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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향기

치욕의 과거나 현재는 변함이 없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반복만 있을뿐

by 아프로뒷태 2010. 9. 1.

 

 

 

 

 

 

 

 

 

 

 

 

 

 

 

 

 

 

 

 

 

<경계도시2>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온했다.


           나는 평소 한국사회가 불신사회라는 것을 부인한 적은 없다. 나는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사회의 구조와 순환원리를 신뢰하지 않는다. 국민이 국가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가 그만큼 힘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국가의 존재 근원에 대한 물음이 아닐까?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의 정치는 민주주의의 정도를 잃었고, 언론은 정치에 선동되어 객관적 시선과 자유를 잃었다. 그리고 대중은 정치와 언론에 의해 선동되었다. 이러한 구도아래, 정치와 언론이 여론몰이를 하여 개인을 죽이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닐 것이다. 치욕의 과거나 현재는 변함이 없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반복만 있을 뿐이다..

           문득, 씨네21 문석 기자의 글에 적극 동감이 간다.

           <경계도시2>를 보는 건 힘들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가슴은 답답해졌고 머리 속은 복잡해졌으며 장탄식이 절로 나왔다. 극장 바깥으로 나오니 몸이 퉁퉁 부은 듯 멍한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경계도시2>는 가수 루시드 폴의 말처럼 “한편의 공포영화”였고 사진작가 이시우의 말마따나 “고통스러운 영화”였으며 이영진 기자가 적은 대로 “당혹스럽”게 하는 다큐멘터리였다. 살인자가 등 뒤에서 다가가는데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영화 속 인물을 보는 것보다 5만배는 답답했고, 엄마 없는 소녀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에서 여비를 뺏기고 동생을 잃어버린 마당에 깡패들을 만나는 장면을 보는 것보다 10만배는 심란했다(홍형숙 감독님, 강석필 프로듀서에게 “104분 동안 마이크 타이슨에게 얻어터진 느낌”이라고 말한 게 저예요).

           이 영화는 되새기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을 대책없이 끄집어낸다. 송두율 교수가 37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2003년 9월부터 독일로 떠난 2004년 8월의 한국, 망각 속에 묻어왔던 그때 이곳의 기억이 판도라 상자 속에서 일제히 튀어나와 머리 속을 휘저었다. 그 기억 안에는 송두율 교수를 짓밟고 몰아붙이고 난타했던 정당, 보수단체, 메이저 언론의 시끄러운 푸닥거리가 한축을 이뤘고,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좌충우돌갈팡질팡했던 ‘민주화 세력’의 혼란스러운 대응이 다른 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우며 당혹스러웠던 진짜 이유는 그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경계도시2> 속 내 모습은 ‘송두율을 구속하라’고 외치는 할아버지들의 피켓 속에, 송두율 교수에게 ‘전술적 전향’을 권유하는 민주화 인사의 담배연기 안에 있었다. 주류 신문의 무시무시한 활자 속에도, 총선에서의 득실을 고민하는 사회단체 간부의 뇌까림 속에도, 도심을 스쳐가는 인파의 무심함 속에도 나는 존재했다. 눈은 스크린을 향해 있었으나 머리 속은 혼돈의 쓰나미만 넘실거렸다. 시사회장에 있던 다른 관객의 끊이지 않는 한숨소리는 그들도 스스로의 모습을 스크린 안에서 보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이토록 보는 이를 힘들게 만드는데도 우리는 <경계도시2>를 여러분께 강력 추천한다. 그냥 한번 봐줄 만 하다는 게 아니라 꼭 봐줬으면 한다고 말하고 싶다. ‘경계인’이고자 했던 한 지식인의 기구한 운명과 감격적 고향 방문을 다루고자 했던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경계 안 아니면 바깥’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힌 한국사회의 자화상으로 바뀌어버렸다. <경계도시2>는 송두율이라는 개인을 ‘놀이공’으로 전락시킨 우리 자신을 반성적으로 비추는 거울이자 몰래카메라다. 여기에선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 누구도 평안할 수 없지 않은가. 술 취해 필름이 끊겼던 지난 밤의 기억을 더듬는 심정으로(아, 그건 정말 두렵긴 하다) 이 영화를, 스스로를 마주하시길. -문석기자-

              더불어 영화를 볼 무렵, 손에 쥐고 있던 한 시인의 시 한편이 더욱 맛갈스럽게 다가온다.

금지된 놀이

-이수명




머리를 덮으며
머리카락이 자랐다.


아이들은 인형을 던지며 놀았다.


한 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이 금지되었다.
한 아이가 옆집 아이와 노는 것이 금지되었다.


머리카락을 덮으며
머리카락이 자랐다.


한 아이가 노는 아이인 것이 금지되었다.
한 아이가 아이인 것이 금지되었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인형을 던지며 놀았다.


한 아이가 금지된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이 금지되었다.
한 아이가 금지된 울음과 노는 것이 금지되었다.


한 아이가 숨어서
숨죽이고 있는 것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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