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AM I? 법의 수호이냐? 인간애 실현을 위한 법의 위반이냐?
WHO AM I?
법의 수호이냐? 인간애 실현을 위한 법의 위반이냐?
양심 앞에서 갈등하는 장발장,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법의 수호이냐? 인간애 실현을 위한 법의 위반이냐? 양심 앞에서 갈등하는 장발장, 나는 누구인가?
프랑스 혁명은 1789년에 일어났다. 당시 베르샤유의 궁전의 주인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또와네트 왕비이다. 이들이 이끈 프랑스의 왕정은 부패할 때로 부패했다. 왕과 왕비는 백성에게 징수한 세금으로 호사스러운 왕정 생활을 누렸다. 그것도 모자라 세금을 더 올리기도 했다. 궁내에서는 사치가 만연했지만 궁밖에서는 백성들이 기근으로 죽어갔다. 일부 양심 있는 정치가들이 왕과 왕비에게 상소문을 올렸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유명한 일화로 민중이 배가 고파서 죽어갑니다. 는 상소에 마리 앙또아네트는 “그러면 케익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 고 대답할 정도였다. 이렇듯 왕과 왕비는 백성의 기근과 고통에 관심이 없었다. 오직 그들은 호사스러운 생활에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왕족과 귀족의 호화로운 파티와 사치는 배고픈 백성들의 원성을 사기 충분했다. 그리하여 루이 16세는 단두대에 올라가고 마리 앙또아네트는 민중의 손에 이끌려 쫓겨나는 파국을 맞게 된다. 그렇다. 배고픔과 국가의 과도한 세금징수를 견디지 못한 민중은 봉기한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그리하여 시작되었다. 프랑스 혁명이후, 진정한 민주주의가 도래할 것 같았지만 프랑스의 경제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배고픔에 굶주리는 백성들이 즐비했다. <레 미제라블=가난한 사람들>은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창작된 소설이다. 소설에서 드러나듯 그러한 역사상황에서 배고픈 누이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발장, 그 죄로 5년을 복역한다. 그리고 탈옥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총 19여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국가에 대한 분노와 법에 대한 저주로 내면에 악마성을 키워갔던 장발장. 그가 부끄러움을 느끼고 새로운 인간으로 변모하게 되는데 바로 미리엘 주교 덕분이다. 그 사연은 다음에서 알 수 있다.
‘영화는 1815년의 프랑스로부터 출발한다. 빵 한 조각을 훔쳤다는 이유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휴 잭맨)은 가석방된다. 하지만 전과경력이 있는 장발장은 막노동은 물론 잠자리조차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이는 오직 한명. 미리엘 주교(콤 윌킨슨)다. 그러나 장발장은 이 은혜를 성당의 은식기를 훔치는 것으로 갚는다. 결국 그는 경찰에 잡혀 성당에 다시 끌려오나, 주교는 장발장의 절도 사실을 숨기는 것은 물론 은촛대까지 쥐어주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라고 말해준다. 이후, 신분을 감추고 시장의 자리까지 오른 장발장은 인자한 성품으로 시민들의 존경을 받지만, 한 공장에서 해고된 여인, 판틴(앤 해서웨이)의 억울함을 그냥 지나친다. 궁지에 내몰린 판틴은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여자로 전락하고, 병에 걸린 그녀는 마지막 순간 장발장에게 딸 코제트(아만다 시프리드)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장발장은 그를 20년 전 죄수로 의심하는 경감 자베르(러셀 크로)를 피해 코제트와 성당에 머문다. 한편, 프랑스에선 평민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대변했던 라마르케 장군의 죽음을 계기로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시민들의 시위가 시작된다. 그 선봉대에 선 마리우스(에디 레드레인)는 장발장의 딸 코제트를 우연히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런 마리우스의 곁을 그를 짝사랑하는 여인 에포닌(사만다 뱅크스, 코제트가 어린 시절 묵었던 여관 주인의 딸)이 맴돈다.’ -씨네21-
영화의 프롤로그는 노역을 하는 장발장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당시 유럽은 신대륙 발견과 무역을 위해 세계로 뻗어나가는 일이 한창이었다. 그러한 유럽을 상징하는 힘이 바로 배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당시 프랑스의 사정은 루이 15세가 영국과의 7년 전쟁으로 패한 상황이었다. 프랑스는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독립전쟁을 지원하는 바람에 국력이 약화되어갔다. 그리하여 숙적이었던 오스트리아와 화친을 맺고,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앙트와네트를 황세자비로 맞았다. 하지만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부도덕한 정치와 기근과 재정 악화로 백성들은 굶주려갔다. 