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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향기

편혜영, 아오이가든

by 아프로뒷태 2012. 2. 26.

 

 

 

 

편혜영,『아오이가든』,문학과 지성사, 2005.

 

 

시커먼 개구리들이 비에 섞여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개구리들은 대부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스팔트에 떨어져 머리가 깨지거나 지나가던 소독차에 깔리기도 했다. 그러면 아스팔트는 붉은 꽃을 피웠다. 어두운 거리에 그들이 흘린 피와 찢어진 살갗이 불빛처럼 빛났다. 대낮인데도 도시는 불에 그슬린 듯 어두웠다. 시 당국은 가스 공급량을 줄였다. 그러자 석탄 때는 연기가 대기 중으로 쏟아져 구름을 검게 물들였다. 오래된 학교나 보건소 외에도 구식 난로가 남아 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인적은 끊겼지만 거리는 한산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창밖으로 내던진 쓰레기가 거리를 채웠다. 도시 전체를 내다버린 것처럼 많은 양이었다. 아오이가든 주변 거리는 거대한 쓰레기 하치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동물의 배설물과 사체도 쓰레기 더미에 섞여 거리에 남았다. 거리에는 집에서 쫓겨난 동물들이 많았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떼를 지어서, 혹은 혼자서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배회했다. 쓰레기를 뒤져 먹을 것을 찾거나 다른 놈의 모가지를 물어 죽이거나 교접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모가지에 피를 흘리면서도 살아남은 것들은 차에 치었다. 신호 체계가 쓸모없어졌기 때문에 차들은 아오이가든 주변 거리를 마구 질주했다.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차들이 소독약을 뿌리고 가기도 했다. 흰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연기가 시커먼 도시를 잠깐 멈추었다. 연기가 사라질 때면 독한 성분 때문에 몸에 두드러기가 피었다. 아주 드물게 사람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들은 웅크리거나 누워 있었기 때문에 주검이거나 주검에 가깝게 느껴졌다. 멀리서 보면 쓰레기를 담은 자루 같았다.

그 모든 것을 제치고 정작 거리를 차지한 것은 냄새였다. 도시 전체가 부식되면서 냄새를 풍겼다. 편두통을 일으키며 혀가 아둔해지고, 코를 맹맹하게 만들며 끊임없이 구역질을 퍼 올리는 냄새였다. 냄새는 도시를 구성하는 유기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냄새를 풍기는 것들의 한가운데에 아오이가든이 있었다. 최초에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 것이 거리였는지 아오이가든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갈라진 벽면이나 습한 마룻바닥은 말할 것도 없고 수돗물이나 손을 씨는 비누에서도 냄새가 풍겼다. 비가 자주 왔지만 냄새는 씻겨가지 않았다. 오히려 하수도가 역류하면서 분뇨를 거리로 토해냈다. 하수구가 제 역할을 못하게 된 것도 병이 돌면서부터였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일곱 개의 하수도는 끊어졌고, 부식된 파이프는 교체되지 않았다.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것은 나뿐이었다. 아오이가든의 모든 창은 먹구름으로 가린 것처럼 컴컴했다. 어두운 창문들 중의 몇 곳에서는 담배를 피워 문 것처럼 석탄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창문을 닫으려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정통으로 얼굴에 부딪혔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이어 다른 한 마리는 머리통을 내리치고 베란다에 떨어졌다. 그 개구리는 재빨리 소파 밑으로 몸을 숨겼다. 아스팔트에 떨어진 것은 몸이 찢어지면서 피를 토했다. 그녀가 엉덩이 근처에 묻혀놓은 얼룩처럼 적은 양의 피였다. 폭우가 쏟아지는 것치고 핏자국은 더디게 씻겨 내려갔다.

창문을 닫으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오랜만에 듣는 소리였기 때문에 그 소리에 나는 제법 놀랐다. 놀란 나머지 몸이 비틀렸다. 그 바람에 의자가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마침 그쪽에는 빗물이 들이쳐 고여 있었기 때문에 기운 의자는 버텨내지 못하고 그만 넘어져버렸다. 나는 베란다에 나자빠졌다. 어디선가 개구리가 울었다. 고양이가 다가와 얼굴을 핥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혀바닥이었다. 그때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그녀가 방에서 나왔다. 초인종이 울려서가 아니었다. 의자와 함께 내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서였다. 그녀는 의자 아래 깔린 가는 다리를 끄집어냈다. 그다음 팔뚝에 힘을 주어 나를 안아 올렸다. 까맣게 죽은 팔뚝에 푸른 힘줄이 불거졌다. 무거운지 끙 하는 신음 소리를 내뱉고도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곡기를 아무리 줄여도 부어오른 상체는 잘 빠지지 않았다. 둥글고 커다란 상체에 실처럼 가느다란 다리가 그녀의 팔뚝 아래서 흔들렸다.

