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포스팅

자기계발의 덫

by 아프로뒷태 2011. 8. 1.

▲ 자기계발의 덫…미키 맥기 | 모요사 (경향신문)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설파한 스티븐 코비가 파산했을 때 한 기자가 물었다. “성공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의 영감을 안겨줬는데 왜 파산하게 됐나.” 코비는 답했다. “내가 쓴 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읽는 것보다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로 들리겠지만, 자기계발서대로 한다고 누구나 인생의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는 건 뻔한 이치다. 사회학자이자 문화비평가가 쓴 이 책은 성공을 보장한다는 자기계발서가 오히려 자아를 괴롭힌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자기계발서다.

 

난무하는 자기계발서의 허와 실을 파헤치며 불안에 떠는 현대인의 암울한 초상을 그린다.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자기계발 문화의 뿌리를 더듬는다. 왜 자기계발이 유행이 됐나, 자기계발 운동이 개인과 사회 그리고 노동현장에 어떤 영향을 줬는가, 자기계발 역사에서 여성과 남성은 어떻게 생각이 달랐나 등을 설명한다.

책의 배경은 미국이지만 남의 얘기가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공통분모가 자리하고 있어서다. 신문, 서적, TV 토크쇼, 인터넷 등에서 자기계발 담론이 급증한 것은 20세기 초 광고의 증가와 궤를 같이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변신문화’가 근심을 가라앉히기는커녕 오히려 키우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다.

자기계발서들이 종교적 흐름과 연결돼 있다는 주장에 눈길이 간다. 성경 등의 단어만 살짝 바꿨을 뿐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한다. “상상력이 부족하고 다른 작품을 직접적으로 베껴 쓰는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새로운 어휘의 개발, 새롭고 더 진취적인 질문을 도출하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

특히 ‘시달리는 자아’ 개념이 돋보인다. 자기계발의 당위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지만 자기계발의 덫에 빠져 현대인의 자아가 혹사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노동자들은 악화되는 고용전망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항상 취업 가능한 수준을 유지하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으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저자는 자기계발서의 강박적 조언을 맹목적으로 따르다보니 기쁨과 행복은 실종되고 공허와 피로, 불안만이 엄습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그가 자기계발서를 ‘함정’이나 ‘덫’으로 묘사하는 이유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는 법. 게임, 정글, 전쟁터로 묘사되는 이 세상에서 자아는 부단히 전투태세를 갖춰야 한다. 이에 자기계발서는 고립적이고 탈정치화된 관점에 기반하고 있고 자율성이라는 미명하에 사회통제의 권력장치로 기능하고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기계발은 어떻게 가능한가. 책 내용을 자기 삶의 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어떠한 가치를 자기 삶의 목표로 삼을지를 스스로 결단할 것을 저자는 주문한다. ‘왜?’라는 질문을 던져 어떤 기준으로 세계와 자신을 돌아볼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라고 덧붙인다.

일반 자기계발서처럼 요약된 행동강령을 찾으려면 책을 덮는 게 낫다. 뚜렷한 결론은 없다. 다만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새로운 자아실현을 모색하는 데 길잡이가 될 것이라는 출판사 측 설명에는 토를 달 수 없겠다. 삶은 저마다 다르니 ‘당신 자신이 되라’는 메시지로도 들린다. 김상화 옮김.

 

 

 

 

 

"자기계발서 읽지 마라, 삶이 팍팍해질 뿐이니…"

자기계발의 덫

미키 맥기 지음|김상화 옮김|모요사 | 395쪽|

 

북스팀이 올 상반기 국내 4대 서점 판매량을 집계해보니 1~200위 베스트셀러 세 권 중 한 권이 자기계발서(30종·40만권)와 에세이(32종·99만권)였다. 자기계발서 인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책·CD·강연 등 미국 자기계발산업 연간 매출은 2005년 저자가 이 책을 쓸 때 이미 96억달러(약 10조원)에 달했고 작년엔 105억달러(11조500억원)를 넘어섰다.

