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을 보고 듣다(문장배달)

줌파 라히리 「질병의 통역사」

by 아프로뒷태 2014. 11. 8.







「질병의 통역사」줌파 라히리
 
  “잠깐만요, 다스 부인, 왜 당신은 내게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까?”
  그녀가 마침내 이야기를 마치자 카파시 씨가 물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제발 나를 다스 부인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나는 스물여덟밖에 안 되었어요. 당신은 내 나이 또래의 딸이 있을 거예요.”
  “그렇지는 않아요.”
  그녀가 자신을 부모뻘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자 카파시 씨는 약간 당황했다. 그녀에 대한 미묘한 감정―백미러를 쳐다보며 자신의 얼굴을 살피던 그 느낌이 약간 사라졌다.
  “당신의 재능 때문에 말씀드리게 된 거예요.”
  그녀는 튀긴 쌀 봉지를 주둥이도 접지 않은 채 밀짚백 속으로 쑥 밀어넣었다.
  “무슨 말인지요?”
  카파시 씨가 말했다.
  “이해하지 못하시겠어요? 나는 8년 동안 이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친구에게도, 더욱이 라즈에게는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는 의심조차 하지 않아요. 그는 아직도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당신은 내게 할 말이 없으세요?”
  “무엇에 대해서 말입니까?”
  “내가 금방 말씀드린 것에 대해서 말이에요. 내 비밀, 나의 이 끔찍스러운 느낌에 대해서 말이에요. 나는 내 아이들을 쳐다보면 끔찍스러워요. 라즈는 더욱 끔찍스럽고요. 카파시 씨, 난 이 모든 것을 내버리고 싶은 끔찍스런 충동을 느껴요. 어떤 날은 창문을 활짝 열고 텔레비전, 아이들, 그 모든 것을 밖으로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이게 병적인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카파시 씨, 뭔가 할 말이 좀 없으세요? 난 그게 당신의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내 직업은 관광 안내를 하는 겁니다, 다스 부인.”
  “그거 말고요. 당신의 다른 직업, 통역사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언어의 장벽이 없어요. 그런데 무슨 통역이 필요합니까?”
  “내 말은 그 뜻이 아니에요. 나도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세요?”
  “무슨 뜻입니까?”

  

● 출처 :『축복받은 집』, 동아일보사 2000

 

● 작가 : 줌파 라히리- 1967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보스턴 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에 재학하면서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함. 소설『이름 뒤에 숨은 사람』등 세권의 소설이 있으며, 그녀의 처녀작인「축복받은 집」으로 펜/헤밍웨이 문학상과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퓰리처상을 수상함. 또한 <뉴요커>는 이 작품을 ‘올해의 소설’로 선정함.

 

● 낭독 : 정재진- 배우. 영화 <경축! 우리 사랑> <허밍> <웰컴 투 동막골> <효자동 이발사> 등에 출연.
정은경- 배우. 연극 <내동생의 머리를 누가 깎았나> <백무동에서> <길-그 여자를 만나다> 등에 출연.
정희정- 배우. 연극 <철로> <쥐> <관객모독> 등에 출연.

 



지금 다스 부인은 여행길에 만난 가이드에게 자기 아들은 남편 친구의 아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어요. 지난 8년 동안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비밀이지요. 그런데 왜 다스 부인은 그런 비밀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일까요? 그게 무슨 뜻일까요? 멀리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좋다는 속담이 있어요. 이건 또 무슨 뜻일까요? 먼 곳의 이야기는 거짓말처럼 들린다는 말일 수도, 먼 곳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는 여행지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요. 다시 돌아오면 우리는 몇 개의 가면을 쓰게 되겠죠. 스스로 자신의 통역사가 되겠죠. 그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다만 때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마음에 대해서 통역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게 안 되니까, 우리는 그렇게 멀리까지 여행을 떠나는 것이겠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