이번에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초인종이 울렸다. 먼 곳에서 울리는 것처럼 아득한 소리였다. 환청일지도 몰랐다. 아오이가든에는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를 만한 사람이 남지 않았다. 역병이 떠돈 이후로 많은 주민들이 아오이가든을 떠났다. 다른 도시에 사는, 의탁할 만한 친지를 찾지 못한 주민들은 별수 없이 남았다. 그들은 자기 집에만 머물렀다. 떨어져 사는 부모의 집이나 형제자매의 집도 방문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이 있더라도 가급적 상점에 가지 않았다. 아오이가든 내의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다. 최소한의 쌀을 가지고 오래 버티는 것만이 병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녀가 발소리를 죽여 현관으로 다가갔다. 바깥을 확인한 그녀의 몸이 조금 떨렸다. 열린 문으로 나타난 것은 누이였다. 더러운 얼굴에서 빗물과 섞인 땟물이 흘렀다. 길게 내려 기른 검은 머리에서도 빗물이 듣고 있었다. 열꽃이 핀 얼굴이 붉었다. 집을 나간 지 팔 개월 만이었다. 우리는 누이가 다른 도시에 사는 사내를 찾아 사라졌다고 믿었다.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역병이 도는 거리로 나설 이유가 없었다. 누이는 인접한 도시에 사는 한 사내에게 연정 어린 편지를 몇 개월째 받고 있었다. 우리를 다른 도시로 데려갈 단 하나의 인물이 그 사내였다.

누이는 지쳤다는 듯이 문에 기대섰다. 벌어진 누이의 가랑이틈으로 고양이가 빠져나갔다. 집에서 유일하게 바깥출입을 하는 동물이었다. 고양이는 간밤 내내 등을 구부려 긴 혀바닥으로 생식기를 핥아댔다. 발정기가 되면 있는 일이었다. 며칠 뒤에는 생살이 곯는 것 같은 거리의 냄새를 묻히고 돌아올 것이다. 그러고 난 두어 달 후에는 새끼를 낳았다. 그럴 때면 집 안에는 달짝지근하고도 비릿한, 생소한 날것의 냄새가 풍겼다. 그녀는 뱃속에서 터져 나온 고양이 새끼들을 베란다 바깥으로 던졌다. 갓 태어난 새끼들은 시커먼 쓰레기 더미에 묻혀 자취를 감췄다.

복도에서 이웃집 사내가 팔짱을 낀 채 사나운 눈초리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나와 본 모양이었다. 그도 우리처럼 다른 도시의 친지가 없을 터였다. 아오이가든에 남은 집들은 죄다 그런 축들이었다. 고양이는 이중으로 마스크를 두른 사내를 지나쳐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사내는 고양이가 다가오자 팔짱을 낀 그대로 벽 쪽에 몸을 붙였다가 뗐다. 경직된 것치고는 빠른 동작이었다. 그녀는 더럽고 축축한 자루처럼 보이는 누이를 집 안으로 끌어당겼다. 사내는 여전히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위생청의 관리처럼 딱딱한 표정도 풀지 않았다. 그녀는 사내를 향해 가급적 웃음을 보내려고 했다. 아무 일도 아이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음과 달리 주름진 얼굴에 찢어진 눈매를 한 그녀의 미소는 조롱처럼 느껴졌다. 문을 닫았지만 사내의 매서운 눈초리만은 그대로 남았다. 사내는 현관과 복도, 누이의 손이 닿았을지도 모르는 계단의 난간을 향해 닥치는 대로 소독약을 뿌릴 것이다. 어쩌면 열꽃이 핀 고열 환자가 발생했다고 신고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수상한 방문객에 대해 떠벌릴 것이다. 굳이 사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주민들은 이미 누이의 방문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누이가 풍기는 냄새는 아오이가든의 것보다 훨씬 지독했다. 그것은 거리의 냄새와 유사한, 역겨우면서도 친숙한 것이었다.

누이를 마루로 들여놓은 그녀는 제일 먼저 알코올로 손을 소독했다. 그다음에는 소독을 하느라 잠시 벗어뒀던 마스크를 찾아 썼다. 엎드려 있는 내게도 한 겹 더 씌웠다. 그러고는 그때까지 열려 있던 창들을 신경질적으로 닫았다. 문틈으로 들이친 비가 바닥에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나는 슬금슬금 기어 누이 곁으로 갔다. 냄새만으로도 누이가 오랫동안 거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누이의 목에서 빨간 스카프를 벗겨냈다. 색을 잃을 정도로 때에 전 그것에서는 비린내가 풍겼다. 물에 젖은 털외투는 잘 벗겨지지 않았다. 가까스로 외투에서 누이의 몸을 빼내는 데 성공한 그녀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외투로 가려져 있던 누이의 둥근 배가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누이가 보낸 지난 팔 개월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문서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동안의 일에 대해서라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듯이 단호해 보였다. 누이가 숨을 쉴 때면 조금 더 부풀기는 했지만 쉽게 꺼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고 딱딱해 보이기도 했다. 그때 개구리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제야 집 안에 숨어 있는 개구리 생각이 났다. 소파 밑이나 테이블 아래, 화분 뒤를 목발로 쑤셨다. 소리는 가깝게 들려왔다가 이내 아득하게 멀어졌다. 개구리가 그녀 얼굴로 뛰어오르기라도 하는 날에는 아마 바깥으로 내쫓길지도 모른다.

