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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쓰며 먹고 살며)

나는 <엉클 분미> 를 이렇게 본다.

by 아프로뒷태 2010. 12. 6.

 

 

지난 9월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의 방한과 동시에 영화 <엉클 분미>개봉을 준비하면서 진행한 행사입니다.

 

여느 씨네토크보다 훨씬 풍요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이 행사와 더불어 <엉클 분미> 비평문 공모전도 진행했는데요.

 

돌이켜보면 여름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일을 하고 왔나 지금에서야 놀라운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체력이 ...

 

아무튼 녹취한 것을 받아쓴다고 좀 고생했습니다.

 

정성일씨 역시, 그의 머리속에는 커다란 우주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정성일과 함께 하는 <엉클 분미> 영화 강연회





                               먼저 감독의 이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사실 저널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이라고 이름이 나오지만 원래 감독의 이름을 영어로 보면 'kuhl'로 나온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왜 모든 저널에는 '쿨' 을 '쿤' 이라고 말하는가? 그래서 번역자에게 물었다. 번역자의 말에 의하면 태국어는 l과 n에 그리 큰 차이 없이 발음되며 일반적으로 n을 l로 표기한다고 했다. 이름에 대한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당사자가 한국에 도착해서 감독의 이름을 불렀다. 그랬더니 감독이 왜 나의 이름을 쿨인데 쿤이라고 부르냐고 했다. 결론적으로 감독의 이름이 국내에 혼용되어 사용되는 것 같다.

                              처음의 계획은 지난 8월 신디영화제 기간 중에 본격적인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에 관한 토론을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감독의 머릿속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의 영화를 맨 처음 본 것은 그의 이름을 아직 외우지 못했던, 솔직히 말해 이 사람의 이름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지 않는가? 2002년 깐느 영화제에서 경쟁부분작인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출품되어 깐느로 갔었을 때였다. 그해 깐느의 황금종려상은 로만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가, 심사위원 대상은 아키 카우리스마키 <과거 없는 남자>가 감독상은 폴 토마스 앤더슨 <펀치 드렁크 러브>와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공동 수상을 했다.
                               하지만 그해 깐느 영화제에서 나를 망연자실하게 했던 것은 경쟁부분이 아니라, 주목할 시선에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의 <친애하는 당신>이라는 영화였다. 그 영화는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오피닝 영화로 상영되었다. 당시 깐느 영화제에 하루 늦게 도착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화두가 된 것은 경쟁부분의 영화가 아니라 주목할 시선의 영화였다. “혹시 봤어? 봤어? 이름은 잘 발음이 안 되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감독이긴 한데…… 혹시 봤어?” 하는 것이 그쪽 비평가들의 반응이었다. 세계 곳곳의 취재기자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올해 홍상수 감독이 받은 상을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이 받았다. 
                               그 이후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의 영화 <열대병>을 보았을 때, 이 사람에게 확실히 매혹되었다. 보통 새로운 영화를 만났을 때, 개인적으로 든 의심은 둘 중의 하나였다. 이 사람이 천재이거나 또는 사기꾼일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의심을 가진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의 다음 영화는 베니스 영화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해 베니스 영화에 가지 못했기에 2007년 시네마 떼끄에서 <증후와 세기>를 상영하는 자리를 마련했고 강연회를 했다. 여기까지 이르자, 감독의 다음 영화가 기대되었다. 그 사이 감독은 다른 작업으로 바빴다.

 


 

                             오늘 이 자리에서 논의할 이야기는 <엉클 분미>와 그 동안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이 진행한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신디영화제에서 이 사람을 심사위원으로 부르기 위하여 3년 전부터 콜을 해왔다. 그리고 2010년 올해 초 처음으로 대답이 왔다. ‘최근에 한 편 끝낸 영화가 있다. 어쩌면 어떤 영화제를 걸쳐 갈지 모른다. 하지만 디지털 영화가 아니라 신디영화제에서 상영하는데 있어서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영화제는 깐느영화제였다. 그리고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이 단지 극영화만을 찍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예술에 있어서 인스톨레이션작업과 비교작업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굉장히 많은 작업들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감독의 모든 작업을 현실적으로 서울에서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공간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감독은 비디오 퍼스널 아카이빙 비디오 7편을 신디영화제측에 보내주었고 그 중에 한 편인 <에메랄드>를 ‘신디영화제’를 통해 상영했다. 그 영화를 보고나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시대에 영화감독들이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과 함께 살게 된 것은 지옥이겠구나, 정말 제대로 걸렸구나. 라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21세기에 접어들어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 영화는 여러분도 찍을 수 있는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왜 영화사 100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렇게 찍으려고 시도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를 보고 뭔가 본격적인 컨퍼런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제안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의 특징 중 하나는 메일을 보내면 즉각 답변이 온다는 것이다. 항상 답변이 즉각 오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답이 오는데 2주씩이나 걸렸다. 감독은 컨퍼런스 진행에 대해 결정하지 못했고 서울에 가서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고 답변을 보내왔다. 

