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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향기

황순원 문학상

by 아프로뒷태 2011. 9. 1.

 

2011년 황순원 문학상, 올 한해의 문학을 묻는다.

어디까지 왔고, 어디까지 갈 것인가?

 

 

[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①

[중앙일보] 입력 2011.07.21 00:19 / 수정 2011.07.21 08:23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 시인과 황순원(1915∼2000) 작가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미당·황순원문학상이 올해로 11년째를 맞았습니다. 올해 후보작을 지상 중계합니다. 지난 1년 동안 발표된 최고 수준의 시와 단편소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시인·소설가 이름의 가나다 순서에 따라 모두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핵 … 암 … 재난의 시대 탈출구는 어디

소설 - 강영숙 ‘프리피야트 창고’


‘프리피야트창고’의 주인공은 작품의 배경이 된 황학동이 구획별로 잘 정리돼 예전의 미로 같은 풍경을 잃은 것을 아쉬워한다. 강영숙 작가는 이를 “사람은 늙고 병들지만 도시는 늘 새롭게 변모한다는 것에 대한 질투”라 표현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람이 늙어 죽는다는 건 옛말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사람은 이제 암으로 죽는다.

 강영숙(45)의 단편 ‘프리피야트 창고’(‘작가’ 2011년 여름호)의 주인공은 서른 살이 되면 암에 걸려 죽을 거라 믿는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이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근교의 도시 프리피야트라고 생각한다. 체르노빌 사고가 난지 꼭 20년이 된 2006년, 주인공은 서른 살이 된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만 60세가 된 엄마 김영출씨가 ‘제일창고’를 딸에게 물려주곤 등산하러 훌쩍 떠난 게 사건이라면 사건이랄까. 창고를 물려받은 주인공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창고의 이름을 ‘프리피야트’에서 따온 ‘프리창고’로 바꾼 것이다.

 설정만 봐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방사능의 공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러나 작가가 원고를 마감한 건 지진이 일어나기 전인 2월이었단다.

 “지진 후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 선생께 전화했더니 ‘네가 만날 그런 걸 쓰니까 지진이 일어난 거잖아’라고 하시더군요. 우연인데…. 기분이 안 좋았어요.”

 일본에 소개된 강영숙의 단편 ‘해안 없는 바다’엔 푸켓을 덮친 쓰나미가 나온다. 공교롭게도 ‘프리피야트 창고’와 비슷한 시기에 마감한 단편 ‘문래에서’는 구제역을 다뤘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잡지가 녹색평론이에요. 이러다 세상이 뜨거워져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쓸데 없는 생각도 하죠. 정치보다 황사·기후변화 같은 것들이 사람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어느덧 강영숙에겐 “재난과 묵시록이 더 이상 비유나 상상이 아닌 21세기 초, 현실의 불안한 기미를 잘 포착해내는 작가”(허윤진 예심위원)라는 평이 따라다닌다.

  “암에 걸려 죽었다는 말은 그 사람의 개별성이나 시간을 묻어버리고 훼손해 폭력적인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패배감을 내면화하고 살죠. 이런 시대엔 재해에 대한 불안을 내면화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작품에서 재해는 지극히 담담한 일상일 뿐이다. 주인공은 자기 눈엔 ‘쓰레기’일 뿐인 창고 속 물건을 정리한 뒤 다음과 같은 전단지 문구를 쓴다.

 “(…) 저처럼 자신이 암에 걸려 죽을 거라 생각하시는 분들, 죽은 친구가 남긴 짐을 맡기실 분들, 어디론가 떠나 나타나지 않는 분들의 짐을 맡아줄 ‘프리창고’로 오세요.”

 죽은 남자친구의 휴대전화를 충전된 상태로 맡겨두곤 전화를 걸어 통화연결음을 듣는 여자, 손가락 마비로 더 이상 치지 못하게 된 기타와 악보를 맡겨두곤 가끔 찾아와 기타를 손질하는 남자 등이 창고의 고객이다.

 정홍수 예심위원은 “삶을 순식간에 쓰레기로 만드는 재난의 시대에 그 쓰레기화에 저항하는 공간으로서 ‘죽음, 기억, 추억, 보관할 수 없는 것을 보관해 주는’ 창고를 찾아낸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창고는 문학 혹은 예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상상력의 울림이 증폭된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프리피야트=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도시. 그 곳엔 방사능으로 유전자가 변이된 오렌지색 소나무숲이 무성하다.

◆강영숙=1966년 춘천 출생. 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흔들리다』『날마다 축제』『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장편소설 『리나』『라이팅클럽』 등.

비틀어보다, 죽음에 대한 생각들

시 - 김정환 ‘귀’ 외 9편




가는 비는 세상을

씻어내리지 않고 세상을

적시지 않고, 가는 비는 세상의

귀지,

제 몸에 귀를 기울이는

귀지,

가는실잠자리 가는

장구채 위에 내리는

가는 비는

귀지.


시인 김정환씨는 1980년에 등단했지만 여전히 시가 젊은 시인 못지 않게 새롭다는 평을 듣는다. 삶과 언어와 감각을 언제나 민감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학동네 제공]
시인 김정환(57)씨는 문학상이라는 ‘제도’와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특히 1년 동안 성실한 땀방울을 흘려가며 일군 시편(詩篇)을 심사 대상으로 하는 미당문학상과는 더 그렇다. 김씨는 어쩐지 열정적이고 급작스럽게 왈칵왈칵 시를 쏟아낼 것 같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믿을 수 없는 생산력으로 장시집 세 권을 잇따라 펴냈다. 368쪽짜리 『드러남과 드러냄』(2007년), 579쪽짜리 『거룩한 줄넘기』(2008년), 487쪽짜리 『유년의 시놉시스』(2010년) 등이다. 나눠 발표한 걸 묶은 게 아니라 써뒀다 한 번에 펴낸 전작(全作)이다 보니 문예지에 한 두 편씩 시를 발표할 수 없었고, 따라서 심사할 시가 없었다.

 상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그런 작업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등단 초기 현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해 80년대 중반 이른바 ‘선전선동시’ 시기를 거쳐 일종의 문명사적 조망을 시도하는 최근까지, 그의 문학반경은 광활하다. 문화기획자로서 그는 인터넷 문화예술학교를 운영했고, 전라도 광주를 문화중심도시로 키우는 국가사업에도 관여했다. 이런 그를 가두기에 문학상은 너무 반듯해 보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상을 주겠다는데 마다하지는 않을 터. 김씨는 바쁜 와중에 ‘기습적으로’ 열 편의 시를 계간 ‘자음과모음’ 올 봄호에 발표했다. 주목 받는 여성 시인 김이듬씨와 같은 수의 신작 시를 선보이고 평론가 황현산씨와 좌담을 하는 특집을 위해서다. 이 열 편이 고스란히 이번에 미당 후보작이 됐다.

 김씨는 시와 산문에 두루 능하다. 어떤 찰나의 느낌을 근사(近似)하게 되살려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번 후보작 열 편 중 일곱 편은 ‘이것들이 인간 죽음에 간섭’이라는 큰 제목으로 묶은 연작시다. 이에 대해 평론가 황씨는 “어떤 정신 기계, 훌륭하고 부지런한 수 만 마리의 말이 한꺼번에 돌리는 기계”가 연상된다고 평했다. 그만큼 죽음의 다면적인 양상을 현란하게 전한다는 것이다.

 연작시는 모기·거미·간장 게장 게 등의 입을 통해, 또 LP 음반, 수(數)의 역사 등에 비춰 죽음에 대한 김씨의 요즘 생각을 담고 있다. 시들은 우선 익살스럽다. 간장에 절여진 게가 자신이 단지 ‘질긴 목숨 산 채 독한 간장 속 느리게 끊어져/생긴 울화의 맛? 밥도둑?’이냐며 음식으로만 보는 인간의 시각을 꼬집는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시의 핵심 메시지는 쉽지 않다. 장시집 세 권에서 갈고 닦은 예술·역사·인간 등에 대한 김씨의 사유가 농도 짙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장시집과의 연관에서 읽어야 뭔가 보인다는 얘기다.

 ‘귀’는 소품이다. ‘세상을’‘세상의’가 이루는 1~3행의 각운(脚韻), ‘가는 비’와 ‘귀’를 동격으로 몰아 미세한 비 소리를 부각시키는 솜씨, ‘가는실잠자리’‘가는장구채’ 같은 말들의 여린 맛 등이 재미있다.

신준봉 기자

◆김정환=1954년 서울 출생. 80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황색예수전』『사랑, 피티』 등 저서 100여 권. 백석문학상 수상.

 

 

 

 

 

[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②

[중앙일보] 입력 2011.07.26 00:04 / 수정 2011.07.26 00:39

자칭 엄숙주의자의 꽤나 발랄한 시
시 - 윤제림 ‘매미’ 외 11편

시인 윤제림씨는 느긋했다. “새로움을 추구하기보다 내 타고난 성량대로 쓰던 시를 계속해서 쓰겠다”고 했다. “노력한다고 가수 이미자가 달라지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여유에서 웃음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시인 윤제림(52)씨의 생업은 카피라이터다. 동국대 국문과 77학번인 그는 졸업 후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꼬박 10년을 일하고 독립했다.