바깥은 무섭고 두려운 역병의 기운이 감도는 곳이었다. 내가 그것을 두려워하는 만큼 그녀는 앞집 사내의 차가운 눈초리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쉴 새 없이 마루를 서성거리며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작은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분명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개 누이에 관한 것이었다. 누이가 숲 속에서 사납고 고약한 다람쥐가 올라탄 나뭇가지에 걸려 옷이 찢어졌거나, 들쥐를 잡아먹은 고양이에게 입을 할퀴었거나, 동면중인 뱀을 잡아 가랑이에 집어넣었거나. 올챙이가 든 줄도 모르고 샘물을 마셔 구역질을 했거나, 죽은 쥐의 껍질을 벗겨 먹이로 삼지는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혼잣말을 중얼거릴 때마다 그녀의 검은 얼굴에 충열된 붉은 눈이 도드라졌다. 붉은 눈은 누이의 몸을 닦느라 치켜든 그녀의 엉덩이에도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얀 치마에 묻은 눈이 덩달아 서성거렸다. 그녀가 앉았다 일어난 이불보나 방석 위에도 검붉은 눈알이 남았다. 얼룩들은 그녀의 몸 전체에서 가장 생생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얼룩들이 아니면 그녀는 까만 살갛 때문에 미라처럼 보일 터였다. 누이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나는 개구리가 튀어나오도록 이곳저곳 목발을 두드렸다. 그 소리를 견디다 못한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이가 돌아옴으로써 도시를 떠나는 일은 요원해졌다. 우리는 여전히 아오이가든에 남게 될 것이다. 별안간 나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개구리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지독한 냄새는 여전히 남았지만 누이의 열은 차츰 내렸다. 따뜻한 이불을 덮고, 뜨거운 물에 몸을 씻고, 고기를 갈아 넣은 죽을 먹어서가 아니었다. 열을 내리게 해준 것은 시간이었다. 그녀도 나도 열이 끓는 누이의 곁에서 위생청 직원이 들이닥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끔 돌이 날아와 유리창이 깨졌다. 누군가 둔탁한 쇠망치를 내리쳐 현관문을 우그러뜨리기도 했다. 그리고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는 내내 그녀는 찡그린 얼굴로 우리집에는 늙은 여자 하나와 덜 자란 사내아이가 살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통화 시간은 꽤 길었지만 그녀가 말한 것은 그게 전부였다. 그녀는 그 말을 쉬지 않고 열네 번이나 반복했다.

집을 나갔던 고양이가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이번만큼은 고양이를 집 안에 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고양이를 살살 달래 안은 뒤 베란다로 가서 바깥으로 던져버렸다. 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눈치를 챘더라도 고양이를 그녀 품에서 빼앗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몸뚱이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혹은 내키지는 않지만 그녀의 품에 안기지 않고서는 기어 다니는 것밖에 할 수가 없다. 태어날 태부터 그랬다는, 뼈다귀인 채로 남아 있는 두 다리 때문이었다.

누이가 내 허약한 다리가 출생 직후의 상처 때문이라고 했다. 누이는 그녀가 나를 낳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상적인 장면이어서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널 서서 낳았어. 목을 빳빳이 들고 얼굴을 하늘로 치켜들어서 엄마가 비명을 지르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척추는 곧게 세웠지. 가끔 허리를 구부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뱃속에 든 네가 몸을 트는 게 다 보였어. 엄마는 계속 바짝 서있을 수밖에 없었어. 가랑이를 벌리고 빳빳이 서 있는 건 좀 힘들어 보였어. 그렇게 조금만 더 서 있으면 죽을 것 같은데, 네가 미끄러져 나왔어.

누이가 말한 것은 언젠가 나도 본 적이 있는, 빳빳이 서 있는 기린의 엉덩이에서 피 묻은 양수에 둘러싸인 새끼가 미끄러져 나오는 장면이었다. 그것은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태어난 기린의 새끼는 버티고 서려다가 넘어졌다. 이윽고 부드러운 혀바닥으로 어미가 양수와 태반 찌꺼기를 핥아주자 오뚝 일어섰다. 막 태어난 새끼의 눈동자는 빨갛게 불타고 있었다.

그건 기린이 새끼를 낳는 거 아니었어?

나는 다소 실망하여 누이에게 말했다.

분명해. 나는 네가 태어나는 걸 똑똑히 봤어.

굳은 목소리로 누이가 대답했다. 늙은 어미가 다리를 벌리고 서 있고, 그 어미의 사랑이 사이에서 머리통이 서서히 빠져나오는 갓난아기인 나를 상상해보았다. 찢어지는 어미의 가랑이를 눈으로 보면서. 고통으로 일그러진 어미의 눈동자와 시선을 맞추며, 그 가랑이에서 흘러나오는 피에 갓 뜬 눈을 흠뻑 적시는 모습을.

넌 다리부터 나왔어. 보통은 머리통이 먼저 빠져나온다는데 말이야. 넌 다리로 몸을 받치고 서려고 했어. 갓 태어난 네 다리는 손가락처럼 가늘었거든. 하긴 네 다리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다리로 머리통의 무게와 널 낳고 있는 엄마까지 받치고 있었으니 오죽 힘들었겠니?