                             올해 8월 18일,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이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했다. ‘신디영화제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잘 알고 있으며, 신디영화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내 영화가 설명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관객에게 <엉클 분미> 에 대해 이야기 하는 대신 이제까지 나의 작업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으면 좋겠다. 인스톨레이션 작업과 비디오 작업을 관객에게 소개하여 나의 작업과 영화가 어떤 콘텐츠로 연결되는지를 이야기하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주)영화사 백두대간의 이광모 감독과 7월에 <엉클 분미> 영화가 개봉하게 되면 영화에 대해 강연회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오늘의 <엉클 분미> 강연회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과 영화를 만들기까지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이지 영화자체에 대한 해석과 답을 논하는 자리는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주시길 바란다.

                             신디영화제에서 <엉클 분미> 영화를 상영한 후,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은 영화가 관람하기에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기자 시사회에 왔던 많은 기자들이 한 말은,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나의 전생을 만나오게 되더라’ 라는 것이었다. 

 


                              보통 영화학자들이 현대영화를 구별하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우선 현대영화가 지나치게 빨라졌다. 이것은 할리우드 영화의 특징이다. 작년 말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를 보면서 느낀 것은 현대 할리우드 영화의 속도에 비해 이 영화가 지나치게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장 빨리 진행되는 영화의 대표적 예로는 <본> 시리즈일 것이다. 1950년대에 한편의 영화쇼트가 550쇼트에서 600쇼트 정도라는 점에 비한다면 현대의 영화에서 액션영화가 아닌 멜로 영화조차도 정신없이 진행된다. 심지어 <러브 액츄얼리>에서도 1258쇼트가 넘게 진행된다. <토이스토리> 역시 1300쇼트로 진행되고 있다. 이 어마어마한 속도에 대한 문제는 반대의 문제를 낳게 된다. 보통 한쪽이 극단으로 나아갈 때, 반대쪽으로 흘러가는 극단의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 반대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영화를 슬로우 시네마라고 한다. 슬로우 시네마의 예로는 허우샤오시엔 영화의 <해상화> 이고 그 영화는 48쇼트이다. 슬로우 시네마는 단지 느리게 찍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슬로우 시네마의 목표는 영화에서 시간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래서 슬로우 시네마는 시간을 염두해 두고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아마 태국영화가 오늘 본 것이 처음일 것이다. 물론 <옹박> 시리즈가 있긴 하지만, 태국영화를 부러 챙겨보는 관객은 드물 것이다.  세계영화사에서 태국영화가 들어온 시기는 1979년이었다. 프란시스 코폴라가 <지옥의 묵시록>을 찍기 위해 베트남의 현장을 찍어야 했다. 프란시스 코폴라는 베트남에서 촬영할 수 없는 대신 태국에서 촬영했다. 필리핀과 태국 양 국가에서 촬영된 영화는 마지막 촬영을 태국에서 진행했다. 이때 많은 태국 스텝들을 끌어들여 촬영했다. 이 과정을 통해 태국의 영화스텝들이 할리우드 영화촬영 테크닉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태국영화는 1979년을 기점으로 할리우드 영화 후반의 작업을 자국의 영화테크닉으로 끌어올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이 가능했던 것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태국이 영화가 가능한 조건이었고 저렴한 인건비 때문이었다. 당시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서 할리우드 영화가 메인 컬처가 되었다면 서브 컬처는 홍콩 영화였다. 그리하여 미국의 팝 컬처와 홍콩 영화가 태국의 영화로 유입되어 발전했다. 

