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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향기

강영숙, 라이팅 클럽

by 아프로뒷태 2012. 2. 12.

 

강영숙,『라이팅 클럽』, 자음과 모음, 2010

 

 

 

 

1~11 파츠까지 소설쓰기를 일상으로 삼는 두 모녀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각 파트마다 소설을 텍스트로 활용하고 이야기와 연관시킨다. 계동에서 소규모의 글짓기 교실을 열고 있는 김작가와 소설가가 되고 싶은 그녀의 딸은 소설 등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작가는 두 모녀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소설쓰기의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1. 글짓기 교실-하인리히 뵐의 소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마스 만 『마의 산』

 

소설 등단을 목표로 하는 김작가는 나의 엄마다. 나역시 엄마의 영향을 받아 소설을 쓴다. 엄마는 계동에서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기로 한다. 글짓기 교실은 계동의 버려진 한옥들 중 한 곳에 차려졌다. 김작가는 ‘다섯 평 될까 말까 한 글짓기 교실에서 욕망을 살찌운다. 흥미진진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과 나날이 찌는 살의 상관관계를 언젠가 꼭 소설로 써보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작가의 글쓰기 교실은 글을 쓰고 토론을 하기보다 술을 마시는 모임으로 되어간다. 점점 글을 짓는 목적과는 멀어진다.

한편 나는 R과 절친한 관계이다. 만나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거나 관심사를 공유한다. 또한 서로의 글을 읽으며 합평을 해준다.

 

 

 

 

 

2. 글쓰기 모드-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마렉 플라스코의 『제8요일』,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시몬느 베이유『노동일기』

 

김작가는 글을 쓰기를 배우러 온 장선생과 눈이 맞는다. 품위 있고 잘 생긴 장선생의 출중한 외모에 반한 것이다. 장선생도 김작가가 싫지 않은지 적극적으로 김작가와 어울렸다.

 

 

 

 

 

3. 설명하기와 묘사하기- 버지니아 울프『자기만의 방』, 『댈러웨이 부인』, 에이드 리언 리치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4. 너의 라이프 스토리를 말해줄래-

 

글짓기와 생계사이에서 고민하던 나는 서울시청에서 구해준 일자리에 취업한다. 매점 아르바이트라서 틈틈이 책을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한나절동안 커피 심부름만 하게 된다.

 

 

 

 

 

5. 두 마리 토끼-『강철군화』

 

“그해 연말, L은 보란 듯이 작가로 데뷔해서 우리의 늙은 튜터가 일자리를 잃지 않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L은 그 후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았고 나도 L을 잊었다. 다만 L의 그 목소리와 뭔가에 생채기를 내고 싶어 하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은 기억에 남았다. 사실은 나도 바로 그 복수심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었다. 앞에 나가 L에게 글을 읽게 한 튜터는 그녀의 에세이를 칭찬하지 않았다.

 

그는 “도한 열정도, 과도한 복수심도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없다.” 고 말했다. 처음에 한두 번은 그런 감정을 바탕으로 글을 쓸 수 있지만 그런 감정들이 다 사라지고 나면 무슨 에너지를 가지고 글을 쓰겠냐고 물었다. “직업으로 글을 쓴다고 가정해봅시다. 어디서 영감을 얻을 것인가? 먹고살 만해졌다면? 세상에 대한 복수심이 더 생기지 않는다면? 첫사랑이 지나고 이미 다섯 번째. 아니 스무 번째 사랑을 하고 있다면? 어디서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수강생들은 다들 멍해졌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갖는다는 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먼 얘기이기도 했고 “작가라면 영감을 얻기 위해, 진실한 글을 쓰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는 말은 그럴듯한 당위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튜터는 덧붙였다. “생활과 글쓰기의 관계도 그래요. 18세기 영국에서 소설 독자들이 생겨나는 과정을 봐도, 그래도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계층은 글을 읽을 불빛이 있고 여가가 있었던 입주 하인 계급들이었어요. 글을 쓰려면 글을 쓰는 일과 더불어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해야죠. 너무 가난해도 너무 부자여도 글을 쓰기 힘듭니다.

 

그럼 이제 와서 결론을 말해볼까. 생활과 글쓰기는 절대로 병행할 수 없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늘 한쪽이 부서지고 깨졌다.

 

 

 

새로 시작한 연애가 끝날 때마다, 눈앞의 연애보다 오래전에 헤어진, 과거의 애인들이 생각나는 건 왜 그럴까. 그때로부터 하나도 벗어나지 못한 채 뒤로 걷고 있는 느낌. 발전이라고는 없는 느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느낌만 든다.