풀처럼 얇은 내 다리가 무거운 머리를 받치고 피로 물든 어미의 붉은 가랑이 사이에 서 있던 것이 정말 기억나는 것도 같았다. 그것은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가 하면 아득한 시절의 이야기답게 희미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고양이는 죽지 않았다. 잠시 후 멀쩡해져서 나타났다. 아파트 팔층은 고양이의 부드러운 척추에 해를 끼칠 만한 높이가 아니었거나, 운 좋게 몸을 견딜 만한 쓰레기 더미에 빠졌을 것이다. 그녀는 연신 발톱으로 긁어대는 고양이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고양이는 복도에서 밤새 울었다. 그것은 가임기의 산모와 갓난아이가 거주한 지 오래된 아오이가든에서는 참기 힘든 소리였다. 나는 고양이를 데려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직 열이 다 내리지 않은 누이는 혼곤한 기운 속에서 자주 잠이 깼다. 그녀는 아예 잠들지 못했다. 이웃들이 무슨 짓을 벌인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열에 들뜬 사람이 내지르는 숨소리도 알아차렸다. 할 수 없이 고양이를 집 안으로 들였다.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가 그녀를 피해 달아나다가 식탁을 넘으면서 유리잔을 떨어뜨렸다. 채 치워지지 않은 유리 조각 중의 하나가 내 팔뚝에 박혔다. 피는 나지 않았는데도, 팔뚝은 금세 건장한 사내의 허벅지처럼 부풀어 올랐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전화를 받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미흔세 번 벨이 울리고서야 전화가 끊겼다. 조금 뒤에 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후로는 전화 코드를 아예 뽑아버렸지만 그때조차도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누이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깨어날 때면 꿈 얘기를 해주었다. 수화기 속에서 붉은 뱀이 기어 나와 모가지를 휘감고 허벅지를 무는 꿈이었다. 주민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우리를 바닥에 내던지는 꿈도 꾸었다고 했다. 우리는 어디로도 갈 곳이 없었다. 아오이가든에 머무르는 게 최선의 예방이었다. 삼십 년도 넘는 시간을 견디느라 갈라진 벽이나 내려앉은 천장 따위는 불평할 거리가 아니었다. 돌멩이가 날아와 머리통에 박힌다거나, 주민들이 우그러진 현관문 사이로 얼굴에 대고 소독약을 뿌린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오이가든 바깥으로 나가는 것에 비하면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걸 밤새 울어댄 고양이 탓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커다란 찜통 가득 펄펄 물을 끓였다. 거기에 칼과 가위를 담가 소독했다. 어쨌거나 고양이를 함부로 죽일 수는 없었다. 고양이는 귀신도 볼 수 있는 동물이었다. 어둠 속에서 눈이 푸르게 빛나고 뭔가를 잡으려는 듯이 허공에 대고 헛손질을 해대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또 목숨이 일곱 개나 된다고도 했다. 죽여도 소용없을 만한 숫자였다. 그녀가 택한 것은 고양이 자궁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함부로 집을 드나드는 고양이가 새끼라도 배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처녀 시절 부인과에서 간호사 노릇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자궁이나 난소, 난관 따위를 알아보는 일이 신장이나 창자, 간 따위를 분간하는 것보다 쉬웠을 테니까.

준비를 마친 그녀는 누이를 불렀다. 준비라고 해봐야 별게 없었다. 여러 개를 겹쳐 수건을 깔아놓은 간이 테이블 위에 날이 얕은 과도와 부엌용 가위가 가각 한 개씩, 문방구에서 사온 20시시 용량의 주사기, 출처를 알 수 없는 마취제 한 병, 검은 실이 감긴 두꺼운 바늘, 개복한 곳을 벌려줄 죔쇠, 꺼낸 내장을 올려놓을 작은 접시가 전부였다.

수술은 고양이에게 마취제를 주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사지를 눌린 고양이는 꼬리를 배 밑으로 접고 몸을 떨었다. 고양이는 추락 사건 이후로 계속 그녀를 피해왔기 때문에 마취 주사도 할 수 없이 누이가 놔야 했다. 누이는 한 번도 주사를 놔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바늘이 들어갈 만한 살을 골라 적당히 찔러 넣으라고 충고했다. 누이는 그녀 말대로 했다. 마취제를 맞은 고양이는 곧 시름시름 눈을 감았다. 정량이 부족했는지 마취가 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양이는 눈을 감았다가 뜨고, 털을 곤두세우고 꼬리 끝을 흔들며 그르릉 소리를 냈다가 약 기운이 돌아 다시 드러눕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그동안 그녀는 담배를 다섯 개비나 피웠고, 누이는 뜨겁게 끓인 쌀죽은 알맞게 식혀 먹었다. 가끔씩 십자형으로 벌어져 위로 치켜든 고양이의 앞다리가 바르르 떨렸다.