                              미국이 베트남에 패망한 이후, 태국에서는 급속이 진행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진영 사이에서 반공화가 이루어졌고, 태국은 그 사이에서 봉건제와 자본주의가 공존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태국의 독특한 기호가 형성되었고, 태국의 독특한 오리엔탈리즘이 더해졌다. 이러한 전반적인 사회변화를 두고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이 어떻게 자기 영화에 표현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이것을 중국에서는 중국5세대 영화를 표현하기 위해 셀프 프리미즘 즉 어떻게 자신을 신비화 할 것인가? 로 시도하게 되었다. 이것이 출현하게 된 계기는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에서 비롯되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구인들이 아시아(중동)를 상대로 자기들이 스스로 환상을 만들고 소비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1980년대 이후 거기에 반대로 중국에서는 ‘셀프 오리엔탈리즘’, ‘자기 원시화 하기’, ‘자기 동양화하기’ 라는 방식을 영화에서 표출하게 되었다. 그러한 경향이 아시아 영화의 전역에 퍼졌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은 1970년대에 태어났다. 그가 전공한 것은 건축이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시카고 대학에 유학을 가서 미술과 영화제작 과정으로 석사 과정을 받았다. 홍상수 감독도 이 학교를 나왔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에게 물었다. 홍상수 감독이 말하길, 감독이 졸업하고 떠날 무렵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이 입학해서 만날 수 없었다고 했다. 두 감독 사이의 유사점은 반복이라는 것인데 이에 대해 다른 자리에서 논의를 하겠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이 첫 번째 비쥬얼 작업을 시작한 것은 1994년이었다.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당시 그의 비디오 작업의 파트너는 한국사람이었다. 그 당시 감독의 작업 방식은 앤디워홀 팩토리에서 작업되었던 방식으로써 실험영화 방식이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영화보다 미술의 설치 작업에 더 관심을 가졌고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그의 이름으로 미국 설치전을 먼저 시작했다. 이것은 그가 영화보다 미술설치전을 먼저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감독은 자신이 영화감독보다 설치가라고 생각한다. 그는 영화촬영보다 필름워크를 더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상영하거나 소개한 예술영화들과 달리 <엉클 분미> 영화가 맥락 없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점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영화에서 관객이 관성적으로 생각하는 것들로부터 끄집어내기 일 것이다. 여기에서 감독은 영화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자기 주변의 예술적 요소들과 영화를 접목시킬 것인가? 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2010년 초에 많은 잡지에서 지난 10년 동안 세계의 영화사를 움직였던 영화를 뽑자고 투표를 했다. 많은 잡지 중 아카이브 시네마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5명의 감독을 편집진들이 투표하여 공개했다. 5인의 감독은 바로 ‘구스반 산트’ 감독, ‘나이트 샤말란’, ‘윌리엄 M 엔더슨’, ‘패드로 코스타’ ,‘아피찻퐁 위라세타’‘ 이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이 설치 작업에서 중요시 생각하는 것은 메모리, 기억이다. 그는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고민했고 설치미술로 도전했다. 그리고 그 작업을 확장하여 영화를 제작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기억을 하나의 설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때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의 인스톨레이션에서 기억을 설치하는 메소드는 멀티스크린이다. 아마 멀티스크린의 작품에 대해서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의 설치미술전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설치공간에 들어가면 많은 작가들은 많은 장치를 설치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의 미술설치를 보며 느낀 것은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다. 그의 설치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스크린뿐이다. 여러 개의 스크린에서 여러 개의 서로 다른 시간들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것은 서로 다른 시간의 동시성을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공간과 시간의 문제는 중요한 테마이다. 문제는 여러 개의 멀티스크린으로 진행되던 화면을 시네마로 옮겨 왔을 때, 영화는 절대적으로 싱글스크린으로 전개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싱글 스크린을 여러 개의 멀티스크린으로 펼쳐놓았을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느냐 이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이 점에 의문을 던지고 자신의 방식으로 해결했다. 하나의 스크린에 여러 개의 씬이 전개되면 어떤 반응이 있어날 것인가? 하나의 스크린에 여러 개의 숏이 동시에 펼쳐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영화를 성립시키는 것 또는 영화를 볼 때, 중점으로 보아야 할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이라고 말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여러 개의 스크린을 하나의 숏 위에 성립시키는 컵셉을 자기문화의 방식으로 성립시켰다. 이것이 그의 영리한 방식이다. 

                            빌리지 보이스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의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우리는 이제까지 영화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할리우드 영화, 작가주의 유럽영화, 인민의 영화라 불린 피이플 시네마이다. 그러나 그가 나타나자, 네 번째 시네마가 탄생했다. 그것은 바로 존 시네마 즉 지역의 시네마이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기억과 시간이라는 것, 메모리 타임을 영화에서 구현하는 방식을 자기문화의 콘텍스트로 끌어안고 생각했다. 

