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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2월 11일] 부러진 사실, 사실의 위기 / 주창윤

by 아프로뒷태 2012. 2. 12.

[문화산책/2월 11일] 부러진 사실, 사실의 위기 / 주창윤    2012/02/12 18:34
 
[문화산책/2월 11일] 부러진 사실, 사실의 위기 / 주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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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창윤 서울여대 방송영상학과 교수

 

영화 '부러진 화살'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의 이야기 구조로 보면 김 교수가 석궁을 발사했는지, 부러진 화살은 어디로 갔는지, 와이셔츠에는 왜 혈흔이 묻어있지 않은지 등 의문이 제기된다. 마지막 장면 자막은 이 영화가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감독은 영화내용 대부분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사법부는 대부분 영화적 상상력일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례적으로 대법원은 '부러진 화살'이 전체적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영화를 넘어 사회적 맥락에서 보면, '부러진 화살'은 우리 사회 '사실의 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이 탐구한 문제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 대중은 사실관계에 굶주려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런 사실에 대한 굶주림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지난 해만 보더라도 해병대 총기사고, 일본 대지진 사건보도, BBK 관련, 내곡동 사저, 선관위 디도스 공격, 1억원 피부과 논란 등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사실이 아닌지 혼란스럽다. 경찰과 검찰 등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 의혹은 풀리는 것이 아니라 증폭된다. 법원이 판결해도 의문을 가지며, 언론보도도 대중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다. 얼마 전 1억 피부과 문제만 하더라도 경찰이 나경원 전 후보가 해당 병원을 15차례 찾아가 자신과 딸의 피부관리 비용으로 550만원을 쓴 것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하자, '시사IN'은 이를 반박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은 경찰 발표보다 '시사IN'의 보도를 더 사실로 믿을 것이다. 그 동안 정권, 경찰, 검찰, 사법부뿐만 아니라 언론, 재벌 등과 관련된 사안을 보면서 대중은 권력이 사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사실의 위기를 겪지 않고 있다면, 영화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이 이렇게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고, 개그콘서트의 '불편한 진실'은 웃음을 주지 못할 것이며, '나는 꼼수다'가 제기하는 의혹들도 확대 재생산되지 못했을 것이다. '도가니'는 분명한 사실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폭발했고, '부러진 화살'은 선택된 사실로부터 사법부에 대한 태만과 조직 이기주의에 대한 조롱이었으며, '나는 꼼수다'는 은폐된 사실에 대한 폭로와 비웃음이었다. 개그콘서트는 직접적으로 권력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진실은 진실이 아닌 거짓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사실의 위기 시대에 대중이 할 수 있는 것은 의심하는 것이다. 대중은 특정 사건에 대한 정황적 판단이나 개연성을 가지고 무엇이 사실인지 추론한다. 그리고 추론과정을 통해서 진실로 믿는다. 그 진실은 개인적 진실이거나 상황적 진실이지만,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설득력을 발휘한다. 사실이 있는 그대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은폐되고 무엇인가로 대체된다면 그것은 허위의식으로서 이데올로기다. 지금은 이데올로기가 사실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어샌지가 위키리크스를 통한 폭로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정보의 투명성이었다. 정보는 특정 권력에 의해서 독점되어서는 안 되며,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 대중은 단순한 정보의 소비자가 아니라 정보를 취재하고 검증할 뿐만 아니라 유통에도 참여한다. 대중은 정보의 투명성을 몸으로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우리 사회에서 소통의 위기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우리 사회 갈등의 원인은 소통의 위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소통의 위기는 보수와 진보 사이 이념적 대립이나 정권이 국민과 대화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통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사실의 위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사실관계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찾고 있는 그 부러진 화살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 부러진 사실들은 또 어디에 은폐되어 있는 것인가.
 
한국 / 2012.02.10 2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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