 2003년부터는 서울예대 광고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며 프리랜서로 광고 일을 한다. 업계에서나 학교에서 통하는 그의 본명은 ‘준호’다. 언제 한 번 만나자는 의례적인 인사말 하지 마라, 사랑은 미루는 게 아니다 같은 감각적인 내용으로 몇 해 전 주목 받았던 한 통신사의 광고 카피가 그의 작품이다.

 ‘광고쟁이’가 연상시키는 세련된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시인으로서 윤씨는 학연·지연은 물론 띠 동갑 같은 것까지 챙기는 좀 촌스런 사내다. 같은 과 동기인 문학평론가 장영우씨의 증언이다. 나고 자란 곳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던지, 그의 필명 ‘제림(提林)’은 고향 제천(提川)의 명물 의림지(義林池)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든 것이다. 이런 면모에 어울리게 그의 시 세계는 시치미 뚝 떼고 사람 웃기는 유머가 두드러진다는 평을 받아왔다.

 유머와 해학은 올해 윤씨의 미당문학상 후보작들에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읽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환해지며 키득거리게 되는 시가 한 두 편이 아니다.

 전문을 소개한 시 ‘매미’의 첫 행을 윤씨는 굳이 ‘내가 죽었는데’가 아니라 ‘내가 죽었다는데’로 썼다. ‘죽었는데’라는 담담한 진술이 아니라 약간 과장된 ‘∼다는데’를 떡 들여앉히고 보니 어쩐지 ‘매미가’ 앞에 ‘세상에나’ 같은 말이 생략돼 있는 것 같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의외의 미물이 자신의 죽음을 열심히 슬퍼하는 광경과 맞닥뜨린, 귀신도 못된 허깨비 화자의 황당해하는 정경이 실소를 자아낸다. 두 번째 연은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된 일종의 유체이탈 같은 상황.

 세 번째 연의 ‘대체 누굴까’는 시를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상황에서 구해낸다. 매미가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까닭은 뭘까. 윤씨의 2008년 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의 해설에서 시인 이홍섭씨는 윤씨 시의 특징의 하나로 불교적 세계관을 꼽은 바 있다. 모든 존재는 여러 요소들이 끝없이 어우러지고 의존하면서 성립한다는 이른바 연기(緣起)적 세계관이다. 매미는 혹시 시의 화자의 우주적 친구인 것은 아닐까.

 정작 윤씨는 자신의 시의 해학적 요소에 대해 시치미를 뗐다. 의도한 게 아니라는 거다. “오히려 실제로는 굉장한 비관론자이자 엄숙주의자”라고 했다.

 예심을 한 최정례 시인은 “과거 윤씨는 유머를 잘 쓰면서도 약간 조선시대 선비 같은 고답적인 데가 있었는데 이번 후보작들은 모던한 느낌까지 더해져 발랄하면서도 경쾌하다. 골고루 좋다”고 평했다.

신준봉 기자

매미

내가 죽었다는데, 매미가 제일 오래 울었다

귀신도 못되고, 그냥 허깨비로

구름장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니

매미만 쉬지 않고 울었다

대체 누굴까,

내가 죽었다는데 매미 홀로 울었다

저도 따라 죽는다고 울었다.

◆윤제림=1959년 충북 제천 출생. 8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삼천리호 자전거』 『그는 걸어서 온다』 등. 서울예대 광고창작과 교수.

‘친한 사이’라도 머릿속 계산기는 돌아간다

소설 - 권여선 ‘은반지’


그런데 소설의 제목이 왜 ‘은반지’일까. 오여사와 심여사가 함께 살던 때 일종의 커플링을 은반지로 맞췄다. 왜 금반지도 아니고 은반지일까. 은반지는 소설의 절정 부분에서 튀어나온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권여선(46) 만큼 캐릭터를 생생하게 구축하는 작가도 흔치 않 다. 이번 황순원 후보작 ‘은반지’의 등장인물은 대여섯 정도 되는데, 사소한 인물의 캐릭터도 어찌나 생생한지.

 주인공 ‘오여사’. 본명 오현숙. 만 59세. 여러 해 전 남편이 교통사고로 훌쩍 떠난 뒤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심여사를 집에 들여 5년을 살았다. 보증금도 받지 않고 생활비만 반을 부담하도록 아량을 베풀었다. 그런데 심여사는 무슨 이유에선지 밀린 생활비 15만원도 내지 않은 채 6개월 전 집을 나갔다.

 소설은 오여사에게 작은딸이 가게라도 차리게 돈을 빌려달라고 전화를 걸어오면서 시작된다. 오여사는 단호히 거절하고 딸은 그런 엄마에게 악담을 퍼붓는다, 심여사가 있었더라면 그녀가 차려준 밥상을 느긋하게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오여사는 큰맘 먹고 심여사가 머무는 요양소를 찾아간다. 심여사가 제 발로 돌아오겠다고 나서길 내심 바라면서.

 반년 만에 만난 두 여인. 오여사는 심여사를 ‘심여사’라 부르고, 심여사는 꼬박꼬박 ‘오여사님’이라 높여 부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관계는 역전돼간다. 처음엔 “오여사님 은혜는 잊지 않고 있어요”라던 심여사가 오여사 집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듣자 “말씀은 너무 고마우신데, 기껏 빠져 나온 개골창에 도로 처박힐 순 없지요”라 대꾸하니 말이다. 분위기는 점점 묘해져, 심여사는 통성기도를 하도 열심히 해 쉬어버린 목소리로 “모든 걸 버리고 요양소에 들어오라”고 한다. 해는 저물어가고, 막차 끊길 시간은 되어가는데 심여사는 오여사를 놓아주지 않는다. 오여사의 입장에선 호러·공포물로 달려가는 셈인데, 독자 입장에선 웃음이 나온다.

 권씨의 작품엔 ‘섬뜩, 오싹, 불쾌’란 수식어가 따라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은반지’와 지난해 황순원문학상 후보작으로 오른 ‘팔도기획’에는 유머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작가는 “이 나이에, 신인처럼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등장인물들은 제각각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린다. 자신만의 방정식으로 견적을 뽑아낸다. 그러니 오여사는 심여사가 왜 자신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지 알 까닭이 없다. 권 작가는 “누구의 머릿속에서나 계산기는 자동으로 돌아간다. 문제는 계산기가 의식적으로 통제되는 수준에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자기가 살아온 딱 그만큼 저절로 알아서 돌아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축적된 경험이 시키는 대로, 딴엔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해괴한 결과를 빚어내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리라.

 “뒤늦게나마 멈추려 해도 계산기는 여전히 돌아가죠. 자신이 살아온 만큼 어김없이 재깍재깍. 오래된 친밀한 관계일수록 그런 계산기의 이면을 잘 보여줄 수 있어요. 과거를 공유해왔으니까요.”

 백지연 예심위원은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도 소통이란 굉장히 어렵고, 여러 가지 겹을 가지고 있다. 권여선은 그 바닥까지 내려가 낯선 것을 끄집어내며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경희 기자

◆권여선=1965년 경북 안동 출생. 96년 상상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등.

 

 

 

 

[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③

[중앙일보] 입력 2011.07.28 00:22 / 수정 2011.07.28 00:22

메마른 문체로 그려낸 ‘비정한 가족’
소설 - 김이설 ‘부고’

소설가 김이설씨는 늦깎이 등단한 편이지만 최근 부쩍 각광을 받고 있다. 단편 ‘부고’로 올해 황순원문학상 본심에 처음 올랐다. 그는 “힘들게 썼고 부족한 게 많은 작품인데 황순원문학상 후보에 올라 솔직히 좀 부담스럽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쓰겠다며 대뜸 필명을 ‘이설(異說)’로 지은 소설가 김지연(36)씨. 이번 주초 만난 그는 조금 피곤한 표정이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계간지 단편소설을 마무리하느라 계속해서 밤잠을 설친 탓이었다. 이틀 정도는 하루 한두 시간씩 자며 버티고 삼일째는 ‘퍼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일곱 살과 세 살, 어린 두 딸을 재우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한밤중. 이때부터 주부 김지연 아닌 소설가 김이설의 생활이 시작된다.

 그런 치열함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그의 소설적 행보는 김이설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것이었다.

열세 살 노숙자 소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야말로 민망한 우리 사회의 밑바닥 삶을 고발한 등단작 ‘열세 살’부터 주부 매춘을 소재로 한 최근 장편 『환영』까지. 그가 펴낸 세 권의 소설은 또래 소설가들과는 확실히 다른 입지를 구축했다. 평단은 “환상, 유령, 가상현실, 무중력 상태 등 비현실적 요소가 가득한 2000년대 소설들 틈에서 돋보인다”(평론가 백지은)고 평가했다.

 후보작 ‘부고’는 이전 작품들처럼 하류 인생을 다루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를 둔 어찌 보면 중산층 출신 여성이 주인공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얽히고 설킨 가족관계, 막장드라마 같은 착잡한 현실을 특유의 냉담한 문체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런 면에서 일종의 가족극.

 첫 장면부터 독자는 잠깐 어리둥절해진다. 여주인공 은희에게 새벽 세시에 전화한 엄마가 “네 엄마가 죽었다”고 담담히 전한다.

앞의 엄마는 키워준 엄마, 뒤의 엄마는 아버지의 외도를 견디지 못해 30년 전 집을 뛰쳐나갔다가 이태 전에 돌아와 시름시름 앓아 왔던 친엄마다. 앞머리에 도발적인 에피소드를 배치한 것도 이를테면 김씨의 장기다. 소설의 첫 두 문장은 “역한 비린내가 났다. 정액 냄새라고 생각했는데, 비 때문이었다”이다. 30대 중반인 은희는 연하의 한국계 미국인 상준과 2년째 동거중이다. 은희 앞에서 팬티를 주워입은 상준은 위로한답시고 은희를 껴안는데, 은희는 그의 몸이 아직도 뜨거운 상태라고 느낀다.