                            그 방식의 하나는 환생이고 다른 하나는 변태이다. 여기에서 변태는 나방이나 나비가 되는 변태를 말한다. 이 변태는 시간과 기억이 영화 속에서 운영되는 방식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에 적용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변태는 공포영화에서 주로 사용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역시 태국공포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만일 이 영화에서 공포의 컨셉만 없애버리면 어떤 느낌이 들까? 만약 <엉클 분미>를 보는 관객에게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인 공포를 제외하면 이 영화는 어떤 느낌이 들까? 신디영화제에서 <엉클 분미> 상영이 끝나자,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한국의 관객을 보고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고 웃지 않아서라고 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이 <엉클 분미>를 통해 환생과 변태라는 문화 콘텐츠를 영화 안으로 끌어들여서 진행시켜본 결과, 갑자기 영화의 내러티브에 이상한 문제가 발생했다. 마침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이전에 유사한 작업 방식으로 영화를 찍은 감독이 있었다. 데이비드 린치가 <멀홀랜드 드라이브>,<로스트 하이웨이>를 그러한 방식으로 영화를 촬영했다. 당시 모두 그 영화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21세기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영화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을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이 진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영화는 이러한 방식으로 영화를 진행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이 <엉클 분미>를 통해 환생과 변태를 영화 안으로 끌어들여서 영화의 내러티브에 이상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제는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생이라는 방식으로 영화를 진행하면 A는 B이며, B는 C가 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한 축이다. D는 E가 되고 E는 F 가 될 것이다. A는 B이며, B는 C가 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환생의 주제라면 D는 E가 되고 E는 F 가 될 것이다. 이것이 변태의 주제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A와 B를 보여주고 나서 B가 E를 만났을 때 우리는 동일한 사람들이 만났다고 설명할 수 있는가이다. D, E, F의 계열을 놓고 이것과의 상관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관심을 가졌다. 

                           우리의 머리에서 그려지는 매트릭스와 영화에서 그려지는 매트릭스의 차이를 만들어 낼 때, 그 구조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매트릭스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스크린이다. 영화를 보여주는 스크린과 관객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스크린이다. 감독은 이러한 만남에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에 의미를 두었고, 그 자체로 어떤 세계를 만들어질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보통 영화는 관객에게 설명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이렇게 생각했다. 스님의 불교의 깨달음을 설명하기 위기 위해 카메라는 수행자가 깨달음의 과정을 따라간다. 예를 들면 임권택의 <만다라>라 그렇다. 하지만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반대로 진행한다. 스님의 눈으로 불교의 세계를 보면 어떻게 보이겠느냐를 보여준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관객에게 완전히 다른 위치에서 영화보기를 요구한다. 
                           아시아에서 불교는 각자의 나라마다 다른 방식으로 전파되었다. <엉클 분미>의 영화는 1886년에 스님이 쓴 소설을 원작을 바탕으로 발전된 이야기이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이 영화를 진전시키면서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하나는 근대적 태국이고 다른 하나는 정글이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끊임없이 정글을 영화의 소재로 활용한다. 정글의 존재성과 영원성을 활용한다. 감독은 정글에서는 동물도 벌레도 혹은 그 어떤 것들도 인간의 전생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공주와 하인과 메기의 에피소드를 잘 생각해보자. 그리고 영화의 제목을 생각해보자. 한글 제목은 <엉클 분미>이다. 하지만 원제를 직역하면 <전생을 기억하는 분미 아저씨>,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이다.