칼이 지나갈 때마다 고양이는 몸을 단단하게 오므렸다. 몇 번인가 칼날이 살을 베었다. 숨처럼 얇은 피가 비쳤다. 피 묻은 털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잘린 털은 뭉치를 이루어 방안을 떠다녔다. 엎드려 있는 내 콧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했다. 등허리에 떨어져 몸을 간질이는 것도 있었다. 나는 방 안을 기어 다니며 흐트러져 있는 털을 주워 모았다. 그것을 뭉치로 만들어 얼굴에 대보았다. 고양이를 품에 안은 것처럼 따뜻했다. 털을 다 깎아내자 갓 태어난 생쥐처럼 분홍색을 띤 가슴과 배가 나타났다. 까슬거리는 내 머리통과 달리 그 배는 솜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이제 그녀는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낼 터였다. 고양이이의 자궁과 난소를 정확히 찾아낼지는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개복에 실패할지도 몰랐다. 고양이는 칼이 심장에 깊이 박히거나, 장을 잘려 배설물을 쏟아내거나, 독소가 체내에 쌓여 죽을 지도 모른다. 어떤 내장이 상하든 고양이는 피를 쏟으며 죽을 거였다. 나는 뭉친 고양이의 털을 조금씩 입에 넣어 침에 적셔 삼켰다.

생각과 달리 그녀는 마취된 고양이의 배를 잘도 갈랐다. 붉은 피로 둘러싸인 내장들이 여전히 벌떡벌떡 뛰고 있었다. 고양이는 사람에게 역병을 옮겼다는 혐의를 받는 동물 중 하나였다. 무리도 아니었다. 당국은 최초에 아오이가든에서 병이 퍼지기 시작하던 때에 병원체에 대해서 파악조차 못했다. 병원체에 대한 정보는 다른 아파트로 감염 환자가 번져가고 나서야 외국의 학회에서 보고되었다. 이를 통해 최초의 숙주였던 미생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의 감염 경로가 밝혀졌다. 그중에는 실로 고양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방법이나 치료법에 대해서는 풍문만 떠돌았다.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은 꿈도 못 꿨다. 의사들은 환자와 접촉하려 들지 않았다.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 중 일부가 감염된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두 겹으로 마스크를 썼다. 손에는 일회용 위생 장갑이나 수술용 고무장갑을 꼈다. 어쨌거나 병에 감염되지 않은 게 상책이었다. 몇 년이 지나야, 어쩌면 몇 백 년 후에야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될 것이다. 당국은 병의 치사율이 그렇게 높지 않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감염률은 높고 치료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공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병에 걸리면 죽는 일을 기다리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것밖에는 할 게 없었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나을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공기 중에 떠도는 역병의 기운과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맞서느라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살고 있었다.

누이는 종종 거리에 관해 얘기했다. 텅 빈 거리에는 역병에 걸린 사람들과 거의 죽어가는 사람들이 간혹 떠돌았다.

그들은 다 역병에 걸린 거야?

알 수 없어. 얼어 죽거나 강도의 칼에 찔려 죽거나, 이유도 모르고 죽는 사람이 많았어. 그래도 사람들은 거리에 있으면 다 역병에 걸렸거나 미쳤다고 생각해.

누이는 자기가 왜 거리로 나갔는지 말하지 않았다. 다만 처음에는 다른 도시로 떠날 생각이었던 듯했다. 그리로 갈 수 없으니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도시에 남은 사람들 모두가 어쩌면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오이가든이 안전할 리는 없었다. 아오이가든은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역병 환자가 발생한 아파트 단지였다. 그래도 우리는 여기밖에 있을 곳이 없었다. 가족들 중 누구와도 손을 잡지 않고, 누구와도 마스크를 벗고 수다 떨지 않으며, 한 잔의 컵으로 물을 나누어 마시지 않는다면, 같은 베개를 베거나, 꿈길에서라도 만나 짦은 시간 얘기를 건네지 않는다면 아오이가든에서도 버틸 수 있을 터였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자니 처음에는 다소 불편했다. 조금 지나자 마스크를 쓰고도 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한쪽을 들어 밥과 반찬을 얹은 수저를 입에 쑤셔 넣은 다음, 다시 마스크를 쓰고 입을 오물거렸다. 귀찮으면 밥을 적게 먹는 수밖에 없었다. 물을 마실 때면 종종 마스크가 젖었다. 젖은 마스크에서는 입 냄새와 땀 냄새, 음식 냄새가 섞인 고약한 냄새가 났다.