이러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삼부회의가 소집되지만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여 평민 대표들이 국민회의를 결성한다. 로베스 삐에르가 주도하는 자코뱅당은 공포정치로 혁명을 추진한다. 내부에서는 혼란과 밖에서는 오스트리아 영국 프로이센의 침략이 한창이었다. 이러한 국내외 사정으로 인해 영화의 프롤로그는 거대한 바다로 나아갔던 프랑스의 배가 전복될 위기에 처해져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좌초될 배를 노역들이 대륙으로 끌어올리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다. 노역으로 희생된 이들은 법을 위반해서 잡혀온 자들도 있지만 장발장처럼 빵 한 조각으로 20여년을 감옥살이했던 억울한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법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악법도 법인가? 법은 꼭 지켜져야 하는가? 법을 만드는 자들의 도덕과 양심, 자격에 대해 논해볼 필요가 있다.
여하튼 영화의 프롤로그가 상징하는 바는 대단하다. 짧고 강렬하지만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자베르 경감이 장발장에게 젖은 프랑스 국기를 걷어오라고 명령하는 씬을 생각해보자. 축축하게 젖은 프랑스 국기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가? 빈곤과 범죄 그리고 부패한 프랑스의 현실을 비유하는 것은 아닐까? 자베르 경감의 명령에 따라 장발장은 온 힘을 다해 국기를 들어올린다. 그 장면이 상징하는 바는 대단하다. 그 장면에서 나는 장발장이 황폐해진 프랑스를 일으켜 세워주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빵 한 조각을 훔쳐 20여년을 교도소에서 산 한 남자가 부패한 프랑스를 구원한다는 의미로 생각해볼 만하다. 도둑 장발장에서 시장으로 개과천선하여 살아가는 장발장, 장발장은 프랑스 도시 민중들의 실업을 해결하고 배고픈 노약자나 부랑자를 위해 적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장발장이 다스리는 도시는 범죄율이 적고 치안 걱정도 없다.
그러나 과거는 영원히 숨길 수 없는 법. 장발장은 위법으로 죄수자이라는 신분을 감추고 살아가지만 법을 수호하며 장발장을 찾으려고 혈안이 된 자베르 경감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장발장과 자베르 경감 사이의 갈등에서 우리는 법이라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지, 죄 없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악법도 법인지에 대해 질문을 갖고 답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법은 정의 수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악법도 법이 될 수 있을까? 법은 누가 만들었나? 얼마 전 국회에서 ‘국회의원 연금법’을 통과시킨 일을 생각하면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피 같은 돈을 지도자의 배불리기에 쓰다니.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과거나 현재나 역사적으로 국민은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기에 급급한 지도자들이 만든 법에 복종했고, 그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가난 속에서 배고픔을 참아가며 세금을 내왔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우리에게 법이란 무엇인가? 법이 중요한가? 인간이 중요한가? 법을 믿고 지켜온 자베르 경감과 법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온 장발장은 물과 기름과 같은 사이이다. 둘은 섞일 수 없다. 법을 수호하려는 자와 법을 위반하려는 자는 한 공간에서 존재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자베르 경감은 자살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장발장이 잘했다고 말 할 수 없다. 다만 장발장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반성을 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장발장은 진정한 양심을 지닌 인물이다. 영화에서 장발장이 양심의 갈등을 겪는 부분은 대략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양심의 갈등을 느끼는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장발장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첫째, 가짜 장발장이 체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이다. 장발장과 닮은 다른 누군가가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장발장은 갈등한다.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평생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는 시장자리와 교도소 수감을 이행해야 하는 장발장의 위치에서 고민한다. 그리고 장발장은 재판장으로 찾아가 양심선언을 한다. “나는 ‘장발장’이요. 자베르 경감, 나를 잡아가시오.”