 치정(癡情)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소설은 차츰 골치 아픈 은희의 성장사, 가족사로 달려간다.

은희는 10대 중반에 동갑나기 소년들에게 윤간당해 아이가 생겨 이를 지운 적이 있다. 주동자는 놀랍게도 아버지의 외도로 태어난 동갑나기 배다른 남자 형제. 소설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키워준 엄마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키워준 엄마와 의붓 딸간의 서먹하던 사이가 급격히 가까워진 것은 동병상련의 심정 때문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키워준 엄마가 자신의 친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은희의 아버지와 일종의 계약 결혼을 했다는 점이다. 친자식이 결혼해 더이상 부양할 필요가 없어지자 키워준 엄마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끝낸다.

 비정한 가족이다. 헤밍웨이의 메마른 문체를 연상시키는 김씨의 짧은 문장들이 비정함을 배가시킨다. 김씨는 “아픔이나 상처, 흉터 같은 것들을 감추기 위해 끊임 없이 거짓말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상처를 주는 연쇄적인 인간관계의 서글픔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김이설=1975년 충남 예산 출생.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장편 『나쁜 피』 『환영』.

단순해서 새롭다, 흙장난하듯 쓴 시

시 - 나희덕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 외 17편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


손보다는 섬모가 좋다

인간다움이 제거된 부드러운 털이 좋다

둥글고 잘 휘어지는 등이 좋다

구불구불 헤엄치는 무정형의 등이 좋다

휩쓸고 지나가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온순한 맨발이 좋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매순간 새롭게 생겨나는 위족이 좋다

때로 썩어가는 먹이를 구하지만

소화시킬 수 없는 것은 다시 내보내는 식포가 좋다

맑은 물에도 살고 짠물에도 살며

너무 많은 물은 머금지 않는 수축포가 좋다

물과 공기가 드나드는 투명한 막이 좋다

일정한 크기가 되면

둘로 쪼개지는 가난한 영토가 좋다

둘로 나뉘지만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아서 좋다

그는 사랑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찾아온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 끌어안았던 태고의 신비,

그 저녁의 온기를 기억해낸 것뿐이다

섬모와 섬모가 닿았던 감촉을 다시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시인 나희덕씨는 관능적인 언어로 아메바 같은 원시적 동물을 표현해 올해 미당문학상 본심에 올랐다. 함돈균 예심위원은 “사물의 욕망과 시적 주체의 욕망이 같을 수 있다는 점을 마술적 감각으로 보여준다”고 평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올해 미당문학상 예심에선 나희덕(45) 시인을 놓고 “너무 유려하고 너무 능숙해 무슨 소재로든 다 잘 쓰는 게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다”(최정례 예심위원)는 평이 나왔다. 장점이 단점일 수 있다 할지언정 나희덕 시인이 자타가 공인하는, 잘 쓰는 시인임은 분명하다. 그는 미당문학상이 시작된 첫 해(2001년)부터 6년간 내리 빠짐 없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한동안 뜸하다 5년만에 본심에 오른 것이다. 뜸하던 그 시기, 일년간 일부러 시를 한 편도 쓰지 않은 적도 있었다.

 “나와 거리를 두고 몸이 바뀌는 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남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저는 시 쓸 때 몸이 다르게 반응한다는 걸 느껴요.”

 자신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시·공간까지도 달리 놓이게 했다. 다른 나라의 언어나 문화를 경험하러 자주 떠났다. 지난 한 해 동안 발표한 시의 상당수가 외국 여행에서 본 풍경을 소재로 쓴 것이다. 그러나 여행시라는 느낌은 전혀 주지 않는다. 이국적 풍경이 세계의 한 단면으로서 내면에 자리잡을 때까지 조금 기다렸기 때문이다. 시인은 신문에 실릴 대표작으로는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을 골랐다. 흔히 ‘단세포’라 놀림 받는 존재인 아메바에게서 시인은 ‘일정한 크기가 되면/둘로 쪼개지는 가난한 영토가 좋다’며 자기를 비우고 쪼갬으로써 얻는 충일함을 읽어낸다.

 “다른 존재를 향한 시선이 열리길 바라는 열망이 컸어요. 아메바나 불가사리 같은 아주 원시적인 생명체들, 인간과는 좀 다른 존재 방식을 가진 것에 대한 관심이 가더군요.”

 시를 쓰는 방식도 약간은 아메바처럼, 단순하게 변했다. 예전엔 시적 대상이 충분히 체화되고 의미가 명료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삭혔다. 일단 종이에 옮겨 적으면 고치지 않아도 한 편의 시가 나오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적인 대상이 가진 파동이 아주 모호할 때 그 안에 쑥 들어가 몸을 싣는다.

 “옛날엔 작품을 만드는 장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어린애 흙장난하듯 물렁물렁한 걸 갖고 노는 듯한 느낌이죠. 지금이 시를 쓰는 순간은 더 좋아요.”

이경희 기자
◆나희덕=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집 『뿌리에게』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 『 어두워진다는 것 』 『 사라진 손바닥 』 『야생사과』 등.

 

 

 

 

 

[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④

[중앙일보] 입력 2011.08.03 00:28 / 수정 2011.08.03 00:28

낯선 대상을 한 줄로 꿰어내다, 바느질하듯
시 - 이기인 ‘사과 정물’ 외 29편

시인 이기인씨는 “나는 머리로 늘 시상(詩想)을 녹음하고 다닌다”고 했다. 그만큼 그의 일상은 시와 밀착돼있다. 지난달 27일 본사 스튜디오에서 촬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인 이기인(44)씨는 늦게 등단한 편이다. 서른셋이던 2000년 시인이 됐다. 하지만 2005년에 펴낸 첫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이 일으킨 반향이 작지 않았다. 새로운 ‘공순이상(像)’의 창조랄까. 공장 여공들이 처한 척박한 작업환경이나 결코 순진하지 않은 여공들의 불온한 내면 같은 것들을 인상적으로 그려냈다. 이런 작업에 대해 문학평론가 최원식씨는 “공장 여성노동자들을 ‘소녀’로 바꿔 부르며 해석 변경을 시도해 한국시의 새로운 풍경을 열었다”고 평한 바 있다.

 지난해 출간한 두 번째 시집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를 거치며 이씨의 시는 변화를 모색중인 것 같다. 이런 점을 지적했더니 그는 “요즘 내 시가 좀 길어지고 있다”고 했다. 또 “왜 길어지나 스스로 생각해봤더니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강렬함, 시 쓰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지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올해 이씨의 미당문학상 후보작은 자그마치 30편이다. 적지 않은 생산량이다. 미당문학상 본심에 오른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많이 쓰기도 하지만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시를 쓴다는 얘기다. 예심위원들은 이씨 시에 대해 “상투성에서 벗어나 세상을 낯설게 본다” “대상의 뒷면까지 시선을 밀고 가는 힘이 느껴진다”고 평했다.

 그런 특징 때문에 이씨의 시는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오래 들여다 보게 만든다.

 후보작들 중 시의 제목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들이 시 전체를 관통하며 낯선 대상들을 한 줄로 꿰어내는 끈질김 같은 게 느껴지는 시가 눈길을 끈다. ‘바늘장수가 지나간다’가 그런 시다. 뭔가를 꿰매는 바늘의 이미지가 삐뚤삐뚤한 골목길의 달동네 정경과 잘 어울린다.

 이씨는 소개하고 싶은 시로 ‘사과 정물’을 골랐다. 시의 전체적인 의미는 불확실하다. 어렴풋하게나마 어떤 죄를 저질러 수감된 수인의 이미지에 캔버스에 그려진 사과 정물 그림을 빗대 표현한 작품으로 읽힌다. 사과는 과일 사과일 뿐 아니라 잘못한 일에 대한 사과(謝過)의 의미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씨는 ‘실수로 사과를 흙에 그렸을 때 사과에 흙이 묻었다’는 문장에 주목해 시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가령 발끝으로 사과를 그리면 그 순간 사과에 흙이 묻지 않느냐”는 것이다. “실수로 어떤 대상을 사랑하게 됐을 때 진짜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알쏭달쏭 사과 정물이다.