아오이가든에서 지내는 것이 힘든 일만은 아니었다. 아오이가든에서 태어나 계속 살아온 나로서는 바깥에 나간다는 게 더 벅찬 일이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곰팡이처럼 아오이가든 벽의 일부가 되어 늙어가고 있었다. 가끔 현관문을 열고 주저앉아 복도를 내다보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외출이었다. 복도는 완강하게 텅 비어있었고 어두웠으며, 지옥으로 연결된 통로인 것처럼 좁았다. 외출은 짧았다. 열린 문을 통해 잠식해 들어오는 냄새가 구토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바깥에는 온갖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그중에는 역병을 옮기는 소녀가 있다는 것도 있었다. 사람들에 의하면 소녀는 목에 빨간 스카프를 둘렀다고 했다. 소녀가 누구인지도 아무도 몰랐다. 애초에 소녀를 본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소녀의 차림새에 대해서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정작 소녀를 직접 보았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소녀가 구획을 나뉜 마을의 흙담을 따라, 창의 검은 커튼을 따라 빨간 스카프를 흔들며 다닌다고 했다. 그러기만 하면 그 집의 식구들이 모두 역병에 감염된다는 거였다. 소녀의 옷차림이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이 되었다. 여학생들은 누구나 목에 빨간 스카프를 둘렀다. 빨간색이 도드라지도록 온통 흰 옷을 입기도 했다. 누이도 그렇게 옷을 입었다. 빨간 스카프는 누이 목에 접힌 주름만큼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병이 돌던 초기에 사람들은 교회와 절에 모였다. 그런 곳에는 감염되지 않은 사람도 왔고, 자신이 감염된 것을 아는 사람도 왔고, 미처 감염된 줄 모르는 사람도 왔다. 어느 교회에서는 전염을 두려워한 나머지 목사가 출석하지 않아 신자들이 허탕을 치기도 했다. 교회와 절은 곧 사람들이 모이는 집회를 금지했다. 의사들도 속수무책이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들은 몸안의 피를 뽑아내는 사혈법을 썼다. 병이 돌기 전에는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방법이었다. 환자들은 피를 뽑으면 핏속의 나쁜 것이 함께 빠져나가 치유될 수 있다고 믿었다. 차츰 의사들도 그렇게 믿기 시작했다. 백약이 소용없자 수은을 함유한 약이 암암리에 처방되었다. 이 약을 먹고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약값은 너무 비쌌다. 약을 사기 위한 범죄가 자주 발생했다. 전문가가 이런 약은 역병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해도 허사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비싼 값을 치르고 약을 샀다. 시간이 지나도 역병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수은이 체내에 쌓여 얼굴이 까맣게 변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어쨌든 역병에는 백약이 무효라는 항간의 속설이 증명된 셈이었다.

마침내 복강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거길 잘라, 하고 지시했고, 누이는 제기랄, 그러면 옷에 피가 튀잖아, 하고 대꾸했다. 나는 뭉친 고양이털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누이는 복강 안으로 손을 넣어 쓸개며 위장, 신장 따위를 만져댔다. 부러운 나머지 피로 붉게 물든 누이의 장갑을 쳐다보았다. 복강에 손을 넣어, 그리하여 따뜻한 혈관에 둘러싸인 내장을 보게 되면 나라도 그것들을 만져보고 싶을 터였다. 그녀는 누이에게 죔쇠나 똑바로 들고 있으라고 호통을 쳤다. 죔쇠를 들어 올리기 위해 팔을 올리는 순간 누이의 장갑에 맺혀 잇던 핏방울이 팔을 따라 겨드랑이까지 흘러내렸다. 눈부시도록 붉고 맑은 피였다.

고양이의 배를 봉합하는 것으로 수술은 끝났다. 떼어낸 자궁은 금세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다. 피로 뭉쳐진 덩어리만 보아서는 그것이 자궁인지 심장인지, 허파인지 십이지장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고작해야 한 줌의 핏덩어리에 불과했다. 여느 내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끓인 물을 식혔다가 자궁을 떼어낸 자리를 씻어주었다. 시간이 흐르면 내장들은 저절로 이동해 한때 생식 기간이 있었던 공간을 채워줄 것이다. 누이는 널브러진 고양이를 힐끗 쳐다보고서 피 묻은 장갑을 벗었다. 달라고 손을 내밀었는데도 그것을 베란다 바깥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소독약을 거즈에 적셔 천천히 손을 닦았다. 그녀는 무엇보다 봉합에 특기가 있었다. 그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봉합이 엉망이었다면 고양이를 들어 올리는 순간 꿰맨 자국 사이로 시뻘건 핏덩이에 둘둘 쌓인 내장이 전부 쏟아졌을지도 모른다. 개복과 봉합에 있어서만큼은 어쨌든 성공적인 수술이었다.

수술이 끝나자 그녀는 곧 묘실처럼 어둡고 좁은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방은 통풍이 잘되지 않아 고기 썩는 냄새가 났다. 다시 월경을 시작한 이후 부쩍 기운을 잃은 그녀는 틈만 나면 까맣게 된 몸을 누였다. 누이도 기력이 다했다는 듯이 마루에 드러누웠다. 고양이는 내장 전부를 들어낸 것처럼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기진한 것 같았다. 칼자국이 난 고양이의 배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때마다 목울대가 쿨렁거렸고 몸이 조금씩 흔드렸다.

잠시 후 방에서 나온 그녀는 베란다 너머로 쓰레기를 던졌다. 덩어리로 뭉쳐 베란다로 날아가던 그것들 중의 일부가 풀썩 마루에 떨어졌다. 검은색과 핏빛이 뒤섞인데다가 불쾌한 냄새까지 풍기는 세탁물이었다. 그녀는 이미 방으로 돌아간 후였다. 나는 고양이가 흘린 다량의 검붉은 피를 떠올렸다. 그것은 연하면서도 깊고, 화려하면서도 더러운 색이었다. 나는 떨어진 것을 주워 들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러자마자 그것의 정체를 알아챘다. 그것은 까맣게 죽은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여러 겹으로 접혀 있던 거였다. 거기서는 거울을 흐리고 하고, 칼날을 무디게 하고, 유리 접시에 금을 내고, 점토 아래의 지렁이를 불러 모으고, 다락의 쥐들을 미쳐 날뛰게 한다는 냄새가 났다. 이미 폐경이 된 그녀가 다시 피를 흘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기어코 누이를 깨워, 주운 것을 보여주었다. 누이는 늙어 죽기전에 다시 월경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늙어 죽기전?