                           이 영화에서 분미 아저씨가 기억하는 전생은 하나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꿈 장면인지 전생을 보여주기 위한 플래쉬 백인지 구별하는 것은 아주 힘들다. 영화의 시작에서 분미 아저씨는 배가 아파서 눕는다. 그때는 낮 장면이다. 상식적으로 꿈 장면으로 들어간다면 이 장면 후에 숲 장면이나 인서트 장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장면 후에는 처제의 화면, 분미아저씨를 지그시 바라보는 처제의 화면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처제의 장면으로 곧바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 컷이 넘어가면 텅 빈 방이 보여지고 해먹에 누워 있는 퉁을 보여준다. 만일 편집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전생 장면은 퉁의 전생장면일 것이다. 이 장면이 보여진 뒤 정글장면이 보여진다. 이 전생을 생각하는 것은 마치 정글이 꿈꾸는 장면처럼 편집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꿈의 장면은 누구의 전생 장면인가? 그 다음부터 공주와 하인과 메기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야기가 모호하게 거론되는 이유는 명백히 공주가 누구의 전생인지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분미아저씨의 전생이 하인이라면, 공주라면, 메기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영화는 정확히 3:3:3의 비율로 맞추어 놓았다. 여기에 매개의 변수가 더해, 분미의 아내와 분미의 아들인 분쏭에 맞추어 놓았다. 변태와 환생이라는 공식을 놓고 현생에서의 삼각구도와 한쪽에는 못생긴 공주와 하인의 구도가 있다. 이때 공주는 둘로 분화되는데, 못생긴 공주와 물속에서 비치는 예쁜 공주로 비춰진다. 영화는 둘 중에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환영인지 말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누구를 쫓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영화의 첫 시작은 분쏭으로 시작한다. 영화에서 분쏭의 시선에서 시작하지만 그 이후에 나온 것은 한 마리의 소이다. 그리고 소는 분쏭을 찾아 숲으로 간다. 

                          결론적으로 이 시작지점은 우리에게 혼란을 야기시킨다. 영화는 아들 분쏭이 돌아오는 것으로 첫 시작을 한다. 두 번째는 퉁과 처제가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변태가 되어버린 아들 분쏭과 이 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온 퉁과 처제가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두 가지 시점, 현재의 시점과 과거의 시점이 공존하는 방식을 만들어간다. 이때 영화는 우리를 혼란시킨다. 

                          이때 분쏭이 미학적인 이유나 종교적인 이유로, 불교적인 이유로 분쏭에게 털이 난 것이 아니다. 분쏭이 털이 난 것은 그가 그 지역을 떠나 즉, 라오스 국경을 떠나면서 털이 난 것이다. 지금 태국의 정치적 현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분미 아저씨는 말한다. “내가 전쟁터에서 사람들을 많이 죽였지요.” 이 영화를 찍은 곳은 한국의 예를 들면, 지리산 같은 지역이다. 태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이 일어났던 곳을 그야 말로 1960년대 전멸시켰던 지역에서 상영하는 것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태국에서 이 영화가 상영당시 자막이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완전히 그 지역의 언어로만 찍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일반태국인들은 영화의 대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퉁이라는 인물을 제외하고 모두 그 지역의 인물, 아마추어 연기자들을 캐스팅했다고 한다.

                          분쏭이라는 인물은 자기 집을 떠나서 털이난 인물이 아니라, 맨 마지막의 스틸사진을 통해 보여준, 군사독재화 되어버린 그 나라에 대해 항의의 표시처럼 퇴화하고 있는, 그리고 그 존재가 아들이라는 것, 그 아버지인 분미가 영화에서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나는 업보를 진 것 같아.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업과 연결되어 있다. 태국의 정치적 상황과 불교적 테마가 연결되어 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우리에게 답을 주기 위해 이 영화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논리가 아니라, 상상력의 계단에 관한 영화이다. 아마도 관객들은 엉클분미를 보고나면 관객들은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 영화를 보고나면 관객들이 어느 계단까지 와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영화에서 지금까지의 내용을 모두 무시하고 관람한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 관객은 아마 영화를 분미 아저씨가 죽음을 준비하고 있고 꿈을 꾼거야. 분미 아저씨가 죽고 난 후 그의 전생에 대해 깨달음을 얻고 난후 동굴까지 가서 죽음을 맞는 것으로 스토리가 끝이야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감스럽게 그 영화는 동굴에서 죽는 모습으로 끝나야 한다. 시사회에서도 많은 기자들이 동굴의 장면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에서 끝이 아니라, 스님이 된 퉁과 처제와 조카의 장면으로 전개된다. 그 장면에서 매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거기에서 모두 놀라게 된다. 퉁과 처제와 조카가 뉴스를 보는 장면에서 퉁과 처제가 유체이탈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고 어떤 기자는 영화를 보는 내가 유체이탈을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어쩌면 일정부분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이 노렸던 것일 수 있다. 이 장면은 여러분이 여러 번 봐서 답을 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 가지 힌트를 공유하고자 한다.