둘째, 코제트와 그의 연인 마리우스의 만남을 위해 희생을 선택할 때이다. 장발장은 프랑스를 이끌어갈 미래의 주인공들, 청춘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기로 결심한다. “사랑은 청춘의 꽃이라 하지 않는가?” 라는 장발장의 말처럼 젊은이들의 세상을 위해 중년이 희생하는 숭고미를 보여준다.
둘째, 코제트에게 시장으로서 아버지가 아니라, 빵 한 조각으로 20여년을 교도소에서 산 장발장이라는 신분을 털어놓는다. 나는 장발장이다.
이 영화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었다고 하지만 영국에서 상영 중인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였음이 더 명확할 것이다. 뮤지컬은 다음과 같다. 이 뮤지컬은 10주년 기념으로 상연된 공연이다. 실제로 감독은 이 뮤지컬의 내용을 바탕으로 영화에 그대로 적용했다고 한다.
<레 미제라블> 10주년 공연
<레 미제라블> 25주년 공연
영화는 뮤지컬의 형식을 그대로 빌려온다. 그런데 ‘영화 <레미제라블>이 여타의 뮤지컬영화와 차별화되는 점은 배우들이 뮤지컬 넘버를 사전녹음하지 않고 라이브로 노래하는 ‘송 스루’(song through)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배우들이 사전에 녹음한 노래에 맞춰 연기하면 그 순간의 감정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한 톰 후퍼는 배우들에게 현장에서 뮤지션들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연기하듯 노래하도록 했다. 이러한 연출 방식이 영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뮤지컬 음악의 매력이 순간의 감정 전달이라면, <레미제라블>의 ‘송 스루’ 스타일은 현장에서 배우들이 몰입했을 바로 그 순간의 감정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특히 장발장이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며 부르는 <What I have done>, 매춘부로 전락한 판틴의 <I dreamed a dream>, 코제트와 사랑에 빠진 마리우스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에포닌의 <On my own>이 흐르는 대목 등이 인상적이다. 거대한 바리케이드 위에서 군중이 함께 부르는 노래 <민중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담은 영화의 엔딩은 이 묵직한 서사시의 커튼콜로 손색이 없다. 가난과 무지가 존재하는 한 혁명의지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할 것임을 예감한 위고의 비전을 고려한다면, 멜로디 속에 인간에 대한 뜨거운 연민을 담아낸 뮤지컬과 영화의 해석이 더욱 적절하게 느껴진다.-씨네21’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다양한 음악이 소개되어 귀가 즐거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영화를 워킹 타이틀이 제작했다. 워킹 타이틀이 드디어 대작을 만드는 구나. 영화사 입문하고 나는 기획 일을 하면서 국내에 딱히 롤모델이 될 만한 기획집단이 없었다. 그러한 기획성을 가진 영화사도 없었다. 그래서 롤모델로 삼은 영화사가 바로 워킹 타이틀이었다. 당시 나에게 워킹 타이틀에서 만든 영화는 진보나 보수 따위의 정치색에 오염되지 않은 중도의 위치에서 희망적이고 인간적이며 선입견이나 편견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새로움을 창조하기 위해 늘 도전하고 나아가는 창작집단으로 여겨졌다. 워킹 타이틀에서 만든 영화를 보면 늘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도대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기획하는지 궁금했다. 당시 내 주변에는 기성의 것에 찌들린 어른들이 많았고 새로움을 논할 영화인들이 그다지 없었다. 창작자들은 늘 도전하고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지만 반대로 기성의 제도에 오염되기 쉽다. 그들도 그랬는지 모른다.
