민간이나 게릴라 방식 외에, 국가적인 해결책이나 지원은 없어 보인다.

빈곤 활동가들은 "빈곤은 생활 자체가 타깃이 되는 것이라 노동이나 복지나 주거 한 쪽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을 되찾는 대항의 논리"라고 말하고 있다(141쪽). 한편 국가는 프리터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하기보다 가족에게 부양을 강요하며 실업의 완충지대로 삼고 있다(294쪽).

가린은 자신의 입과 인터뷰를 통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분노하라"고. 고엔지에서 재활용 가게들을 운영하는 마쓰모토 하지메는 "친구를 만들어 혁명 놀이"를 하자고 외친다. "가게를 만들면 외로운 사람들끼리 연결되어 재밌기 때문에, 자신을 찾아와 일을 푸념하는 사람들에게 그만두고 가게를 열어 자유롭게 살 것을 권한다"고 말이다(275쪽).

결국 이들은 함께 분노하고 함께 재밌는 것을 찾아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사례가 너무 어여쁘다고 (특히 30~40대 어른들은) 기뻐할 필요는 없다. 유사 빈곤층이 20대에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고, 일본에만 재밌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시도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렇게 발칙한 일본 젊은이들을 대한 찬사' 역시 '88만 원 세대' 담론 이후 고작 2년의 유통기한이었을 뿐이다.

다만 한국의 20대 투쟁이 주로 대학생 중심의 등록금·취업 문제로 수렴되어 주거권이나 고용형태에 대한 (청년 운동과 비정규직 투쟁의 연대 가능성 등) 논의로 나아가기 힘든 것은 한국과 일본의 차이일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가린은 '노량진 고시촌'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이 책의 극단적이 사례들이 곧 한국에서 벌어질 것 같다. 정규직/비정규직이 아닌 안정/불안정 노동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많은 취약 계층과 취업 희망자들은 프레카리아트로 일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한국판 부제는 그것을 예고하는 듯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 이다.

아마미야 가린의 작업 방식은 주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만나 취재를 하고, 이것들을 담은 글을 쓰는 것이다. 책에는 자신의 경험과 대표적인 착취 현장의 인터뷰, 이론적인 보강을 위한 사회학자와의 문답, 새로운 투쟁의 사례들까지 촘촘하게 나열되어 있다. 이 과정은 그녀로 하여금 다시 다른 사람들의 섭외를 가능케 하고 어떤 자리를 만드는 순환적인 '활동가적 일상'을 살게 할 것이 분명하다.

아마미야 가린이 '백마 타고 온 초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노하라"는 프랑스 노장의 목소리처럼, '불량공주 모모코' 같은 차림의 가린도 절실하게 외친다. "우리를 살게 하라"고.

이 책 마지막 장 제목은 '왜 젊은이들은 불행해졌나'다. 그리고 내가 꽂혔던 문장은 이랬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결정했다. 이 주제로 나는 이 사회가 바뀔 때까지 취재하고 집필하고 운동해가기로.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일본 사회에 대한 선전 포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지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저 살아가는 것. 그것이 위협받고 있는 나라에서 도대체 누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살게 해 달라. 가능하면 과로사 같은 것은 하지 않고, 홈리스 되지 않고, 자살하지 않고, 그리고 가능하면 행복하게"


덧붙임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새벽 5시. 택시를 타고 막 퇴근해 내일 출근을 앞두고 자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분노해야 하는지, 어디에 가서 "살게 해달라"고 외쳐야 하는지?

이 시각 영국경찰의 대응으로 혼란이 진정되고 있다지만 불안 요소는 그대로다. 청년층 실업률은 20퍼센트를 넘었고 관련 예산은 최고 75퍼센트까지 삭감되었으며, 고용 센터는 무참히 파괴되었다. 언론은 이들을 '분노의 세대'라고 부른다. 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루미 <은근 리얼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