신준봉 기자

◆이기인=1967년 인천 출생. 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사과 정물

참을성 있는 생명이 빨간색 모자를 썼다

사과는 캔버스에서 나오지 못한 독방의 주인이었다

수감된 방에서 사과의 불멸을 훼손하고 싶었다

정숙한 가운데 캔버스를 정면으로 걸어놓았다

잔인한 형벌을 겪었으므로 사과의 죄목을 떠올렸다

비공개적으로 사귄 칼날을 버리고 세밀한 붓을 만들었다

위협을 감춘 날에는 빨간색 수인번호를 붓끝에 올려놓았다

형벌의 틀을 갈아 끼우는 마당에서 혼자 사과를 그렸다

실수로 사과를 흙에 그렸을 때 사과에 흙이 묻었다

흙을 씨앗처럼 갖고 싶어 사과에 햇빛을 덧칠했다

환한 두 눈을 뜨고서 저지른 잘못을 후회하였다

캔버스에서 쾅 떨어진 사과의 운명을 믿었다

머리를 숙였을 때 비로소 코와 귀가 빨개졌다

충고의 방으로 굴러온 사과는 두 시선을 채웠다

광인의 눈으로 공포를 웃으며 공개처형을 기다렸다

붉은 붓칠로 완성한 사과는 불안을 한 입 깨물었다

 

 

 

 

 

 

[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⑤

[중앙일보] 입력 2011.08.05 00:29 / 수정 2011.08.05 00:29

고양이에게서 봤다, 새로운 소통의 길을
시 - 이민하 ‘거리의 식사’ 외 14편

대표적인 난해파 시인 중 하나인 이민하씨. “하나의 단어에서 파생돼 나오는 여러 단어들을 구축해 나가다 보면 처음 의도와 완전히 다른 시가 나오는데, 그런 과정이 재미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인 이민하(44)씨는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외모나 행동거지가 어쩐지 고양이를 닮은 것 같다. 낯을 가리는 편이어서 소수의 제한된 사람들하고만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고,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는 것처럼 차분하고 낮게 말한다. 어렵기로 소문나 진작에 ‘미래파’로 분류된 특유의 시편도 어쩌면 고양이처럼 숨기고 위장하는 성격 때문인지 모른다.

 이씨는 2년 전 봄 우연찮게 고양이와 친해지게 됐다. 골목에 사는 길고양이 새끼 한 마리를 집에 들인 게 계기다. ‘설탕’이라고 이름 지어주고 정을 붙였다. 한 번 고양이에게 마음을 주고 나니 다른 길고양이들도 눈에 들어왔다.

 서울 강남의 한복판인 신사동 주택가에 사는 이씨는 자신의 고양이는 물론 길고양이 여러 마리를 함께 돌본다. 먹이를 주지 말라는 동네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다. 고양이 사랑에 관한 한 원조 격인 선배 시인 황인숙씨가 울고 갈 정도다.

 이런 고양이 사랑은 미당문학상 후보작들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모조 숲-길’은 고양이에 관한 시가 아닌데도 ‘손톱들이 돋았지만’ ‘목덜미’ ‘폭풍의 꼬리’ 등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대목이 여러 군데다. ‘검은고양이소셜클럽’은 본격적으로 고양이의 생태를 그린 작품. 거칠고 변화무쌍한 고양이의 모습이 실감난다.

 이씨는 “고양이에게서 새로운 소통 혹은 공존의 가능성을 본다”고 말했다. 고양이와 교감하고 소통하며 과거 어둡게만 생각했던 인간 세상에도 희망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또 “스스로 생각해도 시가 좀 밝아진 것 같다”고 했다. 시의 작법까지는 아니겠지만 고양이로 인해 시의 내용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거리의 식사’는 이씨의 후보작 중 가장 쉽게 읽히는 작품이다. 어렵지 않게 ‘죽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메시지를 떠올릴 수 있다. 다섯 번째 연, ‘하나의 우산을 접고/한 켤레의 신발을 벗고’가 구체적으로 죽음을 암시한다. 네 번째 연 ‘솜털처럼 우는 안개비도 천둥을 토하는 소나기도/쿠키처럼 마르면 한 조각 소문’은 이씨 특유의 말맛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씨는 “죽을 때 혼자가 아니라 누구든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면 좀 위안이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어 한 순간에 써 내린 시”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후 이씨와의 저녁자리는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는 “이렇게 말 많이 하기는 정말 오랜만이다”라며 끊임 없이 떠들어댔다. 화제? 물론 고양이 얘기였다. 고양이 습성의 놀라운 점, 고양이와 친해진 사연, 고양이와 쥐에 얽힌 얘기….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민하=1967년 전주 출생. 2000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환상수족』『음악처럼 스캔들처럼』 등.


‘폭소탄 아저씨’ 그 뒤에 숨은 서 말의 눈물
소설 - 성석제 ‘남방


성석제씨의 ‘남방’엔 어수룩한 남성, 즉 전형적인 ‘성석제표 인물’이 나온다. 성씨는 “나는 기본적으로 낙천적인 사람이지만 웃다가도 슬그머니 가라앉고 조용해지는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설가 성석제(51)씨는 지난해 초 라오스를 여행했다. 거기서 아저씨 무리를 만났다. 40대 중반 몇 명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몸은 시커멓게 그을렸고 활기가 넘쳤다.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한 후 여행 중이라는 이들은 라오스 어느 지역을 어떻게 다녀왔다는 말을 한참 늘어놨다 한다. 성씨는 이 장면을 ‘이야기의 씨앗’으로 받아들였다. 이윽고 웃기고 슬픈 인물을 만들었다.

 올해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남방’ 속 박씨는 50대 중반. 30여 년 다닌 직장을 명예퇴직 해 혼자 동남아 여행에 나섰다. 라오스의 인구·종교·지형·맛집 등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물론 겸손할 마음도 없으므로, 말을 짧게 끝내지 않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를 피하기 위해 도망 다녀봐도, 어디선가 꼭 나타난다. ‘고개가 하도 높아 여기까진 못 오겠다’고 안심하고 있어도 괴상한 오토바이 엔진 소리와 함께 쩌렁쩌렁한 인사를 건네며 등장한다. 이처럼 우스꽝스럽다. 상대 말은 듣지 않은 채 묻지 않은 질문에 긴 답을 하는 모습에 실소가 터진다.

 소설은 박씨의 눈물이 번쩍이며 끝난다. 수십 년 어렵게 일해 마련한 수도권 아파트도, 부인과 딸도 위로해줄 수 없는 불쌍함이 감돈다. 성씨는 “인간의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근본이 통속적인 아저씨의 전형, 같은 아저씨끼리도 싫어해 피하는 인물의 이면에 있는 서늘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자신이 직접 만났던 자전거 무리에서 중년 아저씨의 처연함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또 “소설 속 박씨는 나와 같은 세대다.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 지독한 경쟁 속에서 상처와 분노를 경험했다 ”고 했다.

 웃기다 울리는 건 성씨 특기다. 나사 빠진 사람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도록 한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서 황만근씨도 그랬다. 그의 짧은 혀에서 비롯된 말투에 킥킥대다 슬그머니 숙연해진다. 성씨는 “앞에 가던 점잖은 사람이 갑자기 넘어지면 웃음이 터진다. 여기엔 ‘아, 나는 넘어지지 않았다’는 안도가 깔려있다. 하나만 있는 감정은 이상하다. 웃음과 울음은 늘 함께 있는 양면이다”라 설명했다.

 그는 왜 웃기지만 재미있지만은 않은 소설을 쓸까. 대답이 걸작이다.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친구와 모눈종이에 바둑을 두다 국어 선생님에게 들켰다. 우리에게 기합을 주며 선생님이 칠판에 썼다. ‘흥진비래(興盡悲來)’. 즐거움이 지나가면 슬픔이 온다는 뜻이다. 기합 받느라 정신이 하도 또렷해서 그게 지금껏 남아있는 거 아니겠나.”

 작가는 이번 소설 속의 박씨를 자신과 비슷한 인물이라 소개했다. 정홍수 예심위원이 “특별한 이야기나 목청 높은 주장 없이도 라오스를 헤매는 중년 남자들의 고독 혹은 고단함이 잘 배어난다”고 평한 이유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성석제=1960년 경북 상주 출생. 1986년 문학사상 등단. 94년 첫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출간.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인간적이다』, 장편 『인간의 힘』『도망자 이치도』 등. 2002년 동인문학상, 2003년 현대문학상, 2005년 오영수문학상 수상.

 

 

 

 

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⑥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중앙일보] 입력 2011.08.09 00:14 / 수정 2011.08.09 00:45

난해함, 그 힘든 정신노동 끝의 달콤함
시- 이수명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외 13편

이수명 시인에게 시란 “미지를 탐험하고 즐기는 작업”이다. 그는 “독자와 작품 사이에 내밀한 소통이 많이 이뤄질수록 치유의 폭과 깊이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이수명(45) 시인의 시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령 ‘어느 날’은 “날이 차갑다/날이 또렷하다”고 했다가 바로 “날에서 상한 냄새가 난다”로 점프한다. ‘체조하는 사람’은 어떤가. “체조는 심심하다/체조가 나에게 휘어져 들어올 때 나는 체조를 이긴다”니. 여러 번 입 안에서, 머리 속에서 곱씹어야 조금씩 실체가 드러난다. 쉽지 않은 시다. 그런데 난해하다고 그냥 치워버리진 마시라. 노동의 대가는 분명 있다.

 “어렵지만 이지적인 시”라는 심사평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예심 심사위원 함돈균 시인은 “이지적이면서도 육체성이 느껴진다”고 했다.

뜬구름 잡는 난해함이 아니라는 얘기다. 언어와 문장 뒤에 숨어 있던 ‘술래’를 찾았을 때 느껴지는 술래잡기의 기쁨이 준비돼 있는 시라고 할까.

 이 시인에게 예술은 고도의 정신노동이다. “예술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아요. 학문은 주장하고 선언해서 지식으로 인정받지만, 예술은 말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죠. 모르는 길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는 게 예술인 것 같아요. 이상이나 보들레르, 말라르메 등은 당대에 굉장히 어렵게 받아들여졌던 시인이에요. 하지만 후대에 와선 즐기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시대와 감각의 변화가 포용할 수 있는 폭을 넓힌 거죠. 영원히 해독할 수 없는 시라는 건 없어요.”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도 그런 ‘비밀’을 건드린 시다. 그는 “굉장히 빨리 써 내려갔던 시다. 그래도 내 시 중에 쉬운 편이라고 해서 골랐다”며 웃었다.