워킹 타이틀이 이번에 만든 <레 미제라블> 은 영화사 자체의 기획과 제작의 내공이 얼마나 탄탄한가를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면서 워킹 타이틀을 극찬하고 싶었던 점은 다름 아닌 제작사가 감독을 믿고 지지해준 일이다. 뮤지컬을 그대로 착용하여 영화화하겠다는 감독의 의도를 존중하였고,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서 장발장 개인의 역사에 조명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장발장 개인이 직면한 시대의 불안을 드러내는 일에 심혈을 기울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영화의 반은 장발장 개인의 역사에 주목하고 나머지 반은 프랑스의 민중혁명의 역사에 주목한다. 워킹 타이틀은 시나리오 기획단계에 들어가면 시나리오 단어 하나하나부터 엄격하게 검열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한 작업을 통해 각색으로 네 명의 작가들의 이름이 엔딩 크레딧에 올랐다.
"노동자에게 사랑받는 문학의 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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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
프랑스의 19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프랑스 최고의 작가로도 불린다. 소설 레 미제라블과 노틀담의 꼽추는 그의 최고 작품으로 꼽힌다. 시인으로도 유명했던 위고는, 숙고 (Les Contemplations) 와 세기의 전설 (La Légende des siècles) 이라는 시도 남겼다. 젊은 시절에는 보수주의였다가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으로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진보적 지식인이 되었으며, 유럽 연합의 설립과 공화주의를 위해 힘을 썼다. 실례로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인 레 미제라블속에는 프랑스 민중들의 비참한 삶과 사회혁명의식이 담겨있다. | |||||||||||||||||||||||
2002년 1월 7일 프랑스의 모든 학교 교실에서는 대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의 시가 일제히 낭송됐다.
그가 이처럼 프랑스인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것은 문학적인 업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혁명의 세기라 불릴 정도로 격동적이었던 19세기 프랑스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빅토르 위고의 83년 긴 생애에서 문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그가 추구했던 사회진보에의 열망은 프랑스인들의 가슴에 깊이 남아있다. "레 미제라블, 현실에서 그린 지옥" 나폴레옹, 위험인물로 분류
19세기 프랑스역사 온몸으로 부딪쳤던 꼬뮨전사의 벗
Ⅰ. 생각해보기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는 낭만주의 운동을 이끈 시인이며 소설가·극작가로 유명하다. 위고는 1802년 나폴레옹 군대 장군인 아버지 레오폴드 위고(Leopold Hugo)와 왕당파 집안 어머니 사이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렸을 적 이탈리아와 에스파냐 등지로 옮겨 다니며 1812년부터 파리에 정착하여 기숙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독서와 시를 즐겼으며 1817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콩쿠르에 이어 1819년에는 투르즈의 아카데미 콩쿠르에 시가 입상을 한 것을 계기로 형 아베르와 함께 낭만주의 운동에 공헌한 잡지 ‘문학수호자(Conservateur Litteraire)’를 창간하였다.
1851년 루이 나폴레옹 쿠데타를 반대하여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였다. 망명 생활동안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를 반대하는 내용의 ‘정벌 시집(Les Châtiments, 1853)’ 딸과의 추억과 철학적 사상이 담긴 ‘정관 시집(Les Contem-plations, 1856)’,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1852)’등을 발표 했으며 그 외 몇 편의 소설과 시집 및 희곡도 썼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던 무렵 장 발장은 홀로 된 누이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울부짖는 어린 조카들의 참당한 광경을 그대로 볼 수 없어 한 조각 빵을 훔치다 체포되어 5년 형을 받는다. 복역 중 장 발장은 누이와 조카들의 굶주림이 걱정되어 탈옥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형별만 누적되어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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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제작사인 영국 워킹타이틀의 팀 베번 공동 회장
씨네21은 창간 15주년 기념으로 워킹타이틀에 대한 특집기사를 다루었다. 왜 이제서야 워킹타이틀? 인가 했더니 영국관광청과 내일여행, 그리고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한국 라이선스 뮤지털 제작사 메지스텔라의 협조를 통했다고 한다. 그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워킹타이틀의 규모확장은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엄청난 성공덕분이라고 한다. 영화사 '워킹타이틀'이 한물 간게 아닌가... 라는 의구심을 품고 있을 때, 워킹타이틀은 다른 곳에서의 엄청난 성공으로 훨씬 커져있었다.
