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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향기

이 시대 문학인이 해야 할 일

by 아프로뒷태 2011. 7. 31.

[경향신문 기고]소설가 황석영 ‘내가 희망버스를 타는 이유’ 황석영 | 소설가

 

 

 

ㆍ누군들 편안할 수 있으랴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정리해고, 청년실업 등등의 단어들은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서 그냥 길 위의 돌멩이처럼 주변에 굴러다니던 물건과도 같았다. 가끔씩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되면 우리는 그래도 민주적인 국가의 복지정책이 있겠거니, 이제는 노조도 있고 시민단체도 많으니까 누군가 개선하고 도움을 주겠거니 하면서 스스로 안도하곤 했다. 지금 이만큼이라도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며 남의 참견은 되도록 하지 말고 내 식구들을 위하여 일터로 나가곤 했다. 신문과 잡지마다 서로 주장하고 떠들어대는 위의 단어들은 이제는 너무도 뻔한 ‘세계적 현실’이어서 관념적인 활자 이외에 별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김진숙’이라는 이름이 구체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급습했다. 처음에는 마치 붕괴된 지하의 어둠 속에서 희미하고 나약한 목소리로 “여기 사람 있어요!” 하는 부르짖음과도 같았다.

열네살 소녀 때부터 학교는커녕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갖가지 밑바닥 일을 하면서 드디어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 되었던 노동자 김진숙은 여기까지는 입지전적인 미담의 주인공일 수 있었다. 그녀는 해고자가 되어버린 뒤에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한 싸움에 나서기 시작했고 이제 쉰이 넘은 머리 희끗한 노동운동가가 되었다.

오늘의 다국적화된 자본은 그 이윤의 극대화를 위하여 노동시장의 조건이 보다 나은 곳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기 마련이고 그런 과정에서 자국의 노동자를 대량해고하거나 공장을 폐쇄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몇 년 동안 영도조선소를 사실상의 개장폐업과 다름없는 상태로 방치한 채 필리핀으로 옮겨가서 현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여 발주를 계속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비정규직이니 정리해고 같은 말은 언제부터인가 ‘고용의 유연성’이라는 점잖고 추상적인 말로 변해버렸다.

김진숙은 앞서 정리해고 철회를 호소하면서 죽어간 김주익, 곽재규 두 사람이 버티었던 바로 그 장소, 지상 35m의 허공에 매달린 크레인 위에서 이백일이 넘도록 항거하고 있는 중이다.

나 같으면 이틀도 못버틸 폭염으로 달구어진 쇳덩어리 크레인 속에서 그녀는 먹을 것과 대소변을 비닐봉지에 매달아 올리고 내리는 극한상황 속에서도 작은 화분에 방울토마토를 키우면서 시간과 싸우고 있다. 벌써 세 차례 계절이 지나도록 우리는 가끔씩 풍편에 흘려듣고 지나쳐버리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정보와 기사의 홍수 속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신문을 보지 않게 되었고 대부분의 언론들은 기사로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트위터를 통해서 세상을 향하여 구조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고 이것이 태풍의 눈이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희망버스’는 그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당신의 존재와 당신이 처해 있는 입장을 이해하고 당신의 주장에 동감한다는 작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백일 이백일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생의 결단을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한 채 내려가면 오히려 못살 거라는 거그게 더 중요해요 제게는.

김주익, 곽재규, 두 사람 한꺼번에 묻고 8년을 허깨비처럼 살았으니까요.

먹는 거, 입는 거, 쓰는 거, 따뜻한 거, 시원한 거, 다 미안했으니까요.

밤새 잠 못들다 새벽이면 미친 듯이 산으로 뛰어가곤 했으니까요.

김진숙의 메시지 가운데 몇 줄이지만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관자놀이를 찌르는 것만 같다. 그녀의 농성이 이백일 가까이 되었을 무렵에야 비로소 사태를 알게 된 나에게도 그것은 오래 잊고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누군들 잠자고 먹고 일어날 때마다 ‘김진숙’의 이름을 잊을 수가 있으랴.

이제 다시 희망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에게는 체포영장이, 함께했던 젊은 시인 작가들에게는 무더기로 소환장이 발부되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생존권과 표현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억압한 그 어느 정부도 무사하게 체제를 유지했던 적이 없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관심 표명은 세계 문명국 어디에서나 사람의 존귀함을 지키려는 당연한 행동이다. 정부는 늦었지만 강경책을 중단하고 사태 해결을 위한 중재에 나서야 한다. 나는 특히 작가 시인들에 대한 탄압을 노골화하고 있는 당국에 대하여 규탄하면서 분노로서 항거하겠다는 입장이다.