 그는 삶에서 가끔 마주치는 섬광 같은 강렬한 이미지를 잡아내길 즐긴다. 포착한 이미지와 순간의 상념을 옮긴 시어는 독창적이다. “건물을 올려다본다/(…) 공란이 많아서 울고 싶었다”(‘이 건물에 대하여’), “내가 베어 물었을 때 너는 썩으려 한다/단 한 차례의 생애에서 우리가 의인화되는 순간이다”(‘의인화’), “내가 너를 흘러나오는 피처럼 곤란하게 해줄 것이다”(‘대위법’) 등의 표현에서 ‘육체성’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부터 “숨쉬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글쓰기를 했다”던 이 시인은 1994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서울대 국문과 졸업 후 몇 년 동안 문학과 멀어졌다가 이상의 ‘절벽’과 재회한 걸 계기로 17년간 꾸준히 낯선 언어와 은밀히 소통해왔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이수명=1966년 서울 출생. 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근간)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붉은 담장의 커브』등. 박인환 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수상.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창을 바라본다.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이것이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누군가의 생각 속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누군가의 생각을 질료화한다. 나는 그의 생각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

나는 한 순간,

누군가의 꿈을 뚫고 들어선 것이다.

나는 그를 멈춘다.

커튼이 날아가버린다. 나는 내가 가까워서 놀란다. 나는 그의 생각을 돌려보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생각을 잠그고 있다.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로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지금 누군가의 생각이 찢어지고 있다.



숨기고픈 기억, 가짜로 써내려간 자서전

소설 - 윤성희 ‘부메랑’


윤성희씨는 “반듯한 글만이 정답이 아닌 것처럼, 우리 삶이 정물화처럼 명료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자서전을 써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누구의 인생에든 ‘이야기’가 있음을 보여주는 작가가 윤성희(38)다. 황순원문학상 후보에 오른 ‘부메랑’(‘대산문화’ 2010년 가을호)은 자서전을 쓰는 늙은 ‘그녀’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녀가 쓰는 것은 가짜로 점철된 인생이다. “봄이면 사과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을 보았다”는 문장을 쓰곤, 이상하게도 지우기가 싫어 부모님이 사과농장을 했으며, 가을엔 인부를 열 명이나 고용했다는 거짓말을 쓴다.

 또, 그렇게 크게 농장을 했다면 가정부 하나쯤은 집에 있어야 어울린다 싶어 없던 인물도 만들어낸다. 평생 꽃 한 번 사 본 적 없었지만 “식탁 위엔 언제나 화분이 놓여 있다”고 자서전에 쓰기 위해 꽃집에 들어선다. 자서전이 삶까지 바꾸는 지경이다.

 하지만 자서전 쓰기가 순탄치는 않다. 자서전에서 ‘그녀’는 십여 년 전 돈을 빌리러 왔던 동창에게 십만 원을 던지며 “기미나 수술해라. 얼굴이 그게 뭐냐”고 차갑게 말했던 걸 후회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누군가 그녀의 자서전을 읽는다면 왜 하필 기미인지 의아해할 것임을 안다. 자서전에 쓰지 않은, 묻어둔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를 잃은 동창은 ‘그녀’의 집에 채권자로서 찾아왔었다. 엄마는 죽기 전, ‘그녀’의 엄마에게 받지 못한 돈이 있음을 딸에게 알려줬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엄마는 시치미를 뗀다. 그때 동창이 던진 말이 “기미 잔뜩 낀 마귀할멈처럼 늙어버려라!”였다.

 소설에선 이렇게 주인공의 기억과 거짓 자서전의 내용이 얽히고설킨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꾸며낸 것인지 모호해진다. “피하고 싶은 기억은 흔히 엄청난 것들이라 생각하죠. 실은 아주 사소하고 부끄러운 기억일 수 있어요. 잊고 살다 보면 나중엔 그 기억이 내 것인지 내 친구 것인지조차 모호해지죠.”

  지난해 후보작이었던 ‘공기 없는 밤’은 남자 노인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화의 내용과 노인의 기억이 뒤섞이는 방식으로 직조된 작품이었다. 이에 비해 ‘부메랑’은 여자 노인 편이랄 수 있겠다.

  “기억을 회상톤으로 쓰지 않았어요. 과거의 문장을 현재의 삶에 던져 넣는 시도가 재미있거든요. 독자도 던져놓은 문장을 짜깁기해야 추측할 수 있고, 소설 안에 여러 겹이 생기기도 하고요.”

  작가의 작업은 한 사람의 인생을 짧은 문장으로 압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소설에서 ‘그녀’가 시어머니에 대해선 “결혼을 반대했다”는 단 한 문장만으로 정리한 것처럼 말이다. 소설에는 ‘그녀’의 이야기, 그녀 주변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정교하게 직조돼 있다. 단단한 문장과 문장이 만나 치밀한 탑을 쌓아나간다. ‘그녀’의 거짓 자서전도 퀼트처럼 단단히 봉합되는 듯하다. 그러다 한 순간 ‘그녀’가 조각난 진실 앞에서 허물어지는 장면이 백미다.

  심진경 예심위원은 “이청준의 단편 ‘자서전들 쓰십시다’ 이후 한국문학에서 자서전은 스스로를 영웅시하는 일종의 자아상실의 방식으로 그려졌다. 윤성희는 자서전 쓰기에 대한 풍자적 시선을 유지하면서, 자기와 자서전 속의 또 다른 자기를 분리시키는 객관적 거리화를 이뤄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성희=1973년 경기 수원 출생. 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현대문학상·이수문학상 등 수상. 장편 『구경꾼들』,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 등.

 

 

 

 

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⑦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중앙일보] 입력 2011.08.11 00:28 / 수정 2011.08.11 00:47
문학은 왜 외면하나, 가진 자의 속내를
소설 - 정미경 ‘파견근무’


“무너져내리는…” 소설가 정미경은 소설 ‘파견근무’의 분위기를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겉보기엔 세련됨을 유지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놓쳐버린 주인공 ‘강’의 몰락, 정씨는 그 파국을 밀도 있게 파고 들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문학하는 이들에 대한 편견이 있다. 어디 문학뿐일까. 예술하는 이들이 ‘불행한 예술가’이길 바라는, 일상적 성취가 예술적 성취에 정확히 반비례할 거라 여기는 오래된 편견 말이다. 그것은 예술의, 문학의 태생이 그러하기 때문일 게다.

 인기 화가의 아내, 장성한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소설가 정미경(51)은 그런 면에선 불리하다. 본인도 소설을 이렇게 정의하지만. “작가가 어떤 계층에서 자라났고, 살아가든 간에 소설이란 것은 인생에서 고통의 시간, 불안의 시간을 자양분으로 삼는 불행한 존재”라고. 그러나 편견은 편견일 뿐. 작품을 작가의 생활과 분리하지 못하고, 작품이 전적으로 작가 자신의 직접 체험에서 나온 육성일 거라고 착각하는 데서 나오는 잔인한 오류다.

 정씨는 두 번 등단했다. 1987년, 스물일곱에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됐다. 그 뒤 오랜 공백기를 거쳐 2001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소설로 또 한 번 등단했다. 이듬해 오늘의 작가상을, 2006년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14년간 어떻게 참았을까 싶을 정도로 두 번째 등단 직후 숨가쁘게 달려왔다. 쓰지 못하던 시절의 관찰이 그를 ‘디테일이 강한 작가’로 단련시켰다.

 정씨는 “처음 문학에 뜻을 가진 그때부터 삶에 예민한 촉수를 갖고, 매사에 그걸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황순원 문학상 후보로는 2006년, 2008년에 이어 세 번째. 2008년엔 예심위원 5명 중 4명이 그를 추천했다. 수상작을 내지 못한 그 해, 정씨는 예심 최다 득표자 중 한 명이었다. 올해도 예심위원 5명이 만장일치로 그의 ‘파견근무’를 후보에 올렸다. 조경란의 ‘학습의 생’과 함께다.

‘파견근무’는 고향으로 순환근무를 자처한 판사의 이야기다. 빡빡했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났다가 2년이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근무를 시작한 그는 지역 유지들과 엮이고, 봐주고 봐주는 먹이사슬에 얽히고, 도박에 빠진다.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목적성을 상실하면서 삶의 과녁을 벗어나게 되고, 본인도 모르는 새 자아 상실이 벌어지는 얘기”라고 작가는 요약한다.

 심진경 예심위원은 “정씨는 중산층 이상 사람들이 갖는 삶에 대한 불안감을 굉장히 잘 보여주는 작가다. 당연히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가치와 의미에서 손을 놓아버리는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했다”고 평했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할 부분은 ‘불안감’만이 아니다. 바로 ‘중산층 이상’이다. 소설가 정씨가 서 있는 편견의 자리, 바로 그 지점 때문에 그는 한국 문단에서 소중한 존재다. 우리 문학은 주로 무산자(無産者)의 장르였다. 오갈 데 없는 청춘, 중산층 및 그 이상의 계층에게 선망과 경멸이란 양가감정을 가진 이들을 대변했다.