저자 미키 맥기(McGee) 뉴욕 포댐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에 극히 비판적이다. 맥기는 1973~2003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가운데 자기계발서를 추려 세밀하게 분석했다. 결론은 한마디로 "자기계발서 나쁘다. 읽지 마라"다.

"세상살이는 잃거나 따거나 둘 중 하나다"

자기계발서가 아예 독자적인 장르가 된 건 1970년대다. 오일 쇼크와 함께 불황이 오자 "세상엔 승자와 패자 둘뿐"이라고 주장하는 책들이 우르르 떴다. 대표적인 작품이 로버트 링거가 쓴 '협박을 통한 승리'(1973)와 '자기만 생각하기'(1977)다. 링거가 보기에 세계는 "한정된 칩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포커판"이고, 타인은 다음 셋 중 어느 하나다. 대놓고 당신 칩을 노리는 인간, 은근히 노리는 인간, 별생각 없이 당신 칩을 따가는 인간.

1980~90년대 "마음만 먹으면 불타는 석탄 위도 걸을 수 있다"

1980~90년대 미국 기업은 숱하게 인력을 감축하고 임금을 깎았다. 국가 경제는 살아났지만 근로자 임금은 떨어졌다. 자기계발서는 각성제(마인드 파워 계열)·채찍(시간 관리 계열)·마취제(영성 계열) 역할을 했다.

마인드 파워 계열의 대표작은 앤서니 로빈스의 '무한능력'(1986)이다. 로빈스는 열광하는 청중 앞에서 뜨겁게 달군 석탄 위를 걸어가며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다"고 했다. 채찍 계열에는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1989)이 있다. 영성 계열은 삭티 거웨인의 '나는 날마다 좋아지고 있다'(1986)처럼 닦달에 지친 사람을 위로하는 책이다. 거웨인은 "당신이 우주를 경청하면 돈이 당신의 삶에 다가온다"고 했다. 애쓰지 않아도 인생이 마술적으로 잘 풀릴 거라는 주문이다.

이후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기계발서는 아예 인간을 기업으로 바꿔놓았다. 톰 피터스는 '당신이라는 브랜드'(1997)에서 "나이와 지위, 하는 일에 관계없이 '나'라는 주식회사의 CEO(CEO of Me Inc.)가 돼라"고 했다. 맥기의 귀에는 "아예 머릿속까지 회사가 돼라"는 얘기다.

맥기는 여성을 겨냥한 일련의 자기계발서도 싸늘하게 비판한다. 가령 헬렌 걸리 브라운은 '모든 것을 갖기'(1982)에서 노골적으로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를 장려했다. 감정은 감정이 아니라 '감정 투자'고, 몸은 몸이 아니라 '인적 자본'이라고 했다.

"당신은 사심 없이 베푸는 친구일지 모른다. 그러나 잠깐! 당신은 대가를 받아야 한다. 친구에 대한 손익계산서를 만들라. 반대로 일터에서는 '무보수 노동'을 마다하지 말라."

이런 책은 여권 신장이 아니라 여성 빈곤을 반영한다는 게 맥기의 시각이다. 1970년대 이후 일하는 여성이 늘어났지만 삶의 질은 떨어졌다. 남자보다 임금이 낮은데, 이혼율은 높아지고 육아 부담은 여전했다.

"아예 머릿속까지 회사가 돼라"

맥기가 보기에 자기계발서의 최대 악덕은 살기가 팍팍해지는 진짜 이유를 함구하는 것이다. 사회는 풍요로운데 개인은 고달프다. 원인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있지 개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참고로 교보문고에 따르면 고속 성장 시절엔 '배짱으로 삽시다'(집현전·1983)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김영사·1989)가 많이 팔렸다. IMF 이후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황금가지·2000년), '아침형 인간'(한스미디어·2003),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중앙북스·2009)가 잇달아 히트를 쳤다. 아등바등 살라는 책은 한풀 꺾인 뒤 '생각버리기 연습'(21세기북스·2010)이 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