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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보고 듣다(문장배달)

트루먼 카포티, 「미리엄」

by 아프로뒷태 2014. 11. 8.



트루먼 카포티, 「미리엄」

환한 대낮에 보니 미리엄은 수척했고 약간 위축되어 있으며 머리도 덜 빛나 보였다. 미리엄이 소중히 여기는 프랑스 인형은 분을 바른 정교한 가발을 쓰고 있었으며 백치 같은 유리 눈은 미리엄의 눈에서 위안을 찾고 있었다.
“놀랄 만한 선물을 가지고 왔어요.”
미리엄은 계속 말을 이었다.
“제가 가지고 온 상자를 보세요.”
밀러 부인은 무릎을 꿇고 상자 뚜껑을 열어 또 다른 인형을 꺼냈다. 부인이 극장에서 미리엄을 처음 본 날 입었던 것과 똑같은 파란 원피스를 입은 인형이었다. 나머지 물건을 보고 부인은 말했다.
“모두 옷이구나, 왜?”
“아줌마랑 같이 살러 왔으니까요.”
미리엄은 버찌 줄기를 비틀어 떼내며 말했다.
“버찌를 사다 놓으시다니 정말 친절도 하시지…….”
“하지만 그럴 순 없어! 제발 가버려. 가라, 나 좀 혼자 놔둬!”
“장미꽃이랑 아몬드 케이크도? 정말 마음이 참 넓으세요. 이 버찌들은 맛있네요. 지난번에는 늙은 아저씨랑 살았어요. 그 아저씨는 너무 가난해서 맛있는 걸 먹을 수가 없었죠. 하지만 여기서는 행복할 것 같아요.”
미리엄은 말을 멈추고 인형을 좀 더 꼭 끌어안았다.
“자, 그럼 어디다 제 짐을 놓을지 좀 알려주세요…….”
밀러 부인의 얼굴은 스르르 변해 추한 붉은 선으로 그린 가면처럼 되었다. 부인은 울음을 터뜨렸다. 부자연스럽고도 눈물도 나오지 않는 흐느낌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울지 않아서 어떻게 우는지조차 잊어버린 울음. 조심스럽게 부인은 뒷걸음치며 문으로 향했다.


작가_ 트루먼 카포티 - 미국의 소설가. 1924년 뉴올리언즈 출생. 17세 때 학교 중퇴, 《뉴요커》의 사환으로 일함. 지은 책으로『티파니에서 아침을』『다른 목소리, 다른 방』『인 콜드 블러드』등이 있음. 1984년 사망함.

낭독_ 이연규 - 배우. 연극 '베키쇼', '그을린 사랑', '먼데서 오는 여인' 등에 출연
최정화 – 배우. 연극 '지금도 가슴 설렌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춘천 거기' 등에 출연.

* 배달하며: 리어왕의 그 유명한 대사, “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모티브로 삼은 영화나 책들이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지요.
혼자 사는 미리엄 부인은 어느 눈 오는 밤, 동네 극장에 갔다가 자신과 이름이 같은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 어쩐지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소녀. 그 소녀가 불쑥불쑥 이렇게 부인의 집을 찾아옵니다. 이 소녀 미리엄은 누구일까요?
“사람이 무언가를 진짜 보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면 우리가 본 것, 보고 있는 것은 진짜 무엇일까요.


문학집배원 조경란

출전_ 『차가운 벽』(시공사)
음악_ The Film Edge/ Reflective-Slow중에서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_ 양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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