중산층 이상의 입장에서 이들의 속내를 다루면서도, 이들에 거리를 두고 성찰하는 문학은 흔치 않았다. 정씨는 말한다. “위에서 달라지지 않는 한 이 사회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절망감이 제겐 있어요. 제가 그들의 삶을 다루는 것은 그 계층의 변화를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미경=1960년 경남 마산 출생. 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 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2004년), 장편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2005), 소설집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2006) 등.


그늘에 살며 빛 찾는 사람, 그게 시인
시 - 이영광 ‘나무는 간다’ 외 14편


나무는 가지 않는다. 가지 않는 나무를 ‘질주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동세, 사물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것의 일단을 언어를 통해 불러오는 것. 시인 이영광이 추구하는 시 세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몸으로 시 쓰는 사람”(시인 최정례), “응달의 정신”(시인 박형준), “울림이 큰 시”(평론가 강계숙)….

2011년 미당(未堂) 문학상 예심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왜들 이러셔’ 궁금할 법도 하다. 미당 서정주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공부 많이 한 이 시인이 왜 ‘몸으로 시 쓴다’는 평가를 받는지. 아픈 세상에 거친 펀치를 날리고, 때론 사랑과 죽음에 대해 서정적 절창을 쏟아내기도 하는 이 ‘전업 시인’에게 동료 문인들은 왜 열광하는지. 그래서 이영광(44)을 만났다.

나무는 간다

나무는 미친다 바늘귀만큼 눈곱만큼씩 미친다 진드기만큼 산 낙지만큼 미친다 나무는 나무에 묶여 혓바닥 빼물고 간다 누더기 끌고 간다 눈보라에 얻어터진 오징어튀김 같은 종아리로 천지에 가득 죽음에 뚫리며, 가야 한다 세상이 뒤집히는데

고문 받는 몸뚱이로 나무는 간다 뒤틀리고 솟구치며 나무들은 간다 결박에서 결박으로, 독방에서 독방으로, 민달팽이만큼 간다 솔방울만큼 간다 가야 한다 얼음을 헤치고 바람의 포승을 끊고, 터지는 제자리걸음으로, 가야 한다 세상이 녹아 없어지는데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 공중의 決勝線에서, 나무는 문득, 질주를 멈추고 아득히 정신을 잃는다 미친 나무는 푸르다 다 미친 숲은 푸르다 나무는 나무에게로 가버렸다 나무들은 나무들에게로 가버렸다 모두 서로에게로, 깊이깊이 사라져버렸다


 -왜 시를 쓰나.

“시는 말이 넘치는 상태가 아니라 말이 끊어진 곳에서 시작된다. 할 말이 없는 상태, 말 가지곤 안 되는 상태, 그런 막다른 골목에서 찾는 또 다른 말, 도저히 말이 안 나올 것 같은 데서 나오는 어떤 말, 그게 시의 매력이다. ”

-용산 참사 때 현장에 나갔던 시인 중 하나였다. 당신의 시 어디에도 그 네 글자는 직접 언급되지 않지만.

“시의 딜레마는, 그런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쓸 때도 시인 자신의 몸을 통과하는 말로 써야 한다는 거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해 자행하고 있는 폭력·고통·절망·죽음 같은 것은 씻어내고 풀어내야 하는데 사회질서, 법체계는 그런 걸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 시인은 뭉쳐있는 감정을 파헤치고, 일일이 손으로 만지면서 그것을 언어로 드러낸다.”

이씨는 시 ‘유령’ 연작에서 3차까지 술 마시고 택시도 못 잡고 취한 새벽에 시든 폐지더미 리어카에 싣고 지나가는 ‘유령’을 못 본 척 하지 못한다. 경기도 구리까지 대리운전 기사와 귀가하면서 대리기사라는 도시의 유령 또한 외면하지 못한다. 그리고 조간 신문의 숱한 사망 소식 또한 덤덤하게 넘길 줄 모른다. 그는 선한 걸까?

“시가 사람을 바꾸는 면이 있다. 가면을 벗어 던지고 어쩔 수 없이 뭔가를 맨 얼굴로 대해야 하는 상황을 시가 제공한다. 인간 삶에서 보기 꺼려지는 거북한, 불편한 진실과 대면해야 하는 순간 말이다.”

그래서 그의 ‘응달의 정신’은 울림이 크다. “시인은 그늘에 사는 사람이다. 응달에서 빛의 세계를 보는 것이 어쩌면 시인의 포지션인 것 같다. 응달, 그늘에서 바라보면 빛의 세계가 더 잘 보이니까.”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영광=1967년 경북 의성 출생. 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2003년),『그늘과 사귀다』(2007),『아픈 천국』(2010).

 

 

 

 

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⑧

[중앙일보] 입력 2011.08.13 00:01 / 수정 2011.08.13 01:08
진짜 무서운 고독은, 고요 속의 고독

시 - 이원 ‘의자와 노랑 사이에서’ 외 19편


이원은 3년 만에 미당문학상 본심 후보에 올랐다. “그 동안 슬픈 마음으로 결핍된 것을 향했다면, 이제는 어떤 상황과 사물을 온전히 바라보려고 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느 날 화장실 문틈으로 변기가 보였다. 우두커니 앉아있는 듯한 모습이 불편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어둠뿐인 곳에서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변기가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이어서” 다시 문을 열곤 했다. 자기의 몸을 부여잡고 치열한 명상을 하는 모습이 꼭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같았다.

 그래서 시인은 ‘반가사유상’의 무릎에 앉아 자신의 맨몸을 들여다봤다. “발은 몸의 것인데 발자국은 왜 길에 찍히는 것인가”를 “비명은 몸의 것인데 왜 몸 밖으로 나가려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다가 두 발이 “반가사유상의 명상으로 끓기도 하는” 지점에 다다랐다.

 이원씨는 “이 시를 쓸 무렵에 경계라는 것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자신이 세계에 경계를 그어놓고,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다. 무생물과 생물, 슬픔과 기쁨이라는 감정…. 처음에는 경계로 인해 어긋나는 것만 보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경계에 스미는 걸 보게 됐다”고 했다. 경계로 인해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미고, 만나고, 닿는 것에 대한 사유가 시에 그대로 녹아든 이유다.

 두 세계가 경계를 두고 맞닿아있는 건 불편한 일이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다. 그래서 경계도 세계도 지워보려고 했지만 다 사라져도 최소한의 것은 남는 것 같았다. 그는 “최소한의 그것은 고독, 명상의 힘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고독을 이리저리 굴리다 ‘일요일의 고독’ 연작이 나왔다. 이씨는 “우리는 언제나 시끄러운 것들 속의 고독을 생각하지만 진짜 무서운 고독은 고요 속의 고독”이라고 설명했다. 월요일의 고독이 아닌 일요일의 고독에 천착한 것도 그 때문이다. 평일 내내 시끄럽다가도 일요일만 되면 낯설도록 폐허처럼 보인 여의도의 고독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고독을 두고 슬픈 감정을 덧칠하지 않는다. 오히려 “뼈의 안쪽에서 뼈는 무엇을 붙잡고 있을까”를 생각하고 “고독이 꼭 추운 것만은 아니다”(‘일요일의 고독 2’)는 건조한 고백을 툭 던져놓는다. 최소한의 것이 어쩌면 우리를 지탱하게 하고, 끝까지 견디게 하는 힘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강계숙 심사위원은 “시인이 겪는 고통이 바닥까지 가서 너무나 투명한 고통,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상태에까지 가서 나오고 있는 고독을 그려낸다”며 “정말 맨살 탁 튀어나온 것 같은 인상”이라고 평했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원=1968년 경기도 화성 출생. 92년 세계문학으로 등단. 시집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등.

일요일의 고독-4

꽃봉오리가 맺힌 곳이 고요하다

하늘 밖은 둥글고 흙 속은 웅성댄다

수백 개의 창들이 미끄러져 내리고 있다

내부는 창만 바꾸고 있다

차 한 대가 그늘로 들어온다

그늘은 시간을 직선으로 자른다

밀려드는 햇빛에 허공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딸각 문 여는 소리가 났다

놀이공원의 대관람차가 멈추어선다

무용수의 세워진 발 끝

길 너머에 붉은 해가 투명하게 잠기는 바다가 있다고 했다




글쓰기도 학습이다, 포환던지기처럼

소설 - 조경란 ‘학습의 生’


공사장 가림막 앞에 앉은 조경란 작가. 가림막 틈으로 새파란 가지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무채색의 삶에서도 솟아나는 생의 열망, 작가는 그걸 좇아 일본으로 향했는지도 모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경란(42)씨는 성실하다. 1996년 등단 이래 한 해 한 권 꼴로 책을 냈다. 뜨개질을 하든, 기타를 치든, 빵을 굽든, 복어를 다루든 1년에 한 번씩은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한다. 그런 ‘공부’는 온전히 작품에 담긴다. 근작 산문집 『백화점』은 ‘감각의 여왕’이라 해도 무방할 특유의 감성과 성실한 취재로 엮은 책이다. 남들은 쉬는 기분으로 써내는 산문도 논문 쓰듯 끙끙대며 공들인다. 그는 재능이 아닌 노력이 소설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학습의 生(생)’(문학과사회 2010년 겨울호)은 제목부터 그런 작가의 면모를 떠올리게 한다.

 “저는 재능이 없는 작가예요. 그러니 공부해야죠. 인생이란 학습의 생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만난 사람들이 다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간다는 걸, 그 순간엔 잘 모르지만.”