 

 

 

간결하고 분명한 묘사 뒤에 반드시 작가의 사고과정이 드러나야 해. 그런 건 묘사가 아니라 진술이지. 작가의 사고, 작가의 판단에서 오는 힘이 있는 진술이 반드시 들어가야 해, 이렇게 주인공이 기차 타고 갔다가 기차 타고 오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소설의 다는 아니라고, 묘사와 진술 그 두 가지가 적절히 섞여야 해. 좋은 문장이란, 좋은 소설이란 그런 거야. 160쪽

 

 

 

“묘사는 배워서 할 수도 있어. 그러나 작가의 사고 과정이 소설에 드러나려면 공부를 해야 해. 많이 읽어야 한다구. 글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줄 모를 거야. 작가들이 진실한 문장 하나를 갖으려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는지 나중에 알게 될 거야.” 161쪽

 

 

 

 

 

 

6. 세상에, 이런 쓰레기들을 보았나!-

 

계동 주부 글짓기는 활기가 넘쳤다. 나는 김작가에게 나의 소설을 보여주었다. 너는 뭘 쓰려고 하기 전에 그 잘난 척하는 태도부터 고쳐, 글 쓰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구.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시건방진 거니?김작가는 나의 소설을 쓰레기라고 했다.

 

 

 

 

 

7. 현실과 환상-『인간은 모두가 죽는다』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는 시간에 관한 소설이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을 길게 늘여놓은 뒤, 존재의 비밀을 탐구하고 존재의 한계를 극복해보려는 시도였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제한 없이 늘어난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걸까. 그럼 훠스카는 특별히 구원받았던 걸까. 구원이고 뭐고 주어진 시간도 거부하고 자기 마음대로 죽어버리는 인간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는 무한히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도 존중하지만 중간에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도 존중한다. 이 소설을 읽고 있으면 온몸이 습기로 축축하게 젖어오고 이내 도시 전체가 공상과학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처럼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젖는 것 같았다.

 

글을 쓰겠다는 열망을 품게 되는 순간부터 그 삶은 환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 일 외에 다른 일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임신 초기의 울렁증처럼 평생 구역질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거기서 정도가 심해지면 바보가 된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그저 병을 앓는다. 어떻게 보면 내가 더 심각한 환자였다. 그러나 K는 나보다 더 중증이었고 훨씬 순수했다. 198쪽

 

 

 

나는 그때 뭔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것,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탐구하는 것이 글을 쓰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걸 감각적으로 알게 되었다. 공간을 제대로 설정하라. 그러면 글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써지고 훨씬 더 힘 있게 진행된다. 199쪽

 

 

 

나는 순간 알아버렸다. 현실에 밀착해, 현실에 지치고 떠밀린 사람일수록 쉽게 환상을 본다는 것을, 환상은 현실과 결코 먼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K의 병은 환상이 현실을 압도해버린 데서 온 것인지도 몰랐다. 하이데거가 사람과 세계의 관계를 두고 “달팽이와 달팽이 껍질의 관계처럼 결속되어 있다”고 한 것은 정말 적절한 표현이었다. 그는 실존의 성격을 “세계-내-존재”라는 잘 알려진 말로 표현했다. 그러니까 나는 혼자 외로워해도 결국 혼자가 아닌 셈이었다.

 

 

 

 

 

8. 돈 키호테 북 그룹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곳에도 넘쳐났다.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욕망은 세상의 많은 음식만큼이나 다양한 맛과 모양새로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무식한 사람들이 네일케어를 손톱에 매니큐어나 칠하는 단순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절대로 그렇지 않지. 사람마다 손톱을 보면 그 인생이 다 드러나요. 우린 그걸 볼 줄 알아야 해. 손님의 친구가 되어주어야 한다니까. 그녀의 고통, 그녀의 꿈, 그녀의 사랑, 그녀의 기쁨, 그런 것들을 손을 보고 다 읽어야 한다고.” 213쪽

 

 

 

 

 

9. 핵켄색의 라이팅 클럽

 

 

 

“소인이 이런 일을 당하면서 솔직히 얻은 결론은요. 우리가 찾아다니는 모험인가 행운인가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은 수많은 불행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고요. 이러다 종국에는 우리 오른발이 어느 발인지도 모르게 될 것이구만요. 소인의 좁은 소견으로는요, 그냥 우리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옳은 생각 같네요. 지금 보리와 밀 수확철이고 농사일이 바쁠 테니까 사람들 말처럼 이렇게 ‘천방지축’ ‘동분서주’ 헤매고 다니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낫지요.” 돈 키호테는 물론 큰소리를 치면서 나무랐지만 내 심정도 영리한 산초 판자의 마음과 같았다. 돈 키호테도 빨리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나도 라이팅 클럽을 당장 그만두고 싶었다. (글을 계속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문단이다.)249쪽

 

 

 

 

 

10. 처음 다섯 페이지

“글은 말이야. 재미있게 써야 해, 그래야 계속 쓸 수 있어. 그래야 계속 읽을 수도 있지. 다들 시간이 없잖아.”

 

 

 

 

 

11. 계동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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