그녀의 나이를 종잡을 수 없어 되물었다. 늙어 죽기 전의 나이란 도대체 몇 살 정도일까? 늙어 죽기에 적당한 때라도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것은 그녀의 나이뿐이 아니었다. 누이의 나이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내 나이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열일곱 소년이었다가, 스물세 살의 어른이 되기도 했다가, 때로는 열두 살 꼬마가 되었다. 나이가 몇 살이 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기분에 달렸다. 그녀는 어느 날 나를 낳은 것이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난 일이라고 했다가, 어느 날은 고작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것이 어미를 때린다고 욕을 했다. 태어난 해를 내가 기억하고 있을 리도 없었다.

언젠가 그녀에게 내 다리가 이렇게 된 것은 역병에 걸려서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내가 태어난 것은 역병이 돌기 이전의 어느 때라고 했다. 나는 역병이 돌기 이전의 시간은 잘 기억하지 못했다. 역병이 처음 돈 것이 언제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세상은 역병이 맹령할 때와 잠잠할 때의 두 모습으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그 세계의 어디쯤에서 태어났으며, 이미 아오이가든에서 살고 있던 그녀를 만났다. 몽정이 시작된 것은 도시에 역병이 돈 이후였다. 오줌 대신 고름 같은 게 스며 나오는 걸 보고 역병에 걸렸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것은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 그후 벌써 여러 해가, 어쩌면 고작 몇 달이 흘렸는지도 모른다. 그걸 보면 나는 이미 사춘기를 통과한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라지 못한 다리를 보면 열두 살도 안 된 소년 같기도 했다. 그녀가 누이와 내 나이는 고사하고 자신의 나이를 기억하고 있을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 죽기 전 말이야. 죽기 전에는 누구나 다 피를 흘려, 어쩌면 자궁에 병이 든 건지도 몰라. 그러면 시도 때도 없이 피를 흘리다 죽게 된다더라.

누이가 돌아누우며 말했다.

엄마가 몇 살인데 벌써 죽을 때가 됐어?

죽을 때가 된 나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니?

누이는 쏘아붙이고 곧 입을 다물어버렸다. 자기도 잘 모르는 얘기가 나와서였다. 누이는 나를 서른일곱 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기껏해야 나보다 서너 달 먼저 태어났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누이의 얼굴은 열다섯 살도 채 되어 보이지 않았다. 누이와 나 중에서 누가 손위인지도 구별할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 반말을 했고, 그녀도 우리더러 서로에게 말을 함부로 한다고 나무라지 않았다.

피와 냉과 오줌이 섞인 냄새가 손에 배었다. 누이의 몸에서도 그 냄새가 풍겼다. 그것은 역병이 도는, 버려진 거리에서 나는 것보다 지독했다. 나는 그 냄새가 끊임없이 구역질을 일으켜 우리를 마르게 하고, 피부를 까맣게 만들며 끝내는 내장을 썩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 불을 피워 피 묻은 수건을 그슬렸다. 그래도 냄새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누이는 힘을 주어 내게서 그것을 빼앗았다. 그러고는 검고 곱슬곱슬한 털로 뒤덮힌 시커먼 가랑이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가랑이가 찢어질 듯 아프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정말로 누이의 가랑이는 붉은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찢어져 있었다.

그러지 마. 그 피가 닿으면 몸이 덜덜 떨리고 눈알이 튀어나올거야. 내장이 터져서 죽을지도 몰라.

나는 누이에게 애원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누이가 쥐고 있는 것을 빼앗아 불을 질렀다. 잠시라도 그것을 놓았다가는 누이가 다시 채갈까봐 재가 되어 없어질 때까지 손에 쥐고 있었다. 수건을 태어던 불꽃의 일부가 내 손가락을 같이 태웠다. 손가락 두 개가 흐물흐물 녹아들어 물갈퀴처럼 달라붙었다. 그래도 손에 밴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살을 타는 냄새를 맡은 고양이가 다가왔다. 나는 축 늘어진 고양이의 머리를, 가슴과 배와 꼬리를 차례대로 쓰다듬었다. 꿰맨 자국이 울퉁불퉁 두드러진 게 불쌍해서 터질 듯이 가슴에 안아주었다. 너무 세게 끌어안아서인지 고양이는 내 뱃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있는 힘을 다해 구역질을 하면서 고양이를 뱉으려고 했다. 침에서 털이 조금 섞여 나왔다. 기침을 하자 목에 걸린 고양이 눈알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누이는 배가 아픈지 잠깐 인상을 썼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둥근 배를 쓰다듬었다. 나는 고양이 때문에 메스꺼워진 속을 누르며, 그 속에 든게 누구의 아기냐고 물어보았다. 누이는 자신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목까지 단추를 채운 옷을 입고, 두꺼운 속옷을 잘 갈아입지 않았으며, 수풀에서는 줄곧 땅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있어서 다리를 벌릴 틈이라고는 없었는데 배가 부풀더라고 했다. 나는 냄새나는 손으로 누이의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었다. 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댔다. 누이의 비명에 섞여 어디선가 나지막이 고양이가 가르릉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개구리 울음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방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죽은 고양일 어쨌니? 고양이는 어딜 간 거야?