 주인공은 막 이혼하고 은퇴한 마흔아홉의 여교사다. 자기 몸이 스스로를 적으로 알고 공격해대는 자가면역질환 때문에 산 좋고 물 좋은 동네를 찾아 이사한다. 그녀의 시골 생활에 활력을 주는 건 먹을 것을 배달해주는 동네 구멍가게 ‘무순상회’의 중3짜리 아들 ‘무순’이다.

 투포환 선수를 꿈꾸는 무순은 그녀 집 마당을 빌려 연습을 한다. 절대 무중력, 혹은 암흑 공간에 있다고 느끼던 그녀에게 쿵! 하고 떨어지는 투포환 소리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섬세하고 고독한 여자의 생과 거칠고 단순한 무순의 생, 어울리지 않는 듯한 둘의 삶이 그녀의 집 마당에서 조금씩 겹쳐진다.

 백지연 예심위원은 “마당은 만나고 소통하고자 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조경란의 소설은 항상 자기성찰적이면서 타인과의 소통을 꿈꾼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집합이 커질수록 상처가 생겨난다. 아들이 여자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무순상회 여주인은 상한 음식을 보내며 적의를 드러내고, 세탁소 여자는 그녀에게 속삭인다. “자기, 윤리 선생님이었다며?”

 둘 사이의 우정은 그러나 무순이 지갑을 훔치는 사건으로 제동이 걸린다. 둥근 쇠공을 밀어내는 힘과 그것을 받아내는 힘 사이의 균형이 한 순간 깨져버린 것이다. 작가는 처음엔 투포환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단다. 남들이 보기엔 별 의미 없어 보이는, 그러나 완전무결한 구(球)를 만들어내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대신 힘의 균형, 쇠공이 그려내는 궤적, 공을 줍고 다시 던지는 동작의 단순한 반복에 매료됐다. 청탁을 받으면 허겁지겁 써내는 생활은 이제 접었다. 오래 전부터 준비해둔 원고를 고치고 또 고쳐 발표한 것이다. 쇠공을 반복해 던지는 것처럼, 그녀의 글쓰기도 지루한 반복이자 학습이다. 그는 지금 한 달 일정으로 도쿄에 머물고 있다. 인터뷰는 도쿄로 떠나기 전 날인 2일 이뤄졌다.

 “동일본 대지진이 났을 때, 거기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떠나고 싶었지만 엄마 때문에 못했죠. 이번에도 엄마랑 엄청나게 싸우고 가는 거예요. 소설은 도스토옙스키 『노름꾼』 한 권만 들고 갈 거예요. 나머지는 공부할 책들. 아, 작가가 너무 모범적으로 보여도 안 되는데….”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경란=1969년 서울 출생. 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코끼리를 찾아서』 『풍선을 찾아서』, 장편 『가족의 기원』 『복어』 등

 

 

 

 

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⑨

[중앙일보] 입력 2011.08.16 00:18 / 수정 2011.08.16 00:29
시인 이제니씨는 시를 쓰는데도 구태여 의미전달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씨는 “하지만 방법의 차이일 뿐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을 완전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사진작가 이에니 촬영]

말의 리듬 자체를 시로 만드는 솜씨
시 - 이제니 ‘나선의 바람’ 외 11편

나선의 바람

기억의 숲에서 망각의 바람까지 우리의 목소리는 더 이상 어두울 수 없을 만치 어두워 숲으로 감추고 바람으로 속이고 숲에서 바람까지 나무에서 구름까지 감추고 삼키고 속이고 숙이고 죽이고 묻히고 말리고 밀리고 우리는 뒤에서 우리는 목소리 뒤에서 우리는 우리의 죽은 목소리 뒤에서 몇 발짝 뒤에서 간신히 어제에서 어제로 사라져가는 시간 속에서 숲으로 바람으로 구름에서 종이까지 어쩌면 거기에서 어쩌면 여기로 나선의 숲에서 나선의 바람까지 어둠은 더 이상 어두울 수 없을 만치 어두워 죽음의 숲에서 기억의 바람까지 어쩌면 이제는 아직도 적어도 걸어서 기어서 숲에서 숲으로 곁에서 곁으로 의지와 망각과 불과 춤과 어둠과 죽음과 거기에서 여기로 여기에서 거기로 이미 드디어 우리는 죽었고 나선의 바람과 숲의 불과 물의 춤에게 드디어 우리는 아직도 우리는 숲과 숲으로 망각과 망각으로 우리의 목소리는 더 이상 조용할 수 없으리만치 조용히 우리는 죽었고 나선의 바람에서 기억의 불까지 아직도 이미 벌써 또다시

시인 이제니(39)씨가 세는 나이로 마흔이라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시에 비해 이씨 자신은 덜 알려진 편이다. 갑작스럽게 유명해졌다는 얘기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가을에 출간한 첫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였다. 제목에서부터 음악성이 느껴지는 시집은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물론 좋다는 평가가 많았다. 올해 미당문학상 후보작들도 호평을 받았다. “말 다루는 솜씨가 젊은 시인들 중 두드러진다”(평론가 김진수), “정확한 의미 대상을 지칭하지 않으면서도 말의 리듬 자체가 하나의 시가 돼 깜짝 놀랐다”(평론가 강계숙) 등등.

 구태여 ‘의미 전달’에 얽매이지 않는 이씨 시의 음악적 특징은 그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그는 대학시절 교내 밴드에서 기타를 쳤다. 헤비메탈을 즐겨 연주했다. 질풍노도 같은 세월이었단다. 시인이 된 후에도 자신의 시를 포크송으로 만들어왔다. ‘더블플레이 포임(Double Play Poem)’이라는 부정기 시낭송회를 만들어 시로 만든 노래를 부르고 시 낭송도 한다. 공연 장소는 주로 홍대 앞 카페. 후보작 중 ‘곱사등이의 둥근 뼈’‘나선의 바람’ 등을 노래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씨는 “가사 없이 멜로디나 큰 북소리만 들어도 고양감이 드는 음악 같은 시, 의미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글쓴이의 의도가 드러나는 시를 쓰고 싶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이씨가 무의미시(無意味詩)를 추구하는 건 아니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일정한 지향점이 분명히 있”단다.

 가령 이씨는 요즘 ‘나선(螺旋)’이라는 개념에 관심이 있다. 이씨는 문장으로 ‘지금 이 순간’을 정확하게 붙잡는 일은 항상 실패한다고 본다. 그러나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 현재를 말하다 보면 앞의 문장들은 차례로 소멸하며 일정한 흔적을 남긴다. 이런 과정이 이씨에게는 일종의 나선형 소용돌이로 느껴진다. 이씨는 또 “현기증·속도감 같은 감각도 나선의 이미지와 통하는 데가 있다”고 말했다.

 ‘나선의 바람’에는 이런 생각이 녹아 있다. 어쩐지 시원(始原)의 서늘한 바람 한 줄기를 떠올리게 하는 시다.


◆이제니=1972년 부산 출생.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



우울한 현실 얘기, 곳곳에 똬리 튼 강렬함

소설 - 편혜영 ‘야행(夜行)’


소설가 편혜영씨는 “내게 익숙한 고향 서울의 이미지는 재개발, 철거의 풍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선지 잔혹하고 끔찍한 소재가 자연스럽게 나를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편혜영(39)씨의 소설은 최근 몇 년새 변신 중이다. 완만하지만 뚜렷한 궤적을 그리며 변하고 있다. 그 방향은 ‘기괴한 잔혹극에서 우울한 현실극으로’쯤 된다. 이전 소설집들에서 선보였던 섬뜩하고 강렬한 이야기는 최근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피와 살이 튀는 장면이 많아 ‘하드고어(Hardgore)’라고까지 얘기됐던 특징을 대신하는 것은 현실의 어두운 단면들이다. 지난 봄 출간한 세 번째 소설집 『저녁의 구애』에서는 무미건조하지만 반복적이어서 오히려 더 끔찍한 ‘일상의 비극’을 주로 다뤘다. 가령 매일 똑같은 점심을 사먹는 대학가 복사센터의 직원이 등장한다.(‘동일한 점심’)

 후보작 ‘야행’은 편씨 소설의 현주소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실에 뿌리 내린 어두운 이야기이되 특유의 강렬함이 곳곳에 똬리 틀고 있다.

 소설은 첫 두 문장부터 눈길을 잡아 끈다. ‘벨 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부엌에서 뒷물을 하고 있었다. 사타구니에서 나오는 것은 누런 오줌뿐이었지만 이미 통제력을 상실한 아랫도리는 언제나 눅진했다.’ 폐경·요실금 등을 연상시키는 여인의 육체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여성으로서의 은밀한 생리는 가차 없이 까발겨진다.

 ‘뒷물’의 주인공인 그녀는 철거를 코앞에 둔 재건축 아파트 단지를 끝내 떠나지 않고 홀로 버티는 중이다. 아들이 하나 있긴 하지만 자식이라기보다는 ‘웬수’에 가깝다. 한때 부유했으나 몰락을 거듭한 그녀에게 삶의 희망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 철없는 자식이나마 아들로부터 다음날 다른 곳으로 모셔갈 거라는 얘기를 듣고 아파트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신산스런 인생 복기(復棋)와 섬뜩한 공포 체험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그녀는 아들에게 오줌 지린 냄새를 들키지 않기 위해 목욕을 시도한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난데 없는 비상벨이 울린 것. 다리 통증이 심해 바퀴 달린 회전의자에 가슴을 얹은 채 양손을 썰매 타듯 놀려 이동해야 하는 그녀, 옷 챙겨 입을 새도 없이 벌거벗은 채 허둥댄다.

