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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향기

선생님, 평소 말씀하시지 않아 몰랐던 형제 이야기를 언론으로 접하고 보니-

by 아프로뒷태 2011. 5. 26.

 선생님은 평소 수업시간에 가정사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았다.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도 시간은 모자랐으므로,

 우연히 읽은 신문기사에서 선생님의 남동생에 대한 사연을 알게 됐다.

 그 남동생이 이런 멋진 일을 하며 인생을 즐기고 있는 줄 몰랐다.

 

 별을 보는 남자.

 

 나도,

 별을 보는 여자가 곧 되고 싶다.

 

 

 

"죽을 때 원통하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별 보며 살자"
구두 닦고 아이스케키 팔다 뒤늦게 고교 졸업하고
출판사 들어가 '100장면 시리즈'로 히트
11년째 강화도서 텃밭 가꾸며 낮에는 책 읽고,
밤에는 별 관측 쉽게 읽는 천문학 책 곧 출간

'한국사 100장면' '미국사 100장면' 기억하세요? 책 좋아하는 분은 "아, 그 책!" 하실 겁니다. 1990년대 제가 출판한 '100장면 시리즈'입니다. 22세에 출판사에 들어가 38세에 가람기획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인문서를 냈지요.

히트 쳤어요. 당시에 민주화 운동이 수그러들고 인문학 바람이 불었거든요. 출판의 큰 흐름이 바뀔 때 저도 거기 있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출판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직업이에요. 사장 아들도 실력 없으면 최종 교정 못 보거든요. 그러니까 저같이 내성적인 사람도 이만큼 왔어요.

올해 제 나이 환갑. 지금은 뭐 하냐고요? 섬에서 별(星)을 봅니다. 한참 출판사를 열심히 할 때, 퇴근길에 어느 집 베란다에 노란 조등(弔燈)이 걸려 있는 걸 보았어요. "일하다가 어느 날 조등 하나 걸고 끝나는구나. 억울하겠다" 했어요. 억울하기 싫으면 뭘 해야 하나? 저는 별을 보고 싶었어요.

서울 대방동 단독주택에 출판사를 차리고 밤 낮없이 일하던 시절.
사실 별은 그전부터 봤어요. 출판사 할 때 천문학 책을 여러 권 내고 '월간 하늘'이라는 잡지도 발행했거든요. 안 팔려도 마니아가 있어 뿌듯했어요. 회사 마당에 반사망원경 놓고 편집장과 둘이서 별을 봤어요. 잡광(雜光)이 없는 깊은 산으로 여행도 가고요.

아마추어 중에도 대가(大家)가 많아요. 천왕성을 발견한 사람도 아마추어 천문학자였지요. 저는 좀 달랐어요. 무심히 막막하게 별을 본달까. 우주를 깊이 알고 싶을 뿐 "새로운 천체를 발견해 내 이름을 붙이겠다"는 식의 욕망은 없었어요.

어려서부터 성격이 그랬어요. 저는 대구 판자촌에서 컸어요. 아버지는 세상살이에 별 뜻이 없었어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내키는 대로 훌쩍 떠났다 불쑥 돌아오곤 했지요. 어머니가 품팔이로 6남매를 키웠어요. 제가 남자치고는 키가 작은데, 어머니가 저처럼 작았어요. 해소병(천식)을 앓았고요. 일곱 살 때 달성공원에서 놀다 어둑어둑해 돌아왔더니 멀리서부터 우리 집에서 곡소리가 들렸어요. 어머니는 서른일곱 살이었지요. 아버지는 안 계셨어요. 나중에 돌아와 만화방을 차리셨습니다.

중1 겨울에 학교를 관뒀어요. 큰형(이동하 전 중앙대 교수·소설가)이 대학에 붙어 그 아래는 학교 다닐 형편이 못 됐거든요. 구두도 닦고 아이스케키도 팔았어요. 심심하면 정처 없이 가출하고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며 별을 봤어요.

뒤늦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상경해 큰형 소개로 출판사에 들어갔어요. 자취하던 암사동에서 영등포까지 버스를 갈아 타가며 하루 네 번 한강을 건너 출퇴근했지요. 다방에서, 만원버스에서 낱장으로 찢은 대입 참고서를 들여다보고 30세에 야간으로 성균관대에 붙었습니다.

조등을 본 몇 년 뒤에 교통사고로 죽는 꿈을 꿨어요. 꿈에서도 죽으면서 '내 이럴 줄 알았다' 원통해 했어요. 얼마나 생생한지 이튿날 아침에 바로 결심했어요. 늦기 전에 별 보다가 죽자고.

이광식 전 가람기획 대표가 강화도 외포리 자택에서 손때 묻은 천체망원경으로 별 보 는 자세를 취했다.“ 포즈 잘 잡지요? 사실 별은 밤에만 보는 건데….” /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2000년 강화도 외포리에 집을 지었어요. 일주일에 사흘, 이틀, 하루 사무실에 출근하다 2005년 완전히 손을 뗐지요. 딸은 시집가고 아들은 취직해 지금은 마누라랑 단둘이에요. 넓은 산자락에 걸어서 왕래할만한 이웃은 단 두 집. 그래도 사는 게 너무 바쁘고 재미있어요. 텃밭에 부추·고추·상추 심고요, 속노란 고구마도 한 100평 심었어요. 집 앞 오솔길에서 대문 지나 안뜰까지 야트막한 돌담은 우리 부부가 손으로 쌓은 거예요.

밤에는 별 보고 낮에는 천문학 고전을 100권 넘게 읽었어요. 취미 삼아 아침저녁으로 수학 참고서 '정석(定石)'을 풀고요. 별을 보면 인간이 측은해져요. 우주는 광막하고 인간은 외롭거든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1977년에 보이저 2호를 쐈어요. 지금도 태양계 끝을 향해 날고 있지요. 보이저 2호가 보내온 사진을 A4 용지에 출력하면 한가운데 점이 있어요. NASA에서 동그라미 쳐놓지 않았으면 보이지도 않는 점이에요. 그게 지구입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이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면 마음이 아파요. 사는 게 대단할 건 없지요. 하지만 힘들어도 죽을 일까진 아닐 때가 많거든요. 별을 알면 그걸 아는데…. 하지만 천문학 책은 참 어려워요. "학자들은 다 아니까 쉽게 못 쓰는구나. 할 수 없다. 내가 쓰자" 싶었어요. 3년 넘게 자료를 모아 지난겨울 하루 16시간씩 서재에 틀어박혀 책을 썼어요. 마누라는 손바느질로 제 셔츠를 만들었고요. 평생 가장 행복한 겨울이었어요. 그 책이 다음 달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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