                       이 장면은 아주 이상하게 찍었다. 약간의 주의를 기울여서 보면, 이 장면은 15분 동안 이루어진다. 이 장면에서 단 한 장면도 시점쇼트(Point-Of-View Shot)가 없다. 누가 누구를 보는 쇼트가 없다. 항상 화면 안에서 서로가 서로가 보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카메라는 항상 물러나 있다. 단 한 번도 시점쇼트가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 순간에 둘이 일어나서 나가려는 순간, 시점쇼트가 드러난다. 그것은 퉁이 자기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가 텔레비전을 보는 자기를 보는 모습으로 연결된다. 여기에서 감독은 영화를 보는 우리의 위치를 이 시퀀스에서 둘로 나눈다. 

                        앞서 감독의 인스톨레이션에 대해 길게 설명한 바 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은 하나의 화면 안에 두 개의 이미지가 아니라, 두 개의 화면에 하나의 이미지를 겹쳐 놓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하나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씬이고, 또 하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씬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텔레비전이다. 예민한 관객이라면 침상에 누워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장면을 유심히 보면, 문득 앉아 있던 퉁이 유심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돈을 세던 처제와 조카도 텔레비전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 작은 텔레비전 화면으로 태국의 정세를 열심히 설명하는 뉴스가 보여 지고 있다. 
                        이 때 두 개의 선택이라는 질문을 이 마지막 씬이 보여준다. 텔레비전을 본다는 것은 태국의 실체이고, 텔레비전에서 눈을 돌린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마지막 순간에 영화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이 미학적이고 심미적으로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항상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 영화가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에 대해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은 <엉클 분미> 영화를 통해 한편에서는 자기의 문화적 맥락을 끌어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이 처해있는 정치적 정세를 외면하지 않고, 영화 매체라는 미학적 방식을 통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영화에서 분미가 죽기 전에 말한다. 영화는 단지 전생을 말하지 않는다. 분미는 영화에서 말한다. “나는 미래를 보았어. 미래에는 그들이 지배하고 있었어.” 하면서 스틸 사진이 전개된다. 그 스틸사진은 매우 폭력적인 군인들의 장면이다. 

                        깐느에서 영화 상영이 끝나고, 어느 눈 밝은 기자가 질문을 하였다. 기자는 “태국은 민주화가 될까요?” 라고 질문했다. 그에 대해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저는 태국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그 희망 없음에 대한 대답이다. 말하자면 그 마지막 장면은 자기가 살고 있는 태국을 정글이라고 원시화 시키고, 그것을 셀프 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화라는 것을 멈추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자기의 메소드로 확장시키는 자기의 형식과 형식 안으로 끌어안으며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의 영화에 대해 그가 제 마음을 가장 끈 것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영화에서 정치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좌,우파든 따분한 일이다. 그것은 프로파간다이다. 그러나 감독은 정치적 질문을 심리적으로 우리에게 질문했고 그것을 자기 영역 안에서 보여줬다. 

                       종종 어떤 영화를 설명할 때 매트릭스는 가장 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매트릭스에 대해 설명할 때에는 플라톤의 동굴의 벽화를 설명할 수밖에 없다. 우회적이든 어떤 방식이든 영화에 대해서 말할 때, 관객이 자신의 방식을 끌어들여 설명한다는 것이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의 훌륭한 점은 그것을 단순히 심미적 순으로 끝내지 않고, 거기서 더 끌고 나아가서, 거기에 대해 더 대답을 구하기 위해서, 태국 바깥에 살고 있는 영화평론가 저조차도 태국의 정치에 대해 이해하지 않고서는 영화를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말하자면 그 영화에 대해 심미적 답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끝내게 할 때, 자기가 살고 있는 땅, 나라로부터 떨어져 나와 UFO가 되는 것밖에 없다. 우리들과 하여금 그들과 아무 이해관계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여러분이 <엉클 분미>를 이해하려고 더 다가갈 때, 여러분들로 하여금 단지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의 이해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땅, 태국의 현재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영화는 미학적 구심력을 정치적 구심력으로 확장시키는 영화라는 점에 있어서 이 감독의 선택에 대해 기꺼이 지지한다. 지금까지 이 영화에 대한 강연회였다. 이 영화에 대해 더 좋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이다. 오늘 감상으로 그치지 않고 친구, 동료, 연인을 끌고 와 다시 한 번 더 보고 이야기할 때,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도 기뻐할 것이고M 태국의 사람들도 기뻐할 것이고, 영화의 의미에 있어서도 기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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