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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끔찍하여라, 혹시나 했는데, 역시가 되었다. 지금은 인간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때.

by 아프로뒷태 2011. 8. 12.

 

용역직원들, 포이동 재건마을 기습 철거…항의하던 일부 주민들 부상

 


“강남 부자 수재민은 긴급 복구하면서 우리들 집은 이렇게 부수나”

 

12일 새벽 네시 반. 주민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사이 육중한 몸집의 용역직원들이 서울 강남구 포이동 재건마을에 나타났다. ‘쾅, 쾅’ 벽을 무너뜨리는 해머 소리가 온 마을을 공포에 빠트렸다. 용역들은 닥치는 대로 망치를 휘둘러 주민들이 어렵게 만들어 놓은 가건물을 부숴댔다.

50여명의 주민들은 울부짖으며 용역직원들의 행동을 막아보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주민들은 용역직원들에게 얻어맞아 힘없는 낙엽처럼 용역직원들 옆에 고꾸라졌다. 마을 곳곳에 울리는 비상 사이렌 소리와 ‘아악’하는 절규만 어지럽게 어스름 짙은 새벽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청과 용역업체 직원들이 강남구 포이동 재건마을 일부를 기습 철거했다. 용역직원 80여명은 이날 새벽 4시 30분께부터 약 30분간 3개동 7세대를 허물었다. 용역직원들은 방송인 김제동씨가 12일 방문할 예정인 아이들 공부방만 철거하지 않고 마을을 떠났다.

 

 

기습 철거에 항의하던 주민들은 용역직원들에게 훔씬 두들겨 맞았다. 일부 주민들은 찰과상을 입거나 피부에 멍이 들었고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에 맞기도 했다. 한 주민은 용역에게 얼굴을 맞아 이가 부러지기도 했다.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 신미자(41)씨는 “가건물이지만 ‘첫사랑 생각하듯’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어제는 정말 행복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허망하게 부숴버리다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울먹였다. 20년째 포이동에서 살고 있는 이원희(62)씨는 “강남 부자 수재민들은 긴급 지원해 복구하고, 우리는 없이 산다고 이렇게 집을 부수고 갈 수 있냐”며 원통해 했다.

 

경찰은 용역직원들이 마을을 다 부수고 철수한 뒤에서야 포이동 재건마을에 도착했다.

포이동 주민 30여명은 12일 오전 강남구청을 방문해 노수만 강남구 부청장을 면담했다. 노 부청장은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주민들이 불법 건축물을 계속 지으면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남구청이 포이동 마을을 폭력 철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철거를 하더라도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야지 국가기관이 용역들을 동원해 폭력을 쓰면 어떡하냐는 비난이다. 누리꾼 ‘벽야’는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더라도 새벽 4시에 이런 방식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만약에 그런 과정에서 한 사람이라도 죽었으면 어쩔건가. 강남구청장은 큰 절로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포이동 판자촌 재건마을은 1981년 전두환 정부가 도시빈민·부랑인 등을 이 지역에 강제이주시키며 형성됐다. 지난 6월 화재로 전체 96가구 중 절반 이상이 불에 탔다. 그러나 이곳이 무허가 판자촌이라 강남구청은 마을 철거방침을 세웠고 주민들에게 이주를 요구한 상태였다.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무더운 오후였다. 강남구 포이동 화재사건의 보도를 접하고 폐허가 된 그곳을 찾아가보았다.

 찌는 듯한 더위였다. 

 그곳으로 가는 내내 나는 이방인인가? 이방인이 아닌가?를 고민했다.

 양재천이 흐르는 구름다리를 건너자마자,

 폐허가 된 그곳은 질퍽한 흙과 타고 남은 가재도구 그리고 극복할 수 없는 허무가 널려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일터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눈에 띄는 인적이라곤 드문드문 얼굴을 내민 노인들의 모습뿐이었다.

  그들에게서 느낀 슬픔의 비린 내가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무관심으로 썩어가고 있었다.

 

 포이동, 

 그곳을 둘러싼 사방은 호화로웠다.

 거대한 자본주의 생산물이 탑처럼 솟아있었다.

 새롭고 멋지고 깔끔하고 편안한 것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곳에서 누추하고 흐물하고 오래된 것들이 있는 포이동은

 이물스러웠다. 또는 부조화스러웠다. 

 포이동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공포였다.

 

 그러나

 그 공포는 포이동만의 공포가 아니었다.

 서울의 곳곳에 위치한 공포였다.

 부산에 위치한 공포였다.

 지방 곳곳에 널브러진 공포였다.

 

 용역은 누구의 부탁을 받고 포이동으로 새벽에 출동했을까?

 포이동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외치며 구조를 요청했던 119는 왜 빨리 나타나지 않았을까?

 경찰들은 또 빨리 나타나서 용역을 말려주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현장에선 볼 수 없었지만...

 새벽에 방망이를 들고 나타난 용역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접하니, 괘심하고 화가나기 보단 안타깝다.

 미래의 청년들이 왜 어쩌다 저 자리에 가 있을까?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디 새벽에 포이동으로 찾아가기로 작정한 그들이, 새벽에 포이동으로 찾아가 방망이를 휘두른 그들이,

 새벽에 포이동에서 우르르 나온 그들이,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한 그들이

 제발 삶을 임권택 감독의 영화처럼 자신을 <하류 인생> 이라고 치부하며 좌절하지 않았으면 한다.

 용역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인생을 한탄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잠깐이면 해결 될 일이었다.

 이러한 씁쓸한 비탄으로 그들은 한 순간을 버텨보려고 해선 안 된다.

 

 책임을 가져야 한다. 모든 일은 우연인듯 하여도 필연이 깃들어 있다.

 새벽 4시의 30분동안의 한 순간은 어찌보면 한 개인의 인생에 어떤 찰라, 또는 우연인듯 한 일이어도 평생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무수히 보아왔다. <박하사탕>에서 광주항쟁으로 영호가 그러했고, <초록물고기>에서 일산 신도시 개발 건으로 깡패가 된 막동이가 그러했다.

 

 한 순간이 벌인 일이 평생의 악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또는 한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저기에 나가 있는 용역들을 설득해야 한다. 보듬어야 한다.

 

 가슴이 철렁거린다.

 그들을 설득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각하는 인간이니깐.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니깐....

 

 " 집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이곳은 당신들이 올 곳이 아닙니다. 당신들이 이곳에서 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아마 당신들은 오늘을 후회할 것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집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오늘 이 순간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실 수 있도록 ...제발 집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그대들의 미래입니다.

  젋은이들이여, 그대들이 짖밟은 것은 권력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 순간, 왠지 그녀가 한 말이 떠오른다.

 

  

 

 

 

 

 

 

 

 

   이 순간, 우리는 얼마나 분노할 수 있을까?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의 소논문으로 보이던 글이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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