누이가 헉헉거리면서 물었다. 입에서 고양이 냄새라도 나는 것일까? 그래도 상관없었다. 고양이는 내 뱃속에서 얕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죽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죽은 게 아니야. 걱정 말아. 내가 안아주고 있어.

누이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심장 밑에다가 털을 넣어뒀어. 엄마도 봉합을 하면서 나 몰래 더러운 천이나 쓰레기를 채워놨을지도 몰라. 고양이는 벌써 죽었을 거야.

누이는 크게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말했다.

이제 엄마는 너를 죽일거야. 고양이와 나는 죽은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

누이는 그 말이 어떻게 들리기를 바란 것이었을까. 내게는 그 말이 하나도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누이의 말은 전적으로 틀렸다. 나는 그녀 덕분에 살고 있었다. 간혹 그녀가 지어놓은 밥을 먹거나, 끓여놓은 물을 마시면서 목숨을 유지해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녀 소유인 아오이가든에 기거해서도 아니었다.

그녀가 있어야 나는 하루가 흐르고, 중첩된 하루하루가 묶여 세계가 된다는 걸 안다. 시간이 흐르는 건 축복이었다. 나에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것은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아침에 맞닥뜨린 그녀의 얼굴에서 나는 어제와 오늘 사이의 간극이 삼백오십만 년쯤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느낀다. 매시 매분마다 나날이 늙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녀의 살갛, 태초에 붉은색으로 태어났다가 시간과 함께 점차 옅어졌다가 종내는 시커멓게 변해버린 살갗. 그것이야말로 시간이 괸 호수인 동시에 다량의 시간이 만든 그림자였다. 나는 시간과 더불어 흘러가고, 그리하여 내 몸이 늙어간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그렇게 일 년이 지나 내가 늙어가는 걸 보면서 얻는 위안, 나는 그 위안 덕분에 산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내게 그런 위안을 주는 것은 나날이 더 늙어가고 있는 늙은 그녀이다. 그녀의 월경을 참을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월경은 죽음의 징후가 아니라 삶에 대한 악착같은 집착일 거였다.

그녀가 다시 피를 흘리기 시작한 것은 두달 전이었다. 그 무렵 그녀의 살갗은 매끈한 빛깔을 완전히 잃고 묘한 녹색을 띠기 시작하다가 점차 자주색으로 변하더니 급기야 까맣게 되었다. 안면이 팽창하여 툭 튀어나왔고 건조한 배가 불룩해졌으며, 귀는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는 날도 있었다. 안구가 녹아내린 것처럼 꺼지기도 했고, 살갗에 기포가 생겼다가 터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자고 일어난 자리에 군데군데 얼룩이 배어 있었다. 다시 검은색 머리카락이 돋고 얼굴의 검버섯이 붉어지는 기미는 없었다. 그녀는 단지 젊은 누이처럼 소파나 식탁 의자에, 방석에 피를 묻혔다. 그 붉은 피는 아오이가든 전체를 물들였다.

엄마가 아니라, 내가 어쩌면 엄마를 죽일지도 몰라.

누이가 피식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것은 주검에다 총구를 겨누는 것처럼 허튼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배를 쥐고 깔깔 대며 웃느라 고양이의 털이 한 움큼이나 섞인 기침이 나왔다.

누이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그때마다 벽이 쩍쩍 갈라지면서 긴 틈을 냈다. 갈라진 틈에서 냄새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누이의 비명은 계속되었다. 가랑이가 찢어지고 그리하여 우무질에 둘러싸인 개구리들이 튀어나올 때까지.

내가 지금 너를 낳고 있는 거니?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오는 것을 보기 위해 고개를 쳐들고 있던 누이가 물었다. 피로 물든 누이의 가랑이에서 나온 것은 다리가 가늘고 몸통이 큰 개구리였다. 그것은 실로 나를 닮아 있었다. 어느 틈엔가 방에서 나온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우무질에 덮인 개구리를 차디찬 물에 씻겼다. 개구리들은 그녀의 손이 닿을 때마다 눈알이 터지도록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터진 눈알에서 흘린 피로 몸을 물들였다. 태어난 것이 개구리라고 해서 당황한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베란다 유리창을 열었다. 거리의 냄새가 밀려 들어왔다. 나는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뱃속의 것을 게워냈다. 붉은 내장들이 계속 쏟아졌다. 고양이의 것인지 내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꿰맨 자국이 있는 뱃가죽이 튀어나올 때까지 구역질이 멎지 않았다. 그녀는 누이의 뱃속에서 나온 수십 마리의 붉은 개구리들을 바깥에 쏟았다. 바깥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나는 개구리들을 따라 발돋움질을 했다. 그것들은 내 누이의 아이들이었다. 베란다를 넘은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가늘고 단단한 다리를 접었다가 훌쩍 튀어 오르니 바깥에 닿았다. 이윽고 거리의 냄새가 느껴졌다. 냄새만으로 아오이가든 너머로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마디가 달라붙은 두 팔을 펴고, 나뭇가지처럼 가벼운 다리를 벌린 채 비강을 활짝 열었다. 죽은 새끼들이 썩은 몸을 일으켜 긴 소리로 울며 낙하하는 나를 마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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