 

 

 

ㆍ사람세상 꿈꾸는 크레인의 성자여

7월30일 정오에 희망버스는 서울을 출발했다. 우리가 탔던 버스는 1호차로 진행 일꾼 세 사람을 빼고는 거의가 나이 든 사람들이었다. 백기완 선생은 물론이고 연세대의 오세철 교수라든가 서울대 김세균 교수 그리고 의사 양길승씨 등은 평소에도 아는 사람들이고, 그 밖에 교수들도 모두 알 만한 분들이어서 오랜만에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이 늙은이들 거의가 전선의 보병처럼 배낭에 간편한 작업복 차림이었다. 특히 백기완 선생과는 칠팔십년대에 문익환 목사와 더불어 늘 지척에서 한세월을 보냈는데 지난 십년간 어쩌다가 행사장에서 스친 것 말고는 따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만큼 행동반경이 서로 간에 다양해졌던 것이리라. 서로 늙기는 했지만 분위기는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이제는 각자 책이나 읽으며 무사태평한 만년을 보내리라 생각했건만 우리를 다시 거리로 내몰게 만든 이 시대를 생각했다. 버스 안에서 각자 소개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김진숙이 우리 모두를 청년으로 만들었음을 확인했다. 3차 희망버스의 제목은 ‘김진숙과 함께하는 여름휴가’였다.

3차 ‘희망버스’에 참가한 소설가 황석영씨가 30일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200여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85호 크레인을 가리키고 있다. | 김문석 기자

 
제일 먼저 출발했던 우리 버스가 휴가 행렬로 막히는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부산에 도착한 것은 오후 일곱 시가 다 되어서였다. 뒤이어 부산역에서 문화제를 하기 위하여 오고 있던 젊은이들의 버스가 중간 휴게소에서 이른바 ‘어버이연합’이라는 관변단체 사람들과 충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우리 버스는 가장 먼저 한진중공업이 있는 영도구 가까이 진입하기로 했다. 영도에 진입하려면 부산대교와 그 유명한 영도교를 건너야 하는데 버스는 부산대교 입구인 연안여객터미널 맞은편에서 경찰 저지선에 막혀버렸다. 몇 대의 버스가 속속 도착했는데, 실행 일꾼들은 우리가 일단 밀고 당기면서 주의를 끄는 동안 뒤처져 오고 있는 일부의 인원을 영도교로 우회하여 진입시킬 작정이었다. 시간도 끌고 일단 요기도 할 겸 바로 앞에 있는 중국식당에 들어가 앉았다. 자장면에 소주 한 잔씩 놓고 오랜만에 백기완 선생과 마주 앉았다.

“김진숙을 어떻게든 살리자고 벌인 일인데, 이 사람들이 진숙이를 꼭 죽이려고 하는 거 같아. 김진숙은 죽기 전에는 안내려올 거야. 그 사람이 죽으면 정말 이 사회는 희망이 없는데 그러면 나도 얼마 못살 거요.”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것을 보았다. 모두들 더 이상 말이 없었고 필자는 공연히 시선을 돌렸다. 밖에서는 우리가 있는 식당을 겹겹으로 둘러싼 전경들이 보였고 ‘관변단체’ 사람들이 법석대며 도착하고 있었다. 식당 벽에는 어디서나 보던 소박한 글씨가 걸려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욕심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건전한 생활상을 자손에 물려주세

저것은 열평 남짓 식당 주인의 작은 기원이기도 하고 이 나라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할 것이다. 일단 부산역 앞에도 인원이 도착했고 일부가 영도교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어오면서 부산 시민단체 사람들이 길안내를 위하여 배치되었다. 우리는 경찰 저지선에서 밀고 당기다가 간단한 약식 행사를 하고는 그때까지는 대중교통은 통행시키고 있어서 각자 흩어져서 삼삼오오 영도구로 건너가기로 결정했다.

뒷길로 돌아서 간신히 택시를 잡아 타고 겹겹으로 차단된 경찰 저지선을 우회하여 봉래동 로터리에 이르자, 앞에서부터 검문이 시작되었고 모든 차량은 한진중공업 쪽으로 가는 좌회전 길로 가지 못하고 직진하게 되어 있었다. 몇몇 일행과 차에서 내렸는데 마침 밀린 차들 가운데서 경향신문 보도차량이 눈에 띄었다. 나는 무조건 차도 가운데로 달려나가 불문곡직 그 차의 뒷문을 열고 올라탔다. 서로 휴대폰으로 애타게 찾고 있던 뒤여서 놀란 중에도 반가웠다. 보도차량은 임시 검문소를 지나 수천명의 전경이 겹겹으로 배치된 한진중공업의 텅 빈 도로를 향하여 내달렸다.

