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로알드 달
프랏은 잔을 천천히 코로 들어올렸다. 코끝이 잔으로 들어가더니 포도주의 표면을 살살 움직이며 냄새를 맡았다. 이어 잔에 든 포도주를 천천히 돌려 향기를 받아들였다. 그는 강렬한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그는 상반신 전체, 머리와 목과 가슴이 냄새를 맡는 거대하고 민감한 기계가 된 것 같았다. 이 기계는 킁킁거리는 코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걸러내고, 분석하고 있었다.(…)
냄새를 맡는 과정은 거의 일 분간 지속되었다. 이윽고 프랏은 눈을 뜨거나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잔을 입으로 내리더니, 내용물의 거의 반을 입에 넣었다. 그는 거기에서 동작을 멈추었다. 입에는 포도주가 가득했다. 그는 첫 맛을 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입에 든 것 가운데 일부를 목 안으로 넘겼다. 포도주가 밑으로 내려가면서 그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직 입 안에 남아 있었다. 이어 프랏은 포도주를 더 삼키지 않고, 입술 사이로 공기를 약간 들이마셨다. 공기가 입 안에서 술의 기운과 섞이더니 허파로 내려갔다. 그는 지그시 숨을 참았다가, 코로 내뱉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도주를 혀 아래에서 굴리더니 씹었다. 포도주가 빵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로 씹고 있었다.
엄숙하고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정말 잘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 출전 :『맛』, 강 2005
● 작가- 로알드 달 : 영국 웨일스 출생. ‘에드가 앨런 포’ 상을 두 차례, 전미미스터리 작가상을 세 차례 수상한 최고의 이야기꾼. 소설『보이』『응답 바람』『당신을 닮은 사람』, 동화『찰리와 초콜릿 공장』『제임스와 슈퍼 복숭아』등이 있음.
● 낭독- 정상철 : 연극배우. 연극 <혈맥> <아Q정전> <카페 신파> <꿈 꿔서 미안해>, 영화<야수> <거미숲> 등에 출연.
포도주 맛을 감식하는 전문가의 모습입니다. 정말 인상적인 공연이지요. 전문가라면 기본적으로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야라도 말입니다.
사실 이것이 ‘공연’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나중에 드러납니다만 진지하고 엄숙한 이 자세는 배울 만 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묘사를 하는 사람 역시 전문가 같지 않습니까? 정말 잘한다고, 더 칭송하자면 ‘얼씨구나 잘 논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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