 급기야 이주를 재촉하던 시공사 직원으로 짐작되는 한 남자가 불쑥 현관문을 따고 침입한다. 거실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그녀의 얼굴 한뼘 앞까지 얼굴을 들이대고는 빤히 쳐다본다. 칠흑같은 어둠 속 남자의 표정은 웃고 있는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다.

 소설 마지막 장면, 누군가 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들인 것인지, 종전의 시공사 직원인 것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소설은 모호하게 끝을 맺는다.

 편씨는 “과거 내 소설이 출렁거리는 늪의 이미지였다면 이번 작품은 습도를 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소설의 색깔 변화에 대한 나름의 해명이다. 아리송한 결말은 독자에게 여운을 남기기 위한 일종의 장치.

 소설을 쓴 계기는 일본 쓰나미였다. 편씨는 “급하게 대피한 사람의 소지품 중 가장 많은 게 신분증·가족사진 등 최소한의 신분 증명이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극한상황이 닥쳤을 때 자기 것으로 챙길 수 있는 게 누구나 많지는 않을 것 같은 상황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편혜영=1972년 서울 출생.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아오이 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장편 『재와 빨강』.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⑩·끝

[중앙일보] 입력 2011.08.18 00:18 / 수정 2011.08.18 00:21
나는 울겠어요, 당신에게 위로가 된다면

시 - 허수경 ‘나는 춤추는 중’외 8편


고고학 박사이기도 한 허수경 시인은 “고고학 공부를 시작한 것도 시 때문이었다”고 했다. “시인이라는 업에서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시간까지 삶을 끌고 온 것 같다”며 스스로를 돌아봤다. [문학동네 제공]
‘어느 주점에서 벌겋게 취한 태양은 우는데/모든 별들에게 버려진 태양은 우는데….’(‘박하의 나날’)

 이런 시는 울고 있다. 절망적인 세계에서 절절하게 절망한다. 그러므로 시인의 자리는 절망의 한 가운데다. 절망의 현장에서 가장 큰 소리로 울어버릴 때, 시적 울림도 깊어진다.

 허수경(47)의 시편은 울음의 미학 위에 견고하다. 그가 고고학을 공부하겠노라 독일로 떠난 게 19년 전이다. 모국어로부터 뚝 떨어져 살아온 탓에 울음의 농도가 더 짙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의 울음은 좀 더 본질적인 것이다. 문학의 본업이 절망과 울음에 있다고 믿는다.

 “문학이 어떤 절망의 현장을 포착해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죠. 절망의 순간을 읽는 독자에게 그것은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희망이라는 거대한 단어 앞에서 저는 속수무책입니다. 희망이란 말 뒤에 숨겨져 있는 위선이 저는 무섭습니다.”

 시인은 2006년 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고학 공부를 끝낸 뒤 줄곧 문학의 자리로 되돌아오고자 애썼다. 그러나 그는 올 여름에도 발굴 현장에 있었다. 인터뷰를 청했을 때 “발굴하러 터키로 떠날 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e-메일로 답변을 보내왔다.

 “고고학 작업은 이미 시작한 것을 마무리하는 겁니다. 먼 길을 에둘러 드디어 문학으로 들어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고학은 그의 시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곳곳에 고고학적 사유가 웅크리고 있다. 시에서 시간을 다루는 솜씨가 딱 그렇다. 이를테면 ‘독일 남쪽 마을에서 쓰는 꿈’이란 시에서 소녀와 노인의 시간은 엉켜있다. 소녀는 노인이 사는 곳을 일러 ‘오래 전에 사라진 마을이에요’라고 증언하고, 노인은 소녀를 일러 ‘그 아이가 땅으로 들어간 건 아주 오래 전 일’이라고 일러준다. 시적 화자는 혼돈스럽다. 그래서 이렇듯 절망의 노래를 부른다.

 ‘누가 우는지 밤은 길고도 습했고 깨어나니/방에도 포도넝쿨이 들어차서 나갈 수가 없었다.’

 “발굴을 하다 보면 수천 년이 지난 지층이 눈 앞에 드러납니다. 어제처럼 생생하게요. 수천 년의 시간과 마주하다 보면 시간 개념이 들쑥날쑥 해집니다. 다른 나이, 다른 시간대 등이 얽히고설키는 곳이 우리가 사는 세계이지요.”

 온갖 매체들이 부질없는 희망을 외칠 때, 어떤 시인은 마지막까지 울기를 멈추지 않는다. 허수경 시인은 잘 울고 잘 절망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 ‘사랑의 그림자를 쫓기 위해 당신을 방문한 후기’는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바타유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시인의 목소리로 바꾸어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쓴다, 마치 우는 아이처럼’


◆허수경=1964년 경남 진주 출생. 독일 뮌스터대 고대근동고고학 박사. 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혼자 가는 먼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장편소설 『아틀란티스야, 잘 가』 등.

나는 춤추는 중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슬픔은 명랑하게 온다

바람의 혀가 투명한 빛 속에

산다, 산다, 산다, 할 때

나는 춤 추는 중

나 혼자 노는 날

나의 머리칼과 숨이

온 담장을 허물면서 세계에 다가왔다

나는 춤 추는 중

얼굴을 어느 낯선 들판의 어깨에 기대고

낯선 별에 유괴 당한 것처럼

나는 춤추는 중



유통기한 없는 고통, 벗어날 수 있을까요

소설 - 한강 ‘회복하는 인간’


한강씨는 “소설가는 이야기꾼이라기보다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인간의 삶의 언어로 인간과 삶에 대해 질문하는 게 소설가의 일”이라고 했다. [조제경 인턴기자(조선대 법학과)]
조심스레 물었다. “인간의 고통에 유통기한이 있을까요?” 작가는 머뭇거렸다. “음…. 어떤 고통은 유통기한이 없지 않을까요?”

 후보작 ‘회복하는 인간’을 두고 소설가 한강(41)씨와 주고받은 문답이다. 묻는 이는 “고통은 시간과 더불어 사라지므로 유통기한이 있다”고 주장했고, 답하는 작가는 “고통의 소멸이 회복이라면, 원래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완전한 회복(回復)이란 게 가당키나 한 것일까” 되물었다.

 논쟁은 잠시 거두고 작품으로 곧장 들어가기로 했다. 소설의 이야기는 비교적 또렷하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표제에서 직접 드러난다. ‘회복하는 인간’의 문제다.

 주인공은 서른을 훌쩍 넘긴 방송 작가다. 일주일 전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 장지(葬地)에서 그만 발목을 삐끗했다. 다친 부위에 뜸을 뜨다 화상을 입었다. 상처가 깊어져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자연 회복될 수 있으니 두고 보자”고 한다.

 주인공의 발목 상처가 아무는 동안 그의 마음의 상처 또한 드러난다. 언니와 그는 오랫동안 소원한 사이로 지냈다. 심지어 생사를 오가는 언니를 거의 만난 적이 없다. 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마음의 고통이 몰아친다. 복숭아뼈 아래 화상이 전해오는 육체의 고통과 더불어. 주인공은 끝내 고통으로부터 회복될 수 있을까.

 “주인공이 고통으로부터 회복된다면 다행이지만, 또 한편으론 무정한 일이기도 하죠. 회복되지 못한 언니가 떠난 뒤 저 홀로 회복되는 거니까. 그러면서도 회복이란 인간이 가진 생명의 힘이기도 하잖아요.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회복돼야 하는…. 이처럼 회복하는 인간을 둘러싼 복잡한 양상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다친 발목에 뜸을 뜨다 화상을 입은 이야기는 작가의 실제 경험이다. 그 경험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다. “발목이 나아가는 걸 보면서 인간은 죽지 않으면 회복하는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크게 세 가지 시점으로 전개된다. 소설의 화자는 주인공을 ‘당신’이라 지칭하며 현재 시점(발목의 고통)과 과거 시점(언니와의 불화), 그리고 미래 시점(발목의 회복)을 오가며 이야기를 끌고간다. 그러니까 현재 시점의 주인공은 미래에 자신의 고통이 회복되리라는 걸 모른 채 일종의 죄의식마저 느끼고 있지만, 독자들은 화자의 미래 증언 덕분에 주인공의 고통이 끝내 회복되리라는 걸 안다. 한씨는 “어긋나는 시점 때문에 회복과 관련한 여러 겹의 사유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소설의 화자가 풀어놓는 미래 증언 어디에도 주인공의 마음의 상처가 회복될 거란 서술은 없다. 육체의 고통은 분명 회복되리라 예고하지만 마음의 고통에 대해선 유보적이다. 작가는 “마음의 고통 속에서 자신에게 최대한 진실해지는 순간, 혹시 회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물어보는 데서 그쳐야 한다. 그게 진실에 가까운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작가가 옳았다. 어떤 고통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회복의 시점 또한 정해진 게 없다. 다만 고통 속에서 최선을 다해 진실해질 것. 그 진실의 순간에 회복의 가능성이 솟아날지도 모르니까. 고통을 통과한 인간만이 ‘회복하는 인간’에 이를 수 있다.


 ◆한강=1970년 광주광역시 출생. 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여수의 사랑』, 장편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등. 한국소설문학상·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이상문학상 등 수상.

 
글=정강현 기자
사진=조제경 인턴기자(조선대 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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