그리고 드디어 어둠 속에 삐죽삐죽한 탑처럼 솟아 있는 85호 크레인이 보이는 길 건너편에 도착했다. 그 중간쯤에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상자 같은 운전실 안에 그녀가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차창을 내리고 올려다보며 여기 한 사람이 찾아왔다고 목청껏 외치고 싶었다. 며칠 전에 어느 젊은 문인이 그녀는 ‘우리 시대의 성자’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 성자가 뭐 별다른 건가. 남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 그래서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을 우리는 성자라고 부른다. 최근 편지에서 그녀는 몇 가지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번은 또 다른 꿈이었습니다. 아마도 뻣뻣한 철구조물 위에서 이백여일을 보내다보니 부드러운 것들이 그리웠나 봅니다. 뙤약볕에 용광로처럼 달구어지는 운전실에서 시들시들해져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나 봅니다. 하루는 꿈에 85호 크레인에 파란 싹이 돋기 시작하더니 점차 무성해지더니 안전계단의 손잡이들이, 붐대의 철근들이 구불구불 나무줄기로 변하더니, 아, 몇천 년은 자랐을 법한 거대한 나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원한 나무그늘이 생기더니, 운전실이 예쁜 원두막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레시안, 김진숙의 편지에서)

그녀는 조직이나 이념을 말하지 않는다. 자기가 짊어진 가녀린 생애의 무게로 그 복잡한 층위로 ‘인간’을 이야기한다. 김진숙은 이미 대지모신처럼 쇳덩이가 되어버린 세상을 나무로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김진숙은 스스로 말하기를 조합원을 위한 연대라고 말한다. 해고철회라는 단순하고 명백한 요구를 하려고 허공에 올라갔던 것이다. 필자는 우리들의 연대가 너무도 늦었음을 미안해하고 자책하면서 경찰의 요구에 따라 그 자리를 떠났다. 저 어둠 속의 작은 여성 노동자가 어찌나 두려웠으면 이렇게도 엄청난 병력을 배치했을까.

시내의 곳곳마다 경찰 병력과 관변단체 회원들이 살벌한 표정으로 차단하고 있었고 통행이 막힌 영도 주민들이 곳곳에서 항의하거나 충돌 중이었다. 특히 무슨 대학생포럼이라는 젊은이들이 ‘버스시위반대’라고 쓴 머리띠를 일본식으로 두르고 관변단체 사람들과 함께 버스에 올라 검문하고 배낭을 뒤지고 어느 곳에서는 중년 사내들이 영도구 주민인가 확인한다면서 주민증을 검사하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을 구경하던 동네 주민들이 확 부수고 나가보까? 하기도 하며 어느 할머니는 내 등 뒤에서 “저기 걸어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 슬쩍 가뿌소” 하며 충고해 주기도 했다. 일행이었던 변호사는 통행이 막혀 실랑이를 하고 있던 시민을 거들며 법적 근거를 대라며 나서기도 했다. 누가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청학동 성당에 희망버스 인원들 일부가 들어갔고 일부는 우리가 섰던 경남조선 앞길에서 대치 중이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서면 롯데백화점 앞에서 문화제를 하고 있었지만 곳곳마다 경찰 병력과 관변단체 노인과 대학생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거리마다 이들을 비집고 조심스럽게 소속을 찾아 방황하는 희망버스의 젊은이들이 보였다. 필자는 하염없이 이런 풍경들을 가슴에 담으며 걷고 또 걸었다.

내일은 다시 폭풍이 온다는데 새벽 기차 속에서 차창 밖 어둠 속으로 흘러 지나가는 잠든 도시를 내다보았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던 구십년대 초반인가 ‘돈만 있으면 한국이 제일 살기 좋은 나라’라고 철없는 중산층 여자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다녔는데, 얼마 가지 않아 금융대란이 닥쳤고 세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내몰렸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에 행복지수 최하위라는 현실 앞에서 그야말로 행복에 대하여 다시 생각한다. 행복은 당연히 주관적인 것이다. 다만 그렇게 여겨질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은 소비의 또 다른 이데올로기다. 그 격차를 복지나 경제적 평등의 실천으로 메워 나가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돈 많은 자나, 돈 없는 자나, 다 함께 행복하지 못한 사회로 몰려가고 있다. 김진숙을 살리는 일은 우리 모두를 사람다운 행복의 나라로 가게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신이여, 어딘가 있다면 그들 모두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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