"우리는 새로운 재능들을 발견하고 소개하면서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스티븐 프리어스, 리차드 커티스, 휴 그랜드, 코엔 형제, 폴 그린그래스, 조 라이트, 로완 앳킨스, 에드가 라이트
"퀄리티야말로 모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하면, 디벨로프먼트 과정은 그날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시나리오의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전부 재검토의 대상이다."
한국에 있는 거의 모든 영화제작자들이 롤모델로 삼던 시절이 있었다.
로맨틱코미디의 명가로 불리며, <러브 액추얼리>를 찍어내던 시절의 워킹타이틀이었다.
로맨틱코미디에서의 성과를 뒤로 하고, 워킹타이틀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그리고 다시 10년.
워킹타이틀에서 '영국'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아졌다. 이제 워킹타이틀은 할리우드 제작사이다.
다만, 할리우드에서 뭔가 좀 색깔이 다르다 싶은 영화가 만들어질 때 그 앞엔 워킹타이틀 로고가 뜬다.
이것은 성과일까? 아니면 실패일까?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워킹타이틀이 조금은 아쉽다.
Selected History (from 씨네21)
2010 WTTV(Woking Title TV) 런칭 - NBC 유니버설과 제휴
2005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런칭 - 대성공
1999 폴리그램, 유니버설에 인수
1992 폴리그램 지원 선언 - 레드클리프 퇴사 & 에릭 펠너 영입
1984 설립 (팀 베번 & 사라 레드클리프) - 뮤직비디오와 저예산 TV영화로 시작. 주목받았으나 재정난은 지속
"시나리오 개발작업에 우리 시간 5%를 할애했다. 감독을 찾는 작업도 5%를 차지했다. 나머지 90%
의 시간에는 모자라는 영화제작비를 조달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Selected Filmography
1983년 탄생한 워킹타이틀은 지난 30여년 동안 120편의 작품을 제작했다. 연평균 4편. 놀라운 수치다.
2010 Green Zone --- 폴 그린그래스와의 2번째
2009 A Serious Man --- 코엔형제
2009 The Soloist --- 조 라이트와의 3번째
2009 State of Play --- 스릴러이되 흥행은 되지 않는 워킹타이틀표 정치스릴러 이미지 굳히기
2009 The Boat That Rocked --- 리차드 커티스의 근황
2008 Frost/Nixon
2008 Burn After Reading --- 코엔형제
2008 Definitely, Maybe --- 오랜만에 로맨틱 코미디. 예전같지 않아진 감
2007 Elizabeth: The Golden Age
2007 Atonement --- 조 라이트와의 2번째
2007 Hot Fuzz
2006 United 93 --- 폴 그린그래스 소환
2005 Pride & Prejudice --- 조 라이트의 발굴
2005 The Interpreter --- 워킹타이틀표 정치스릴러의 시작. 할리우드 같은 스펙터클에 할리우드보다 무거운.
2004 Bridget Jones: The Edge of Reason
2004 Wimbledon
2004 Shaun of the Dead
2003 Love Actually --- 워킹타이틀표 로맨틱코미디 역량의 총집결
2002 About a Boy --- 닉 혼비 라인 두번째 가동
2001 Bridget Jones's Diary
2000 Billy Elliot
2000 High Fidelity --- 닉 혼비 라인 가동
1999 Notting Hill --- 워킹타이틀표 로맨틱코미디의 대표작
1998 Elizabeth --- 영국이야기의 성공적인 할리우드 입성
1998 The Big Lebowski --- 코엔형제와의 4번째 작품
1997 Bean --- 워킹타이틀의 중심축 리차드 커티스-로완 앳킨슨 라인의 등장
1996 Fargo --- 코엔형제와의 3번째 작품
1995 Dead Man Walking --- 팀 로빈스와의 두번째 인연. 미국 인디영화 제작사로서의 워킹타이틀
1995 French Kiss
1994 The Hudsucker Proxy --- 코엔형제와의 2번째 작품
1994 Four Weddings and a Funeral --- 워킹타이틀의 이름을 알린 '영국식 로맨틱코미디' 성공작
1992 Bob Roberts
1991 Barton Fink --- 코엔형제와의 오랜 인연 시작
1984 The Man Who Shot Christmas --- 최초의 워킹타이틀 영화